이 기사는 2020년 09월 04일 07:40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최근 M&A 시장에 낯익은 얼굴이 슬그머니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주인공은 바로 SK이노베이션의 윤할기유 자회사 SK루브리컨츠다. 지난 수년에 걸쳐 여러 차례 자본시장에 문을 두드리고 사라지기를 반복했던 '전력' 때문이었을까. 다소 어색한 등장에 자숙을 마치고 돌아온 양치기 소년을 바라보듯 분위기는 냉랭하기만 하다.시장의 반응이 차가운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2015년 기업공개 준비에 한창이던 SK루브리컨츠는 동시에 경영권 매각을 추진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그야말로 시장을 충격에 빠뜨렸다. 진정성을 의심받는 상황 속에서 '이중 플레이'를 감수하고서라도 성과가 있었으면 다행이지만 결과적으로 딜은 헤프닝으로 끝났다. 2018년 한번 더 IPO를 추진했으나 시장과의 눈높이만 확인한 채 없던 일이 되고 말았다.
과거와 달라진 것이 있다면 이번 딜은 상장전 소수지분 매각(Pre-IPO)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치열한 고민 끝에 내놓은 전략인지 의문스럽다. 조단위 기업가치를 감안하면 최대 49%에 달하는 지분을 가져갈 수 있는 원매자는 대형 펀드를 보유한 일부 사모투자펀드로 좁혀진다. 문제는 이들 FI가 가장 경계하는 거래 가운데 하나가 경영권 없는 지분을 지나치게 많이 보유하는 딜이다. 아무리 빅딜에 목마른 FI라도 선뜻 투자에 나서기 어려울 수 있다는 뜻이다.
무엇보다 아쉬운 점은 외부 자금을 끌어들일 수 있는 마땅한 명분과 스토리가 없다는 사실이다. 모든 투자의 전제조건은 성과 달성이고 그 성과의 핵심은 수익률이다. 그리고 미래 수익을 기대하기 위해서는 현재 시점에서 투자 대상 기업의 청사진과 밑그림이 뒷받침 돼야 한다.
그러나 SK루브리컨츠의 현 상황을 놓고 보면 드라마틱한 투자 각본이 만들어지기는 어려워 보인다. 실적은 2017년 정점을 찍은 이후 내리막 추세다. 주력인 윤할기유 사업의 전망 또한 밝지만은 않다.
모빌리티의 패러다임이 전기차와 수소차 등 친환경으로 바뀌는 상황에서 내연기관에 필요한 윤할기유의 수요는 장기적으로 감소할 수 밖에 없다. 이번 딜의 시발점이 신사업 투자를 위한 재원 마련이라는 것은 모회사 SK이노베이션의 지분 매각 배경일 뿐 SK루브리컨츠의 투자 유인이 되지는 못한다.
그 동안 SK그룹 계열사들은 시장과의 적극적인 교감을 통해 여러 딜에서 손을 맞잡은 경험이 있다. SK텔레콤이 ADT캡스를 인수하면서 끌어들인 맥쿼리에게는 물리보안과 ICT 결합을 통한 통신 인프라 확장을, 11번가에 투자한 H&Q에게는 이커머스 산업에 대한 자신감을, SK해운의 최대주주 자리에서 물러난 뒤 새로운 주인이 된 한앤컴퍼니에게는 그룹내 아픈손가락이었던 해운업의 과감한 구조조정 의지를 각각 보여줬다.
이와 달리 SK루브리컨츠 지분 매각에는 딜만 있을 뿐 스토리가 없다. 해피엔딩을 확신할 수 없겠지만 적어도 개연성 있는 복선조차 깔려있지 않은 점은 안타깝다. 결국 이번 거래는 주주간 계약을 통해 특정 시점에 IPO를 약속하고 이행되지 않으면 SK그룹의 크레딧을 활용해 투자자에게 일정 수익을 보장해주는 사실상 채권형(Fixed Income) 방식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 식상하고 진부한 딜에 과연 누가 화답할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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