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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이 진정한 유토피아를 만들려면 [thebell desk]

박상희 벤처중기1부장공개 2024-07-08 09:27:41

이 기사는 2024년 07월 05일 07:54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아무 것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곳이 있다. 가난과 배고픔, 취업, 노후 등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곳이다. 화폐 자체가 존재하지 않으니 불로소득도 없고 빈부격차도 없다. 상인과 변호사라는 직업이 필요하지 않은 곳이다. 차별과 계급도 존재하지 않는다.

16세기 영국의 정치 철학자 토마스 모어가 상상한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이상향' 유토피아의 모습이다. 그는 저서 '유토피아'에서 인간에게 적당한 노동은 하루 6시간이라고 주장했다. 유토피아인들은 정오까지 3시간 일하고 점심을 먹는다. 점심 먹고 2시간 정도 쉰 후에 3시간 일한다. 그 이후는 잠을 자거나 여가 시간을 즐긴다.

근로시간 기준 유토피아에 가장 근접한 기업은 스타트업이다. '주 4일제', '주 30시간대 근무'를 내세운 스타트업이 등장한 지 벌써 몇 년 됐다. 실제 주 32시간이나 35시간 근무를 실천하는 곳도 많다. 탄력적 근로시간제, 재택 및 원격 근무 등을 통해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도록 업무 자율성을 높이는 방식도 병행한다.

이같은 흐름은 자유로운 분위기와 직원의 자율성을 추구하는 스타트업 특유의 조직 문화 때문이다. 더불어 연봉이나 급여 측면에서 대기업에 밀릴 수밖에 없는 스타트업이 인재를 유치하거나 붙잡아두기 위한 고육지책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타트업씬에서 개발자 등 인기가 많은 직종 근로자가 더 높은 급여와 직급, 더 좋은 복지혜택을 제공하는 곳을 찾아 적을 옮기는 것은 일상다반사다.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고용의 안정성은 직장을 선택하는데 있어 중요한 고려 요소다. 모험 자본으로부터 유치한 투자금으로 운영되는 스타트업이 경영상 어려움에 처했을 때 취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선택지가 정리해고를 비롯한 인력 감축 카드다.

더벨 리그테이블에 따르면 상반기 국내 벤처캐피탈의 스타트업 투자는 전년 대비 증가했지만 호황기와 비교하면 온전히 해빙 무드에 진입했다고 보기 어렵다. 유니콘 수준의 기업인데도 불구하고 자금난에 시달리는 곳이 많고 한때 잘 나갔던 스타트업도 체면을 구기면서까지 밸류에이션을 낮춰 다운라운드(down round)를 돌기도 한다.

생존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임직원의 동요도 클 수밖에 없다. 이런 때일수록 파운더(창업자)의 역할이 중요하다. 임직원에게 비전과 목표를 명확하게 제시하고 비전을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전략을 공유해야 한다. 회사의 방향성과 비전에 임직원이 공감하고 동기부여가 돼야 지속 성장할 동력을 얻을 수 있다.

2015년부터 대한변호사협회(변협)와 갈등을 겪어 온 로앤컴퍼니(로톡 운영사)의 사례는 참고할만한다. 변협이 로톡을 변호사법 위반으로 고발했지만 결국 무혐의 또는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최종 결정이 내려지기까지 무려 8년이 걸렸다. 임직원의 대규모 이탈이 있을만 했지만 로앤컴퍼니가 아니면 그 누구도 리걸테크 업계 1위가 될 수 없다는 김본환 파운더의 비전과 리더십이 빛을 발했다. 지난해 2월 인고의 시간 끝에 꺼내들었던 희망퇴직 실시 직전 임직원 수가 100명을 웃도는 등 피크였다는 점이 이를 방증한다.

토마스 모어가 그린 유토피아는 일을 하지 않아도 경제적 풍요를 누릴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 이상향으로 꿈꾼 세상에서도 노동과 근로는 필수적이었다. 일정 수준 이상의 일을 해야만 여가시간이 더 소중해지고 추구하는 행복의 크기도 더 커진다고 봤다. 더 적은 근로시간과 더 많은 복지 혜택만이 '훌륭한' 스타트업의 준거가 되어선 안된다. 파운더의 비전과 리더십이 울림을 주는 스타트업이 늘어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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