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5년 03월 14일 07시41분 thebell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산업 하나를 짚어 기업별로 다루는 기획을 하다보면 중반 즈음 늘 난관에 부딪힌다. 대기업을 쓸 땐 수월하다. 상장사여서 덩치도 크니 실적을 뜯어볼 만한 보고서가 철마다 나온다. 기업설명회며 각종 자료만 확인해도 말할 거리가 차고 넘친다. 소통 창구도 명확하다. 질문을 정리해 전달하면 금세 깔끔한 답변이 온다.문제는 중견기업부터다. 정보가 한정적이니 질문이 느는데 질의처 찾기가 막막하다. 커뮤니케이션실이 없어 영업본부나 경영지원부문부터 두드려봐야 하는 곳도 여럿이다. 최근 취재한 중형 조선사나 기자재 기업들도 연락이 쉽지 않았다. 사나흘간 매일 전화해 겨우 관계자와 말을 튼 곳도, 마케팅 담당자가 아닌 다른 부서의 직원이 답변한 곳도 있었다.
한 중형 조선사와 통화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실무 관계자와 연락이 닿았는데 몸에 익은 취재 습관대로 신사업 계획과 과거의 이력, 현재의 진단을 어지럽게 물었다. 그 관계자는 "저희는 그냥 저희가 잘 하는 일을 계속 할 뿐"이라고 했다. 투박한 답변이었는데 이상하게 울림이 깊었다.
그 말은 '중형 조선사는 어떻게 살아남았는가'에 대한 답처럼 들렸다. 어느 산업이나 덩치가 작은 기업일수록 불황기의 상처는 깊고 호황기의 기쁨은 얕다. 불황 속 대형사가 휘청거리는 사이 중형 조선사 일부는 문을 닫았다. 살아남은 곳들도 오랜 적자를 견뎌야 했다.
중형 조선사들은 정공법으로 파고를 헤쳐 왔다. 대선조선은 2023년 10월부터 워크아웃에 들어갔다. 신규 수주는 중단됐다. 그래도 도크는 분주했다. 기수주했던 선박들을 인도하기 위해서다. 주문 받은 선박은 올해까지 모두 차질없이 납품한다는 목표다.
케이조선은 긴 시간 중형석유화학제품운반선(MR)에 천착해온 끝에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중대형급 선박 건조의 명맥을 이어온 대한조선은 수에즈막스급 원유운반선의 선전 속 지난해 중형 조선사들의 수주액을 이끌었다.
다음 항로도 닦아뒀다. 중형 조선사들의 연구 이력을 보면 어려움 가운데서도 신사업 발굴을 위해 애쓴 흔적이 읽힌다. 공통 키워드는 고부가가치 선박이다. LNG·암모니아 이중연료 추진 선박 등 친환경 선종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저가 수주의 고리를 끊겠다는 의지다.
조선업은 대표적인 사이클 산업이다. 다음 터널은 이미 예고돼 있다. 찾아올 불황기, 국내 중형 조선사들이 이번엔 좀 더 잔잔한 파도를 건널 수 있을까. 기대가 지나친 낙관은 아닐 것이다. '잘 하는 일을 계속 할 뿐'이라는 단순한 정공법이 방향타가 되어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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