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은 왜 SK브로드밴드의 손을 들어줬나 [망 이용대가 동상이몽]②유상 역무 제공, 망 중립성 원칙과 무관 판단…2심서 다른 논거 활용하는 넷플릭스
이장준 기자공개 2022-10-24 13:01:20
[편집자주]
국내 인터넷 서비스 제공자(ISP)와 글로벌 콘텐츠 제공 사업자(CP) 간 갈등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SK브로드밴드와 넷플릭스가 '망 이용대가' 소송전을 벌인 데 이어 국회가 입법을 추진하고 있다. 그동안 상황을 지켜보던 구글이 유튜버와 고객의 편익이 줄어들 수 있다고 여론전을 펼치자 통신사도 반격에 나섰다. 망 이용대가를 둘러싼 상이한 양측의 입장을 짚어보고 배경과 영향 등을 다각도로 살펴본다.
이 기사는 2022년 10월 20일 07시47분 thebell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SK브로드밴드와 넷플릭스는 망 이용대가를 두고 지난 몇 년간 치열하게 법정 다툼을 벌였다. 재판부는 작년 넷플릭스가 SK브로드밴드를 통해 유상(有償)의 역무를 제공받는다고 판단해 SK브로드밴드의 손을 들어줬다.전 세계 인터넷 서비스 제공자(ISP)와 글로벌 콘텐츠 제공 사업자(CP) 간 망 이용대가 갈등에 대한 최초의 판례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특히 망 중립성 원칙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사안이라고 선을 그었다.
넷플릭스 역시 2심에서는 다른 논거를 들어 대응에 나섰다. 다만 유튜브 인플루언서나 오픈넷이 주도하는 여론전에서는 여전히 망 중립성 원칙을 들어 국회의 망 사용료법 추진에 반대하고 있다.
◇'ISP vs CP 갈등' 다룬 첫 판결…넷플릭스 주요 주장 모두 기각
양측 소송전의 발단은 2018년 10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넷플릭스 이용자가 급증하면서 SK브로드밴드는 넷플릭스에 도쿄와 한국을 연결하는 자사 국제망 구간의 증설 비용을 지급하도록 요청했고 넷플릭스는 이를 수용했다.
기존에는 양사가 미국 시애틀에 있는 인터넷교환지점(IXP)인 SIX를 통해 피어링(상호 연결) 됐는데 이를 도쿄 BBIX로 변경했다. 과거 페이스북 동영상 끊김 사태처럼 트래픽 품질이 떨어지지 않도록 퍼블릭 피어링(일반망)에서 프라이빗 피어링(전용망)으로 교체한 것이다.
당시 SK브로드밴드는 '망에 대한 적절한 비용을 지급하는 조건'으로 SK브로드밴드의 네트워크에 넷플릭스 캐시서버인 OCA(Open Connect Appliance) 설치를 제안했다. 하지만 넷플릭스는 망 이용료 지급에는 동의하지 않았다.
이듬해 11월 SK브로드밴드는 방송통신위원회에 재정을 신청하자 넷플릭스 측에서 2020년 4월 채무부존재 확인소송을 제기했다.
14개월에 걸친 치열한 공방 끝에 서울중앙지법은 원고(넷플릭스서비시스코리아·넷플릭스 인코퍼레이티드) 측 패소 판결을 내렸다. 이는 ISP와 CP 사이 갈등을 다룬 최초의 사례라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특히 당시 넷플릭스 측 주요 주장은 모두 기각됐다. 우선 넷플릭스는 접속(access)과 전송(delivery)의 개념이 다르며 CP의 의무는 콘텐츠를 제작하고 연결 지점에 올려두는 것에 그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접속은 유상, 전송은 무상'이라는 인터넷 기본 원칙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아울러 넷플릭스는 SK브로드밴드를 통해 인터넷 망에 접속하거나 적어도 연결 및 연결 상태 유지라는 유상의 역무를 제공받는다고 봐야 한다고 명시했다.
이에 따라 이중요금 부과라는 넷플릭스의 주장 역시 힘을 잃었다. 재판부는 "동일한 서비스에 관해 양 당사자로부터 이용대가를 수령하는 형태의 다면적인 법률관계는 현대사회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고 명시했다. CP 외에 일반 이용자, 기업, 기관 등 인터넷 망에 연결된 모든 이는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통신사 입장에 무게가 실렸다.
나아가 1심 재판부는 망 중립성을 위반했다는 넷플릭스의 주장도 기각했다. 망 중립성 원칙은 통신사가 자사 망에 흐르는 합법적 트래픽을 불합리하게 차별하는 걸 골자로 한다. 전송의 유상성 논의와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는 게 재판부 판단이다.

◇항소심서 다른 전략 택한 넷플릭스…'오컴의 면도날' 언급한 SKB
넷플릭스는 1심 패소 후 작년 7월 항소를 제기했다. 다만 이번에는 1심에서 통하지 않은 망 중립성 이슈 등을 논거로 제시하지 않고 있다.
대신 인터넷 세계의 확립된 관행인 '상호 무정산(Bill and Keep)' 원칙을 거론했다. 기업들이 서로의 이득을 위해 직접 연결을 할 경우 비용을 지급하지 않는 암묵적인 합의를 기본으로 한다는 원칙이다. SK브로드밴드는 착신 ISP에 해당하고 넷플릭스는 캐시서버 OCA(Open Connect Appliances)를 통해 송신 ISP 역할을 수행하니 상호 무정산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SK브로드밴드는 넷플릭스의 OCA가 데이터를 분산된 서버에 저장하는 CDN(Content Delivery Network)에 불과하고 직접 기간통신역무를 수행하는 건 아니라고 반박했다. 넷플릭스는 ISP가 아닌 CP인 만큼 ISP끼리 통용되는 상호 무정산 원칙을 적용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이밖에 넷플릭스는 애초에 비용 정산 없이 망을 연결하기로 합의한 만큼 상법 제61조 상인의 보수청구권을 주장할 수 없다는 입장도 내세웠다. SK브로드밴드는 애초에 넷플릭스가 망 이용대가를 내지 않았을 뿐 무상 합의를 체결한 바 없다고 반박했다.
SK브로드밴드를 변호하는 법무법인 세종은 항소심 2차 변론에서 '오컴의 면도날'을 언급했다. 어떤 사실이나 현상을 설명하는 주장이 대립할 때 논리적으로 가장 단순한 것이 진실일 가능성이 높다는 원칙이다. 이에 따라 참인 명제를 위해서는 복잡한 가정이나 조건, 설명은 면도날로 베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넷플릭스 측에서 무정산 원칙, 망 중립성 등 생소한 여러 인터넷 기본 원리를 논거로 제시했지만 SK브로드밴드는 넷플릭스가 자사의 망을 사용하고 있으니 이용대가를 내라는 게 전부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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