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er Match Up/농심 vs 삼양식품]글로벌서 다시 만난 라면 1위와 원조①[출범과 성장]계산된 해외 전략 농심, 우연 속 사업 축 바뀐 삼양식품
이우찬 기자공개 2023-09-01 08:03:42
[편집자주]
'피어 프레셔(Peer Pressure)’란 사회적 동물이라면 벗어날 수 없는 무형의 압력이다. 무리마다 존재하는 암묵적 룰이 행위와 가치판단을 지배한다. 기업의 세계는 어떨까. 동일 업종 기업들은 보다 실리적 이유에서 비슷한 행동양식을 공유한다. 사업 양태가 대동소이하니 같은 매크로 이슈에 영향을 받고 고객 풀 역시 겹친다. 그러나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태생부터 지배구조, 투자와 재무전략까지. 기업의 경쟁력을 가르는 차이를 THE CFO가 들여다본다.
이 기사는 2023년 08월 30일 16:35 THE CFO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1960년대 태동한 국내 라면시장은 식생활 문화 변화를 반영하는 상징적인 식품산업 중 하나다. 1963년 처음 판매된 라면은 대중의 선택을 받으며 한끼 식사를 대체할 수 있는 서민 음식으로 각광받았다.한국은 2021년 기준 1인당 연간 라면소비량 73개로 2위를 차지한다. 농심과 삼양식품은 국내 라면산업에서 빼놓을 수 없는 기업이다. 각각 라면 1위, 원조다. 삼양식품이 선발주자지만 국내시장을 장악한 건 농심이다. 단일 브랜드 연매출 1조원의 '신라면'을 앞세웠다. 시장에서는 1980년 초반부터 지속된 R&D(연구개발)와 투자, 브랜드 관리를 요인으로 꼽는다.
국내에서는 매출 규모 등 체급을 놓고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해외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2020년대 글로벌에서 다시 맞붙는 상황이 됐다. 변화는 주로 삼양식품에서 찾아왔다. 농심은 국내서 다진 시장 지배력을 내세워 라면사업에 집중하며 해외사업을 전략적으로 키웠다. 삼양식품은 불닭면으로 찾아온 우연한 기회를 포착해 글로벌에서 승부수를 띄웠다.
◇원조 vs 후발주자
'삼양라면'은 라면의 원조다. 1963년 9월 출시됐다. 고 전중윤 창업주가 당시 정부 주무부처인 상공부를 설득해 5만달러를 빌렸고 일본에 기계와 기술을 도입해 라면을 선보였다.
선발주자로 1970년대 말까지는 시장점유율 80%로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1980년대 농심의 파상공세를 버티지 못하고 선두를 내줬다. 2010년대 중반에는 '진라면'의 오뚜기에 2위 자리를 빼앗겼다.
삼양식품을 2위로 밀어낸 건 신라면이다. 신라면은 '라면=삼양라면'을 '라면=신라면'으로 쐐기를 박은 제품이다. 사실 농심은 신라면 이전 1980년대 초중반 너구리·안성탕면·짜파게티를 잇따라 선보이면서 1985년 라면시장 1위 사업자가 됐다. 1986년 출시된 신라면은 화룡정점이었다.
후발주자로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R&D뿐만 아니라 철저한 브랜드 전략을 구사했다. 농심은 '사나이 울리는 신라면', '쫄깃쫄깃 오동통통 농심 너구리'의 친숙한 로고송으로 소비자들의 머릿속에 각인됐고 다양한 라인업으로 선택권을 넓혔다. 반면 삼양식품의 신제품 개발은 뒤쳐졌고 역전을 허용한 뒤 농심과 격차는 걷잗을 수 없이 벌어졌다.
이 같은 차이를 낳은 것은 1982년 준공된 안성 스프공장이다. 농심 라면의 제품력을 한 단계 끌어올린 동력으로 손꼽힌다. 업계 관계자는 "농심은 안성 스프공장을 앞세워 업그레이드된 스프 기술력을 장착했다"며 "1985년 시장점유율을 역전하게 된 요인"이라고 말했다.
◇수직계열화 vs 사업다각화
사업 전략 측면에서 농심은 수직계열화로 본업인 라면사업 확장에 집중했다. 라면중심의 사업구조였다. 원료 생산을 시작으로 판매까지 계열사간 밀접한 내부거래 구조를 유지했다. 농심태경(스프), 율촌화학(포장재) 등 계열사를 구축해 라면사업의 경쟁력을 강화시키는데 주력했다.
수직계열화는 내부거래 현황에서도 나타난다. 농심태경은 지난해 기준 농심을 상대로 2248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농심태경은 농심홀딩스가 지분 100%를 보유한다. 전체 매출 4660억원 중 농심 비중이 48%에 이른다.
포장사업 담당인 율촌화학은 지난해 1875억원의 매출을 농심을 상대로 기록했다. 매출 비중은 36%를 상회한다. 곡물 제분업체 농심미분은 지난해 총 매출의 26%를 농심을 상대로 올렸다. 식품가공설비 제조를 맡는 농심엔지니어링도 농심을 포함한 내부거래 매출 비중은 23%다.
반면 삼양식품은 2000년대 중반 '맛있는라면'이 반짝 흥행했지만 삼양라면을 잇는 히트 제품을 내놓지 못했다. 원조의 헤리티지를 계승하고 확대 발전할 수 있는 제품 개발에 사실상 실패한 것으로 평가된다. 여기에 본업 이외 외식업에 눈독을 들이는 등 사업다각화에 몰두하며 본업 경쟁력 약화로 이어졌다.
2010년대 삼양라면은 김정수 부회장의 배우자인 전인장 회장 주도로 외식사업에 뛰어들었다. 2010년 호면당을 시작으로 제주우유, 크라제버거 등을 인수했다. 2014년 호면당에서 라면 전문 브랜드 '라멘에스'를 선보여 백화점 등에 입점했다. 그러나 시장에 안착한 외식 브랜드는 없다. 화력이 분산되면서 신제품 개발을 게을리할 수밖에 없었다. 2021년 11월 마지막 영업장이었던 호면당 광화문점을 폐점하면서 외식업에서 손을 뗐다.
◇글로벌 성장, 전략 vs 우연
10년 전인 2013년 기준 농심과 삼양식품의 연결매출은 각각 2조 867억원, 3027억원이었다. 권투로 따지면 헤비급과 라이트급으로 체급이 확연히 구분된다. 40년간 누적된 양사의 제품 라인업 확장의 과정, 사업 전략의 차이가 응축된 숫자다.
2022년 기준 농심과 삼양식품 매출은 각각 3조 1291억원, 9090억원이다. 여전히 체급은 다르지만 삼양식품의 성장 속도가 두드러진다. 2013년과 비교하면 두 기업의 매출성장률은 각각 50%, 200%다. 글로벌 무대에서 삼양식품이 최근 몇 년 두각을 나타낸 결과다.
농심과 삼양식품의 글로벌 전략은 전략과 우연의 산물로 요약된다. 농심은 미국·중국 등 거대 식품시장을 중심으로 영토 확장 전략을 차근차근 실행했고 삼양식품은 2010년대 중반 불닭면이 글로벌 SNS 플랫폼을 업고 흥행하면서 사업 중심 축을 180도 해외로 바꿨다.
농심의 해외 확장은 철저한 준비 속에 메인 시장 중심으로 이뤄졌다. 국내시장을 장악한 뒤 해외로 시선을 돌렸고 긴 호흡으로 접근했다. 미국 시장에 1984년 샌프란시스코 사무소를 설립했다. 2005년 LA공장을 가동하며 서부와 교포 시장을 중심으로 판매망을 확대했다. 일본의 저가 라면과 달리 프리미엄 제품으로 차별화를 꾀했다. 농심은 2017년 국내 식품 최초로 미국 월마트 전 점포 입점을 이뤄내며 시장에 성공적으로 뿌리내렸다.
중국시장도 계산된 전략으로 다가갔다. 농심은 일찌감치 1996년 상하이에 생산공장을 운영하며 중국 진출을 본격화했다. 1998년, 2000년 각각 칭다오공장, 선양공장을 가동했다. 1999년 창설된 바둑대회 신라면배는 농심의 중국사업 성장을 촉발하고 안정화시킨 디딤돌 구실을 했다. 바둑은 중국 4대 고전으로 불리는 삼국연의·수호전·서유기·홍루몽에 나올 만큼 중국인에게 스포츠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고 신춘호 회장 지시로 바둑을 농심 브랜드 인지도 제고에 적극 활용했다. 신라면의 성장뿐만 아니라 위기 국면을 버티고 넘어가게 한 동력이었다. 롯데마트와 롯데백화점 등이 2017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여파로 중국시장에서 철수했으나 농심은 20여년간 공들인 대회로 중국사업을 안정적으로 이끌었다. 2017년 기준 매출은 전년보다 소폭 줄었으나 2020년 처음으로 2000억원 고지를 밟았다.
반면 삼양식품의 글로벌 확장은 우연이 크게 작용했다. 불닭면은 2012년 출시 당시 먹을 수 없을 만큼 매운 맛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틈새시장에 등장했다. 2014년 한 외국인 유튜버의 불닭면 도전 영상이 변곡점이었다. 출시 5년이 지난 2016년 유튜브에서는 '불닭면 먹기 도전' 영상이 퍼졌다. 불닭면이 하나의 브랜드이자 핵심 사업으로 자리잡자 삼양식품은 불닭면을 중심으로 해외사업 새판 짜기에 돌입했다.
글로벌 사업에서 다른 길을 걸어온 농심과 삼양식품은 메인 시장인 미국에서 맞붙는 형국이다. 미국 2공장 가동으로 재미를 본 농심은 2025년 3공장 착공을 목표로 설정했다. 삼양식품은 2021년 미국법인을 설립한데 이어 작년부터 미국서 직접 영업을 확대하고 있다. 상반기 미국법인 매출은 약 648억원으로 작년 한 해 매출을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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