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11년 04월 11일 07:48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지난해 새롭게 문을 연 신생 벤처캐피탈은 13개에 달했다. 2006년(13개) 이후 최대치다. 서울투자파트너스, 매지링크인베스트먼트, BMC인베스트먼트, AK강원인베스트먼트, 슈프리마인베스트먼트, 본엔젤스벤처파트너스 등. 최대주주도 제조업체부터 IT업체, 엔젤투자자, 지방자치단체 등 다양하다.
아무래도 정책금융공사와 한국IT펀드(KIF), 국민연금, 모태펀드 등의 출자규모가 늘어난 것이 영향을 미쳤다. 벤처투자 시장에 자금이 풍부해지면서 신생사들의 참여도 늘어난 셈이다. 이들 신생사는 하나같이 “벤처투자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고 산업 성장에 기여하기 위해 벤처캐피탈을 설립하게 됐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런 신생사들을 바라보는 기존 벤처캐피탈의 시선은 그리 우호적이지 않다. 과연 3~5년 뒤에 이들 신생사 중 몇 곳이나 살아남아있겠냐는 의문을 제기한다. 실제로 지난해 문을 닫은 벤처캐피탈도 10개나 된다. 단순히 '박힌 돌'이 부리는 심술로 볼 수는 없다.
한 벤처캐피탈 대표는 “신생사의 최대주주 중에 벤처캐피탈 업무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곳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다”며 “이들이 단순히 벤처투자 시장에 돈이 몰린다고 해서 별 생각 없이 벤처캐피탈을 설립했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크게 후회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벤처캐피탈의 수입은 크게 관리보수와 성과보수로 나눠진다. 예를 들어 A라는 벤처캐피탈이 100억원 규모의 조합을 결성했다고 치자. 그러면 약정총액을 기준으로 보통 2.5%인 2억5000만원을 연간 관리보수로 받게 된다. 조합 규모가 1000억원 이상으로 커질 경우에는 관리보수가 약정총액의 1% 초반대로 낮아지기도 한다.
조합 존속기간을 7년이라고 가정할 경우 2.5%라는 기준은 초기 투자기간 3년 동안에만 적용된다. 나머지 4년간은 투자잔액 기준으로 바뀐다. 만약 A가 초기 3년간 80억원을 투자했고 10억원을 회수했다면 나머지 4년간 받는 관리보수는 7500만원(투자잔액 30억원 기준 2.5%)이란 얘기다.
A가 조합을 잘 운용해 내부수익률(IRR) 기준 7~8% 이상의 수익을 거둘 경우에는 유한책임투자자(LP)가 초과수익의 20%를 A에게 지급해준다. 이를 성과보수라고 한다. 인센티브 개념으로 생각하면 된다.
이를 토대로 신생사의 수익원을 계산해보자. 최근 설립한 신생사들의 자본금은 대부분 50억원이다. 신생사의 경우 트랙레코드(track record)가 없기 때문에 국민연금, 정책금융공사, KIF 등 대형 LP로부터 출자를 받기가 쉽지 않다. 유일한 대안은 한국벤처투자(모태펀드)로부터 초기기업 투자조합의 운용사로 선정되는 것이다.
초기기업 투자조합은 보통 100억원 규모다. 운 좋게 조합 결성에 성공할 경우 연간 2억5000만원의 관리보수가 들어온다. 이마저 투자초기 3년간이다. 투자 이후 회수기간을 감안하면 초기 3년간 성과보수를 받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신생사의 경우 총 임직원 숫자가 5명을 채 넘지 않는다. 그래도 연간 2억5000만원으로는 인건비와 사무실 임대비용 등 운전비용을 마련하기도 쉽지 않다. 사실상 적자가 불가피하다. 끊임없이 조합을 만들어 운용자산(AUM)을 늘려야 하지만 펀딩(funding)경쟁이 너무 치열하다. 올해 2월 기준 벤처캐피탈은 총 103개나 된다.
1~2개 조합을 결성해도 관리보수만으로는 적자가 누적되게 마련이다. 초기 3년간 자본금을 수억원씩 까먹게 된다. 벤처캐피탈을 설립한 최대주주는 당황하게 된다. 수백억원을 운용하는 벤처캐피탈이니 가만히 있어도 수익이 나올 줄 알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후회막급이지만 빠져나올 길이 없다. 자신이 고용한 전문경영인을 닦달해보지만 관계만 악화될 뿐이다. 결국 5년이 채 지나지 않아 수억원의 손실만 입은 채 창투사 라이선스를 반납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벤처캐피탈의 가장 큰 고비는 초기 3~5년이라고 업계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초기기업과 같은 운명이다. 이 기간 내에 운용자산(AUM) 규모를 500억원 이상으로 만들 수 있느냐 여부가 중요하다.
500억원 이상이 되면 관리보수가 연간 12억5000만원(약정총액 2.5% 기준)이 들어온다. 적어도 직원들 인건비와 각종 운전비용은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이다.
문제는 이 짧은 시기에 AUM 500억원을 모으기가 결코 쉽지 않다는 점이다. 10년만에 업계 1위로 올라선 스틱인베스트먼트(이하 스틱)도 초기 3년간 고전을 면치 못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스틱처럼 짧은 시기에 급성장한 사례가 다시 나오기는 힘들 것”이라고 지적한다.
최대주주가 돈을 버는 것이 목적이라면 벤처캐피탈 사업은 적당치 않다. 그보다는 국내 벤처기업 육성을 목표로 그 과정에 보람을 느끼고 유무형의 희생을 각오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은 상당한 수익을 내면서 부러움을 한 몸에 받는 스틱이나 LB인베스트먼트도 초기 3년간은 가시밭길의 연속이었다. 심지어 이들도 투자에 실패해 수십억원의 손실을 본 경우가 허다했다.
하지만 그런 고난에 굴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돈벌이를 넘어 더 큰 목표와 이상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의 신생사들도 이 점을 항상 잊지 말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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