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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세가 된다면 더 아름답게' HD현대 정조대왕함 차세대 이지스구축함 배치-Ⅱ 1번함 공개…엄폐·공격 '업그레이드'

울산=허인혜 기자공개 2023-11-22 16:17:18

이 기사는 2023년 11월 22일 15:00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배 위에서 길을 잃는 건 색다른 경험이었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선발대를 따라갔는 데도 앞선 사람이 도는 코너를 한 번이라도 놓치면 길을 잃기가 다반사였다. 건물 7~8층 높이의 정조대왕함을 둘러보려면 쉼없이 계단을 오르내리고 끝없는 선실을 지나야 했다. 공개한 일부 구간을 돌아보는 데만 해도 숨이 찼다.

최태복 HD현대중공업 특수선사업부 이사는 "걷다보면 만보가 금방"이라고 했다. 길을 잃은 취재 팀이 속출했다고 하자 HD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실제로 이정도 규모 함정에서는 신병들이 길을 잃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HD현대중공업은 20일 울산광역시에 있는 특수선사업부 현장을 공개했다. 이날의 주인공은 우리 해군의 차세대 이지스구축함인 정조대왕함. 2022년 7월 진수된 정조대왕함은 2년 간의 시범운행 기간을 거친 뒤 내년 11월 인수돼 실전 투입의 뱃고동을 울린다. 정조대왕함의 겉과 속은 물론 모든 함정의 두뇌를 책임지는 통합관제센터까지 찾아가 봤다.
정조대왕함·충남항 전경. 사진=HD현대중공업

◇정조대왕함, 멀리 보고 먼저 쏘고 가장 빨리 처리하라

이날 방문한 특수선사업부는 '중후장대란 이런 것'이라는 감상을 단박에 들게 했다. 투어 버스는 특수선사업부 부지 입구에 들어선 뒤에도 한참을 달렸다. 압도적인 규모였다. 사진으로만 보던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이 줄지어 떠 있었고 거대한 야드 부지에는 대형 함정 하나를 거뜬히 건조하고 띄우는 싱크로·드라이 도크도 여럿 보였다.

특수선사업부의 최신 함정이자 자랑은 차세대 이지스구축함 정조대왕함이다. 투어를 맡은 최태복 이사는 정조대왕함의 외관을 소개하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그도 그럴것이 초대형 선박이면서도 앞면은 칼면처럼 날렵했다.

이지스구축함은 탄도탄 등 미사일 위협 대응을 목적으로 한 특수선이다. 수백㎞ 밖에서 쏴올린 미사일을 탐지, 요격할 수 있어 '제우스의 방패'라는 이름에 걸맞는 위력을 지녔다. 우리나라는 지난 1994년 도입을 결정했고 배치-1 사업을 통해 당시 세종대왕함을 포함, 총 3척을 확보했다.

길이 170m에 선박의 중량인 경하톤수도 8200톤(t), 지하3층과 지상5층 규모로 500개 격실에 승조원만 300명이 수용된다. 7000t급 이상의 이지스구축함은 미국과 일본, 우리나라만 운용 중인데 디자인 면에서도 단연 앞선다는 자신감이다. 멋진 디자인을 위해 자동차 디자이너까지 고용했다고 한다.

'멋부림'에 나선 이유는 정조대왕함이라는 이름에 걸맞기 위해서다. 정조대왕은 "내실도 중요하지만 적에게 기세가 될 수 있다면 아름답고 멋진 것도 의미가 있다"는 말을 남겼다 한다. 멋만 부린 게 아니다. 기능도 전 세대를 훌쩍 뛰어 넘는다. 날렵하고 미끈한 선체는 그만큼 레이더 반사면적(RCS)을 줄여 탐지가 어렵다. 크기는 키우면서도 방어 능력은 향상됐다는 이야기다.

그만큼 군함에게 엄폐는 생명과 직결되는 기능이다. 반대로 그 조용함을 탐지하는 능력은 공격력을 높인다. 구축함의 금과옥조는 멀리 보고 먼저 쏘고 가장 빨리 처리하는 것이라고 관계자는 말했다. 그 기능은 통합 소나(SONAR)체계가 책임진다.

통합 소나 체계는 음향 센서를 통해 적 잠수함 등 수중 위협요소를 탐지한다. 신형 구축함에서는 탐지거리를 늘린 저주파 기반의 소나체계를 차용했다. 선체 고정형 음탐기 등이 통합돼 있다. 이밖에 적의 탄도탄을 탐지하고 추격, 요격하는 3축 체계도 갖췄다.

정조대왕함은 해상만 책임지지 않는다. 대지, 대공 능력도 보유했다. 함대지유도탄과 발사체인 되는 한국형수직발사체계(KVLS)를 처음으로 설치했다.

갑판도 쓰임이 남달랐다. 널찍한 가판에는 마치 차고처럼 보이는 두 개의 창고가 보였는데 헬기를 두 대까지 수용할 수 있는 공간이다. 바다를 달리는 군함에게 헬기와의 공조는 대공 군사력을 끌어올리는 필수 요소다. 세종대왕함 건조부터 출범한 전투체계통합팀의 힘이다.
정조대왕함 선상. 사진=HD현대중공업

◇'미니'함도 길이만 129m…도크에선 수상·잠수함 동시에 띄운다

정조대왕함에 앞서 예열로 둘러본 곳은 충남함이다. 충남함은 호위함으로 구축함인 정조대왕함과 규모와 쓰임이 다르지만 미니 이지스함이라고 불릴 만큼 닮은 부분도 많다. '미니'라는 수식어가 붙었지만 크기가 결코 작지 않다. 길이 129m, 폭 14.8m, 높이 38.9m 크기다. 선박의 중량인 경하톤수도 3600t이다.

충남함은 울산급 배치-3의 첫 번째 함정이다. 함정 건조는 우선 '울산급' 등 하나의 세대를 갈라 구분짓고, '배치(Batch)는 기술력의 향상을 나타내는 척도다. 2024년 가장 먼저 인도되는 충남함은 현재까지의 울산급 중 가장 최신식 모델이라는 의미가 된다.

미니 이지스함으로 불리게 된 이유는 다기능 위상배열레이더(MFR) 때문이다. 4면 고정형 위상배열레이더로 어느 방향에서 공격이 발생해도 탐지·추적하고 여러 표적을 동시에 대응하는 것도 가능해 졌다.
충남함 진수식. 사진=HD현대중공업

이날 얻은 짤막 상식 하나. 구축함 이름은 어떻게 지을까. 통상 영웅적 왕이나 장수, 호국인물 들의 이름을 따 붙인다. 다만 생각지 못한 관점도 있었다. 예컨대 이순신, 강감찬, 최영 장군은 군함에 이름을 붙였지만 김유신 장군은 빠지게 됐다. 신라의 대표 장군이자 존경받을 만한 명장이지만 민족간의 전투에서 공훈이 있는 인물을 배제한다는 원칙에 따라 삼국통일의 주역인 김유신 장군을 제외하게 됐다는 설명이다.

거대한 싱크로·드라이 도크도 눈에 띄었다. 도크만 9곳이다. 벙커 형태로 푹 파인 건조 도크는 벽면에 지상으로부터 11m 아래라는 표식이 적혀 있었다. 넓이로만 보면 정조대왕함의 각 부품들이 꽉 들어차는 크기다. 정조대왕함은 배의 부품인 블록 중 가장 큰 대조립 블록 100개가 들어간다.

특히 물을 채워 진수해보는 싱크로 도크는 생소했다. 호수처럼 물을 채워둔 도크로 커다란 밑판이 움직이면서 배를 받쳐 올렸다 내린다. 굳이 물을 방수하지 않아도 깊이 조절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구축함, 호위함 등 선박뿐 아니라 잠수함도 동시에 진수할 수 있는 기능을 갖췄다. 국내에서는 도크에 잠수함과 수상함을 동시에 띄울 수 있는 곳은 HD현대중공업 뿐이다.

◇정확도 높이는 관제센터…특수선사업부, '맞춤형' 수출길 열었다

해군 생활만 30년을 했다는 최 이사도 긴장하는 때가 있다고 했다. 배가 첫 진수를 할 때다. 데이터를 면밀히 검수해 시뮬레이션을 여러번 돌려보고, 정확한 데이터에 따라 배를 건조한 만큼 예상 성능처럼 실제 배가 나아갈 지를 따져보는 첫 진수가 특수선사업부에게는 가장 떨리는 순간이라는 이야기다.

2년 간의 시범운항을 하는 것도 그때문이다. 정조대왕함은 여전히 대부분의 설비를 포장 상태로 사용하고 있다. 2년동안 실제로 운항해 보지만 인도할 때는 새것 같은 배를 전해주고 싶어서다.
통합 디지털 관제 센터. 사진=HD현대중공업

앞으로는 진수식의 긴장과 시범운항도 부담이 덜어질 가능성이 높다. 통합 디지털 관제센터 때문이다. 지금은 상선 위주로 운영하지만 보안이슈가 없는 범위 내에서는 특수선사업부도 활용할 계획을 세웠다.

190평 규모의 관제센터에는 정면에만 54개 모니터가 각자의 정보값을 송출하고 있었다. 계류중이거나 운항 중인 모든 선박의 현황과 시운전 공정현황, 장비 상태는 물론 날씨와 해상정보도 여기서 한 눈에 보인다.

다방면으로 발전한 HD현대중공업 특수선사업부는 수출 길도 넓히고 있다. 휴전 중인 우리나라와 타국의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맞춤형 설계도 필수다.

필리핀 초계함 건조가 대표적이다. 섬이 많은 필리핀은 무게를 덜어내고 항속 거리가 긴 배를 요구한다고. 길이 118.4m, 폭 14.9m, 순항 속도 15노트(약 28km/h), 항속 거리 4500해리(8330km)로 '고객'에게 맞췄다. 22일 3200t급 필리핀 초계함 1번함의 기공식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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