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銀-현대그룹 '파혼' 치닫나 "주거래은행이 신뢰 깨"-"원칙대로"..20년 동고동락 '흔들'
이 기사는 2010년 05월 18일 17:49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인생에서 길흉화복은 항상 바뀌어 미리 헤아릴 수가 없다. 기업과 은행의 관계도 '새옹지마'다. 기업 내용이 좋을 땐 만사형통이다. 악재가 불거지면 끈끈하던 인연은 악연으로 돌변하기 쉽다.
재무구조개선약정 체결을 둘러싸고 20여년 동고동락하던 외환은행과 현대그룹의 갈등 관계가 딱 이 꼴이다. 양측은 18일 기업과 은행의 신뢰관계가 상황이 바뀌면 어떻게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는지 극명하게 보여줬다.
현대그룹은 이날 보도자료를 내고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데도 재무구조개선약정 체결 대상으로 선정된 것은 유감"이라며 "현대상선은 빠른 시간 내에 외환은행에 대한 채무를 모두 변제하고 고객사와 해운업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주거래 은행을 변경하는 방안도 적극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루 전 주채권은행인 외환은행이 산업은행, 신한은행, 농협 등 부채권은행과 함께 이달 말까지 현대그룹과 재무구조약정을 맺기로 의결하자 공식적으로 반발한 것이다. 주거래은행을 바꿀 수 있다고 까지 한 것은 '반발' 차원을 넘은 것으로 해석된다.
현대그룹측에서는 노골적으로 섭섭함을 토로한다. 양측은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현대家'를 일으킬 때부터 맺어왔던 관계. 외환은행이 은행권 부침 속에서도 지금까지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 현대그룹의 역할을 빼 놓을 수 없다. 그런 은행이 글로벌 금융위기로 기업실적이 잠시 주춤하자 "등에 칼을 꽂으려 한다"는 서운함이 배어 있다.
금융권에서도 양측의 끈끈한 관계는 잘 알려져 있다. 한때 현대그룹 본사가 있던 서울 계동 외환은행 지점장은 행내에서 임원 승진 1순위였다. 외환은행 고위 임원이 퇴임 후 현대그룹 계열사로 자리를 옮기는 사례도 많았다.
이랬던 양측의 관계에 변화가 온 계기는 외환은행의 주인이 바뀌면서부터로 알려져 있다. 외국인 주주가 외환은행을 인수한 이후 경영진 사이에서 과거와 다른 정서 내지는 문화가 생겨난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은행권의 한 관계자는 "외환은행이 예전의 외환은행이 아니다. 경영진 판단이 시중은행 판단과 다르다. 예를 들어 과거에는 대체적으로 정부가 추구하는 정책에 적극 발을 맞추려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외환은행의 외국인 경영진은 기존의 이런 문화를 이해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현대그룹은 그 사이 그룹이 분리되고 금강산 관광 등 대북사업이 남북관계 경색으로 위기에 빠지는 아픔을 겪게 됐다. 그룹의 위상이 예전만 같지 않은 상황에서 바뀐 외국인 경영진을 설득하기가 예전만 못했을 것이다.
이런 와중에 재무구조개선약정 대상으로 추가되자 현대그룹이 섭섭함을 공개적으로 토로한 것이다. 현대그룹의 한 관계자는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해야 하는 주거래은행이 마치 현대그룹이 재무약정을 맺는 부실대기업의 대표라도 되는 것처럼 외부에 관련내용을 흘려 부정적 이미지를 심어주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물론 외환은행도 할말은 있다. 요약하면 '원칙대로'다. 외환은행 관계자는 "현대그룹의 유감 표시 입장에 대해 공식적으로 노코멘트"라면서도 "이번 재무구조개선약정과 관련해 오해가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외환은행이 단독으로 추진한 것처럼 나타나는데 부채권은행이 동의하지 않으면 (재무약정이) 이뤄지지 않았다"며 "금융감독원 가이드라인이 있고 은행연합회 준칙도 있다"고 덧붙였다. 이어 " 지금처럼 현대그룹과 외환은행의 대결구도를 원하지 않는다"며 내부 분위기를 전했다.
업계에서는 양측이 이번 사태를 계기로 과연 결별까지 하는 '파국'으로 갈 지 주목하고 있다.
하지만 쉽지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현대그룹은 주채권은행을 바꾸려면 기존 채무를 갚아야 하지만 여의치 않다. 외환은행도 매각 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때 현대그룹이 주요 자산 포트폴리오에서 빠져나가게 되면 가치 하락이 생길 수 있다. 이래저래 서로 결별하기는 부담스럽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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