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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판결문 뜯어보기]1심 판결 가른 삼성물산의 '기업가치 제고'⑥법원, 프로젝트-G 승계계획안 '불인정'…사업상 합리적인 목적 인정

이상원 기자공개 2024-03-04 07:13:04

[편집자주]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관련 1심 재판에서 이재용 회장의 무죄가 확정됐다. 덕분에 삼성은 '국정 농단' 사태부터 7년여간 이어졌던 총수의 사법 리스크를 당장은 벗어나게 됐다. 비록 검찰이 항소를 했으나 재판부가 19개 모든 혐의에 '무죄'를 준만큼 2심 선고의 변동성도 크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다. 이런 가운데 재판부가 삼성의 손을 완전히 들어준 까닭이 무엇인지도 관심을 끈다. 더벨이 입수한 해당 판결문에는 합병 과정에서 이 회장과 삼성의 어떠한 위법행위도 없었다는 재판부의 메시지가 명확히 담겨 있었다. 1589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판결문을 뜯어본다.

이 기사는 2024년 02월 29일 07:53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재판에서 검찰은 이재용 회장을 정조준했다. 총 19개에 달하는 모든 혐의에 이 회장을 핵심 피고인으로 지목했다. 모든 합병 과정이 이 회장의 승계와 경영권을 강화하기 위한 목적만으로 추진됐다는 논리를 펼쳤다.

삼성의 순환출자 구조에서 삼성물산은 합병 전부터 중요한 위치에 있었다. 삼성전자 지분을 직간접적으로 보유하며 지배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합병 전 이 회장의 삼성물산 지분은 전무했다. 다만 그에게는 제일모직 지분 23.2%가 있었다. 합병으로 이 회장은 통합 삼성물산 지분 16.4%를 확보했고 지금의 지배구조가 완성됐다.

검찰은 이 과정에서 이 회장의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해 삼성물산에 불리한 합병 비율로 주주에게 피해를 줬다고 봤다. 반면 삼성은 제일모직의 바이오 사업을 흡수해 삼성물산의 기업 가치를 높이기 위한 결정이었다고 정면으로 반박했다. 결국 합병이 삼성물산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가 재판 유무죄를 갈랐다.

◇검찰, 최소 비용으로 총수 지배력 강화…'증거 부족' 판단한 법원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을 두고 검찰이 이 회장의 승계를 위한 전략적 결정이었다고 기소한 배경에는 '프로젝트-G' 문건이 존재한다. 미래전략실(이하 미전실)이 작성한 해당 문건에는 '지배구조 개선의 필요성', '승계·계열분리 대비' 등 내용이 포함돼 있다. '지배구조 개선 검토 목표', '대주주 지분율 강화', '후계 구도'도 언급되면서 검찰은 이를 승계계획안으로 확신하게 됐다.

해당 문건을 토대로 검찰은 삼성이 의도적으로 이 회장이 대주주로 있는 제일모직에 유리하도록 합병 비율을 결정한 것으로 봤다. 이를 위해 제일모직을 상장시키고 주가를 인위적으로 부양해 합병 가치를 높게 책정했다고 주장했다. 최소한의 승계 비용으로 합병 법인에 대한 이 회장의 지분율 상승효과를 극대화했다는 것이다.

반면 삼성은 프로젝트-G 문건은 승계계획안이 아니라고 강조해 왔다. 그룹의 지배구조 개선 방안을 종합적으로 검토한 문건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해당 문건에 담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방안은 삼성물산 지배력 강화, 순환출자 해소 등을 위해 검토됐을 뿐 실행이 확정된 것도 아니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해당 문건에 대해 검토한 결과 재판부는 검찰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 승계만을 위한 목적으로 이뤄졌다고 볼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오히려 재판 과정에서 드러난 여러 증거나 사실 관계를 감안해 삼성물산의 사업적 목적도 합병의 이유라고 판단했다.

법원은 "프로젝트-G 문건은 미전실 자금 파트에서 검토만 했던 다양한 지배구조 개선 방안이 담겨 있다"며 "고(故) 이건희 회장의 타계로 막대한 상속세 납부, 외부 규제 환경 변화에 따른 지분율 변화에도 그룹 지배구조를 유지하는 방안을 종합적으로 검토한 보고서로 볼 수 있다. 이를 승계계획안이라고 단정 짓기는 어렵다"고 판결했다.


◇삼성, 시너지 감안한 합병 강조…경영 안정화는 주주에게도 이익

그동안 재판 과정에서 삼성은 시너지를 고려한 합병이었다는 논리를 펼쳤다. 합병 전 삼성물산의 사업 부문은 건설·상사 두 축으로 이뤄졌다. 하지만 합병 전부터 건설 부문은 이익 감소가 나타났고 현재 바이오 부문이 이를 만회하고 있다는 게 삼성의 주장이다. 바이오는 과거 5대 신수종사업으로 선정된 삼성의 미래 사업이다.

합병 전 삼성물산의 건설·상사 부문은 하향세를 보이고 있었다. 삼성물산의 매출 목표를 절반 이하로 낮추는 상황에서 건설은 업황이 악화되는 모습이었다. 상사는 시장 축소로 어려움을 겪었다. 비즈니스 모델에 변화를 주고 신성장 동력에 대한 고민으로 합작사 설립 등을 검토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삼성은 합병 후 삼성물산의 신성장 동력은 바이오 사업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신용평가사들도 당시 삼성물산의 등급 전망을 긍정적으로 전망했다. 일례로 한국신용평가는 제일모직은 '부정적' 검토 대상에, 삼성물산은 '긍정적' 검토 대상에 올렸다. 현금 창출력과 재무 구조가 열위한 삼성물산이 제일모직과의 합병으로 이를 개선할 것으로 기대했다.

실제로 2015년은 불황으로 건설사들의 신용등급이 줄강등되던 시기였다. 당시 대형 건설사 가운데 신용등급을 안정적으로 유지한 곳은 삼성물산이 유일했다. 이때 삼성물산의 장기 신용등급은 'AA-'였다. 합병 후 현재는 'AA+'로 국내 건설사 가운데 가장 우량하다.

재판부는 결국 삼성의 주장을 받아들여 1심 무죄 판결을 내렸다. 법원은 "합병 전 삼성물산은 성장 정체를 극복하기 위해 여러 시도를 하던 중 제일모직 경영진과 협의를 거쳐 양사가 직접 합병을 추진했다"며 "미전실은 합병 TF 등과 협의해 관련 업무를 지원했다. 향후 발생 가능한 문제점, 합병의 대략적인 절차 등만 검토했을 뿐"이라며 판결의 근거를 제시했다.

그러면서 "삼성은 합병 과정에서 삼성물산과 주주의 이익을 도외시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룹 지배력 강화, 경영권 안정화는 삼성물산과 주주에게도 이익이 된다"며 "합리적인 사업상 목적이 존재하는 이상 합병에 지배력 강화 목적이 수반됐다 하더라도 합병 목적이 전체적으로 부당하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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