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3년 10월 17일 07시56분 thebell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나이를 먹었다는 지표 중 하나는 플레이리스트라 했다. 트렌디한 젊은 나이를 지나면 자꾸 듣던 노래만 듣는다고 한다. 나의 경우 여기에 아이돌 음악이 추가됐다. 한 아이돌의 신곡에 꽂히면 그 음악만 계속 듣는다. 요즘 꽂힌 노래는 아이브의 '이더 웨이(either way)'.제목처럼 어느 쪽이든, 좋거나 나쁘거나 모두 받아들이자는 내용이다. 곡의 전체를 요약하는 가사는 '사랑과 미움, 모두 다 가지면 되는 거야. 하나만 고를 필요 없는 거야.' 이런 의미도 더해진다. 내가 선택한 길을 가려면 사랑도 미움도 견뎌야 한다는 사실.
듣다보면 꽤 차분해진다. 일단 인생은 시작됐고 멈출 수도 없으니 어느 쪽이든 좋은 방향으로 가고 싶어진다. 지금 가장 속이 시끄러울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만약 사람이라면 이어폰을 나눠 꽂고 싶은 노래다.
결혼 준비가 늘어지면 싸움이 잦듯 합병 과정이 길어진 양쪽은 지금 서로 좀 서운한 듯하다. 한쪽에서는 어깃장이 자꾸 나니 불안하고 다른 쪽에서는 잘해보고 싶은데 불안을 이야기하는 상대에게 아쉽다.
일각에서는 두 항공사의 합병 자체를 멈춰야 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근거도 귀기울일만 하다. 아시아나 화물부문을 분리매각하면 기업 가치가 훼손된다는 점, 여객 이관까지 고려하면 결국 구조조정이라는 것 등이다. 가치판단을 차치해도 당초 기대와 달라진 건 사실이다.
반대 쪽에서는 무산이 더 큰 악재라고 평가한다. 대한항공은 여태껏 쏟은 기회비용을 날린다. 조원태 회장의 리더십에도 흠집이 난다. 3년이나 총력을 다한 사업의 실패다. 아시아나가 제3의 인수자를 찾을 때까지 버틸 만한 재무 체력이 있는 지도 따져볼 만한 요소다.
판단을 떠나 대한항공에게 남은 통로는 일단 가던 길을 가는 것이다. 짧은 줄 알았던 길이다. 타국에서 예상 밖 이정표를 자꾸 세우니 길도 길어지고 방향도 틀어졌다. 그 과정에서 모두의 응원만 받기는 이제 어려워졌다. 어쩌면 길이 많아 진퇴양난이다. 길이 달라진 만큼 대한항공은 응원에서는 힘을, 미움에서는 고려해야할 것들을 꼼꼼히 따져보고 나아가야 한다.
결론은 내년께로 전망되지만 두 항공사가 마음을 맞출 일정은 이제 보름여 남았다. 대한항공은 이달 시정서를 낸다는 계획이고 그 사이 아시아나 이사회의 결정이 내려져야 한다.
직업상 경제적 사고의 필요성을 곱씹으면서도 사람인 지라 다른 이의 불안과 파고에 마음이 흔들리는 때가 있는데 아시아나의 사례를 두고 그랬다. 대한항공이 귀기울여야 할 미움은 아시아나 임직원의 불안이기도 하고 항공업계의 독점 불안이기도 하다.
결국 마음을 더 써야하는 쪽은 팔리는 곳보다 사가는 곳이 아닐까. 합병이 당면과제니 전략의 초점이 경쟁당국에 맞춰진 것은 이해할법 하지만 팔리는 쪽의 서운함도 마냥 묵과해서는 안될 일이다. 많은 이해관계가 얽혀있지만 궁극적인 합병의 목표는 양쪽이 모두 사는 것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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