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리츠 지배구조 분석]'거수기' 이사회, 주주가치 보호 기능 '물음표'낮은 보수, 운용사 측근 인사 선임 '불가피'…의사결정시 AMC·스폰서 영향력 '우세'
정지원 기자공개 2024-11-21 07:35:29
[편집자주]
코스피에는 20개 위탁관리리츠가 거래되고 있다. 위탁관리리츠는 자산관리회사가 주주들을 대신해 리츠의 투자운용을 맡는다. 주주들의 이익을 옹호할 이사회가 필요한 이유다. 하지만 상장리츠 이사회가 자산관리회사와 스폰서의 거수기 역할을 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무리한 신규자산 편입과 유상증자, 잇따른 운용상 이슈로 주주가치가 훼손되는 사례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더벨이 주주와 이사회를 중심으로 상장리츠 지배구조를 분석하고 개선점을 들여다 봤다.
이 기사는 2024년 11월 15일 07:20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상장리츠의 의사결정에 대한 투자자들의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하반기 이어진 대규모 유상증자로 인해 대다수 투자자들이 지분가치 희석 문제를 겪었다. 리파이낸싱 등 운용 리스크가 번진 몇몇 상장리츠들은 배당컷을 발표하기도 했다. 주주들은 자산관리회사(AMC)가 주주의 이익보다 운용사와 스폰서의 이익을 우선에 두고 있다고 보고 있다.이 가운데 다수 상장리츠들의 이사회가 거수기 역할만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운용사 함께 일하는 로펌이나 사무수탁사 등에서 머릿수를 채우고 있는 곳들이 많다. 이사진에 보수를 거의 지급하지 않는 구조로 인해 전문성 있는 인사를 선임하기가 어려운 영향이 컸다. AMC 경영진과 대주주 스폰서를 견제하고 주주가치를 보호할 수 있도록 상장리츠 이사회가 개선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연이어 대규모 유상증자·운용상 이슈 발생…주가 폭락, 행동주의 '물결'
국내 상장리츠는 총 24개다. 위탁관리리츠 20개, 자기관리리츠 3개, 기업구조조정리츠 1개로 나뉜다. 한국리츠협회에 따르면 상장리츠의 지난 9월 말 기준 시가총액은 8조1358억원, 운용자산 규모(AUM)는 23조446억원으로 나타났다.
위탁관리리츠 점유율이 AUM 기준 95% 이상을 차지한다. 위탁관리리츠는 AMC가 신규 투자 및 자산운용 업무를 수행하는 리츠를 의미한다. 반면 자기관리리츠는 부동산 투자를 전문으로 하는 주식회사로 상근 임직원이 직접 자산을 운용한다. 기업구조조정용 리츠는 구조조정용 부동산에만 투자할 수 있는 한계를 갖고 있지만 AMC를 두고 있다는 점에서 기본적인 성격은 위탁관리리츠와 비슷하다.
위탁관리리츠는 다른 공모리츠들보다 더 합리적이고 투명한 경영상 의사결정이 이뤄져야 한다. 리츠는 부동산 간접투자 시장 활성화를 위해 국토교통부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정책성 상품이다. 특히 코스피에서 거래되고 있는 위탁관리리츠는 개인 투자 비중이 높다는 점, 자산의 투자운용을 AMC가 위탁한다는 점에서 주주가치를 보호하기 위한 장치가 필수적이다.
최근엔 AMC를 둘러싼 상장리츠 투자자들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 투자자의 이익이 아닌 AMC나 대주주인 스폰서의 이익을 위해 리츠를 운용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AMC가 투자운용 수수료를 받기 위해 무리하게 신규자산을 편입하고 유상증자를 진행해 주주가치를 훼손한다는 시각이 대표적이다. 유동성 확보가 필요한 스폰서의 자산을 고가에 매입한다는 지적도 빗발쳤다. 리파이낸싱 등 운용상 의사결정이 필요할 때도 주주보다는 AMC의 이익을 우선한다고 보고 있다.
투자자들의 지적은 일견 타당하다. 올해 하반기에만 6개 이상의 리츠가 신규자산 편입 등의 목적으로 총 1조원 규모 이상의 유상증자 소식을 알렸다. 수년간 리츠업계가 개점휴업 상태였던 만큼 연내 신규 투자를 마무리 지으려는 전략의 일환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시장 내 유동성이 뒷받침되지 않았던 만큼 유상증자를 추진한 상당수 리츠의 주가가 하락한 뒤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운용상 이슈가 발생한 글로벌리츠 투자자들 사이에선 행동주의 움직임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해외 자산을 담은 글로벌리츠는 신규자산 편입을 위한 유상증자는 추진하지 않았다. 하지만 리파이낸싱 비용 상승, 자산가치 하락에 따른 배당 유보, 환율 급등으로 인한 환헤지 정산금 발생 등 각종 문제가 생겼다. 이로 인해 몇몇 리츠는 배당컷을 예고한 상태다.
주가는 더 큰 폭으로 떨어졌다. 글로벌리츠들의 주가는 공모가 대비 최소 20%대에서 60%대까지 하락했다. 향후 운용 방향에 대한 불확실성이 큰 데다 전반적으로 IR 활동이 미진한 문제도 겹쳤다. 이 때문에 투자자들은 AMC 보수 삭감이나 이사진 교체 등을 적극적으로 요구하고 나섰다.
◇통상 1인 사내이사 외 2인 이상 기타비상무이사 체제…견제 역할 '미미'
리츠 이사회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AMC와 대주주 스폰서를 견제하고 주주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이사회가 운영돼야 한다. 하지만 부동산투자회사법은 일부 상법 예외 조항을 뒀을 뿐 상장리츠 이사회의 활동과 기능을 위한 별도의 규정을 만들어 놓지 않았다. 이사회가 명목상으로만 존재하고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상장리츠는 기본적으로 상법에 따라 이사회를 두고 있다. 상법 제388조에 따라 이사회는 최소 3명 이상의 이사를 선임해야 한다. 이 외 의장 선임, 이사 보수 등 구체적인 이사회 운영 원칙은 회사별로 정관에 규정해 놓은 상태다.
대다수 리츠들이 대표이사를 겸하는 1인의 사내이사와 2인 이상의 기타비상무이사로 이사회를 구성해 놓은 것으로 나타났다. 회사는 상법 제542조 8항에 따라 사외이사를 선임해야 한다. 하지만 리츠는 부동산투자회사법 제49조 1항에 따라 위 상법 조항의 적용이 배제된다. 사외이사를 선임하지 않고 이사회 내 위원회 역시 별도로 두지 않아도 된다.
법인이사를 두고 있는 리츠도 있다. 상법상 자연인이 아닌 법인이 이사를 맡는 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2012년 부투법이 개정되면서 리츠는 법인이사를 선임할 수 있게 됐다. 리츠의 효율적인 자산운용을 위해 회사인 AMC가 이사로 이름을 올릴 수 있게 길을 열어뒀다는 의미다. 대신 법인이사가 대표가 될 경우 2인 이상의 감독이사를 선임하고 감독이사 중 1인은 공인회계사가 돼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상장리츠 이사회 구성은 통상 위의 두 부류로 분류된다. 이사진의 면면은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명목상 이름을 올리고 있는 거수기 역할을 하는 데 그치고 있다고 업계는 지적한다. 법인이사 제도를 채택한 경우엔 경영상 의사결정에서 AMC의 입김이 더 셀 수 밖에 없다고 보고 있다. AMC 및 스폰서에 맞서 독립적으로 이사회 활동을 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전문성 있고 위상이 높은 이사진을 선임하기 어려운 영향이 크다. 대다수 리츠들이 기타비상무이사에는 보수를 지급하지 않고 있다. 대표이사(사내이사)와 감사에도 월 100~200만원 사이 소정의 보수만을 제공하고 있다. 이익의 90% 이상을 배당해야 하는 리츠는 다른 상장사들에 비해 비용 절감에 대한 요구가 큰 편이다.
이 때문에 법무법인이나 세무사, 사무수탁사 등 AMC와 가까운 회사의 구성원이 기타비상무이사로 이름을 올리는 경우가 많다. 말 그대로 거수기 역할밖에 할 수 없는 구조가 된 셈이다. 이사진의 전문성이나 책임 있는 이사회 활동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AMC나 대주주인 스폰서가 리츠 의사결정을 독점하는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쉬운 구조가 이미 자리 잡았다는 분석이다.
물론 몇몇 상장리츠 기관투자자들은 이사회에 참여하기 위해 다양한 방식을 시도 중이다. 프리IPO 참여 조건으로 자사 인원을 기타비상무이사 등으로 1인 이상 포함시킨다는 내용의 주주간 계약을 맺고 있는 곳들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여전히 소액주주의 목소리를 대신할 수 있는 이사회 기능은 약한 실정이다.
리츠 전문가로서 한 상장리츠 이사로 이름을 올리고 있는 업계 관계자는 "상장리츠 이사가 사람들에게 매력적인 자리는 아닌데다 사실상 무보수나 마찬가지"라며 "보통 AMC와 가까운 회사 내 인력의 이름을 올려 놓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한 상장리츠 운용역은 "이사회 역할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대기업 그룹의 스폰서 리츠들은 전문가 선임을 위해 노력하는 편"이라고 설명하면서 "최근엔 기관투자자들을 중심으로 이사회에 참여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어 변화가 예상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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