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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 기업구조조정 리뷰]한진해운 파산, 채권회수 중점에 밀린 국내1위 선사⑦그룹 자구안 2000억 부족해 법정관리 직행, 산업재편 고려 부족 평가

고설봉 기자공개 2020-12-14 07:59:03

[편집자주]

산업은행은 한국 기업구조조정의 중추다. IMF와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부실기업 정상화를 주도하며 가치를 증명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 의구심을 산 경우도 있다. 실질적인 가치만 따져 구조조정이 이뤄진 것인지 의문을 키운 사례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아시아나항공 구조조정을 두고 최근 산은이 보여준 문제들은 다시금 과거사를 돌아보게 만든다. 산은 주도의 구조조정 과거사를 토대로 현재 안고 있는 문제점은 무엇인지를 살펴본다.

이 기사는 2020년 12월 11일 15:40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은 지난달 26일 진행된 아시아나항공과 대한항공 합병 당위성을 설명하는 기자간담회를 진행하면서 한진해운 파산사례를 예로 들었다. 그는 한진해운 파산으로 해양보국의 위상과 꿈이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수출경제의 효율성이 급감했다는 평가를 내렸다.

이 회장은 “4~5년 전 한진해운과 현대상선 동반 부실화 및 이를 처리하는 과정이 지금 항공업을 구조조정하는 것과 비슷하다”며 “큰 호황 뒤에 큰 부진이 왔는데 우리가 잘못 처리해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해운업계에선 과거 산은의 해운업 구조조정 및 한진해운 파산 사태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한 해운업계 관계자는 2016년 전 한진해운 파산 과정을 돌이켜보며 산업은행 구조조정사에서 가장 안타까운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단순히 하나의 해운사가 사라진 것을 넘어 한국 수출경제의 핵심인 해운산업 전체가 경쟁력을 잃은 사건”이라며 “산업·경제적인 측면 보다는 정치적인 측면에서, 해운업 구조조정과 산업 재편 보다는 채권회수 가능성을 중심에 둔 결정에 따라 파산이 진행됐다”고 진단했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이 지난달 26일 아시아나항공과 대한항공 통합 기자회견을 하면서 옛 한진해운 구조조정을 언급하고 있다.

◇자구안 반려와 지원불가 선언 '속전속결', 짧았던 협상기간

한진해운은 국내 1위, 세계 7위 컨테이너 정기선 해운사였다. 해외에서는 ‘삼성’이란 브랜드 만큼이나 인지도가 높은 기업이었다. 대한항공은 몰라도 한진해운은 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글로벌 해운시장에서 위상이 높았다.

수출에 의존하는 국내 산업 및 경제 특성상 컨테이너선사의 역할은 막중하다. 여전히 수출입운송화물의 95% 이상을 해운사에 의존한다. 한국 경제가 성장하면서 국내 1위 해운사인 한진해운의 역량과 위상도 함께 커졌다.

실제 한진해운은 세계 3대 항로인 태평양 항로(부산항-미주 노선)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해운사 중 한 곳이었다. 부산항을 모항으로 국내에서 북미를 오가는 화물은 물론 동남아 등지에서 모인 화물을 함께 실어 나르는 역할을 맡았었다. 머스크 등 글로벌 초대형선사들도 한진해운을 동북아의 주요 파트너로 인식했었다.

이처럼 국내 및 동북아 해운산업의 핵심이었던 한진해운이 파산하게 된 결정적인 원인은 약 2000억원의 자금을 스스로 만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2016년 8월 법정관리 기로에 서 있던 한진해운은 산은 등 채권단이 권고한 7000억원 수준의 자구계획을 충족하지 못했다. 5000억원 정도만 자체적으로 마련한다는 계획을 내놨다.

앞서 2016년 6월 산은 등 채권단과 금융위원회로 대변되는 정부는 한진해운 유동성 위기를 막기 위해 최대 약 1조7000억원의 자금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이에 따라 1조원은 채권단이 지원하고 7000억원은 한진그룹에서 자체적으로 마련하라고 통보했다.

하지만 한진그룹은 대한항공을 통한 유상증자 등 방식으로 4000억원, 조양호 전 한진그룹 회장 일가 등 사재출연 1000억원 등 5000억원 가량의 자금을 한진해운에 지원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 이상 자금지원을 할 경우 대한항공과 한진그룹 전체가 동반 부실에 빠질 수 있다는 논리였다.

산은 등 채권단은 한진해운 및 한진그룹이 현실성 없는 자구안을 내놨다며 채권단의 금융지원은 없다고 못 박았다. 채권단은 이후 2016년 8월 30일 그동안 유지해온 채무유예를 끊었다.

국내 1위, 세계 7위 선사였던 한진해운은 채권단의 지원 중단으로 2016년 파산했다

자연스럽게 경영정상화(자율협약) 절차는 파기됐고 한진해운은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이후 청산가치가 더 높다는 법원의 판단을 받아 청산절차에 돌입했다. 세계 7위 해운사는 그렇게 공중분해됐다.

당시 산은 구조조정부문 책임자였던 정용석 전 산업은행 부행장은 "사실상 자구안 가운데 1000억원은 예비적 성격이고 실효성 있는 지원은 4000억원뿐이라고 봐야 한다"고 언급했다. 파산은 전적으로 한진그룹 탓이었다는 의미였다.

그러나 당시 재계 일각에선 산은이 자율협약 종료를 너무 일방적이고 단기간에 결정한 측면이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통상적인 구조조정 절차와는 다르게 협상 과정이 짧고, 강도도 약했다는 분석이다. 또 함께 구조조정이 진행되던 현대상선의 경우와 비교해도 산은이 한진해운에 기회를 덜 줬다고 볼 여지가 있었다.

◇그룹 지배구조상 말단과 상단, 꼬리 자르기 우려했나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의 운명을 가른 결정적인 차이는 양사가 각 그룹 내에서 차지하는 역학 관계에 따른 산은과의 협상력에 있다는 분석이다. 한진해운은 당시 대한항공의 자회사로 한진그룹 지배구조 말단에 머물던 회사였다. 반면 현대상선은 현대그룹 지배구조 상단에 포진해 있었다.

이는 산은이 채권회수 여지 판단에 있어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소위 그룹 차원에서 '꼬리 자르기'가 용이했던 한진해운보다는 그 반대 입지에 놓여 있는 현대상선을 택하는 게 채권자인 산은 입장에서 안정적이었다는 얘기다.

또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이 각자 보유하고 있는 자산의 내역에서도 차이가 있었다. 산은은 각 해운사가 제시한 자구안을 평가한 뒤 채권단 지원 여부를 결정했다. 당시 현대상선은 시장에서 현금화할 수 있는 자산이 많았지만 한진해운은 그렇지 않았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산은의 현대상선 구조조정은 계속 진행될 수 있었고 한진해운 구조조정은 중단됐다는 평가다. 지배구조 상위에 포진해 있던 현대상선은 1조2000억원 규모 현대증권 매각 카드를 꺼냈다. 하지만 한진해운은 팔 자산이 없었다. 한진해운 파산 이후 시장성이 있는 자산 매각이 시작됐는데 그 규모는 초라한 수준이었다.

당시 양대 국적선사 구조조정에 관여했던 채권단 관계자는 “채권단의 지원을 받으려면 전제 조건중 하나가 자구노력인데, 한진해운은 자산 매각 및 대주주 출자 등에서 그 규모가 크지 않았다”며 “현대상선은 주요 자산 매각 등 자구노력으로 필요한 유동성을 자체 확보한 만큼 한진해운에도 동일한 원칙을 적용할 수밖에 없었다"고 회상했다.

다만 재계에서는 한진해운이 국내 해운산업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고려했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다순히 채권회수 가능성만을 가지고 구조조정을 하기에는 국책은행으로서 산은이 본연의 역할에 너무 소극적으로 임했다는 해석이다. 구조조정을 통한 산업 재편 및 기업 경쟁력 강화를 염두에 두지 않았다는 평가다.

더불어 산은이 한진해운 파산과 그에 따른 국내 산업·경제적 측면의 영향을 너무 간과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한진해운이란 기업의 가치를 단순화했고, 한진해운 파산이란 사태를 너무 안일하게 바라봤다는 평가다.

실제 당시 한진해운 구조조정을 총괄했던 정용석 전 산업은행 부행장은 "(물류 혼란 가능성에 대해) 현재 세계 해운시장에서 화물은 적고 선박은 많은 상태"라며 "선박이 없어서 화물 운송에 차질이 빚어질 상황이 아니다"고 말했다.

그로부터 4년여가 지난 지금의 평가는 어떨까.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은 지난달 26일 간단회에서 “지금 많은 노력 끝에 HMM(옛 현대상선)이 정상화 되고 있지만 그럼에도 한진해운과 현대상선 양대 선사가 있을 때의 시장 점유율을 절반도 못 따라간다"며 "정상화는 앞으로도 몇 년 더 걸릴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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