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3년 05월 25일 08:06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차도지계(借刀之計). 남의 칼을 빌려 나의 목표를 이룬다는 의미다. 병법서 '삼십육계(三十六計)'에 나오는 대목이다. 자신을 배신하고 서주를 차지한 여포를 조조의 칼로 죽게 만든 유비의 '차도살인'도 같은 맥락이다. 계략의 뉘앙스가 강하지만 경영학으로 장을 옮기면 전략적 제휴 정도를 차도지계로 볼 수 있다.토종 풍력발전 기업 '유니슨'은 글로벌 풍력시장에서 일합을 준비하고 있다. 전장은 녹록치 않다. 한마디로 중과부적이다. 글로벌 해상풍력 시장(중국 제외)을 베스타스(덴마크), 지멘스-가메사(독일), GE(미국) 등의 골리앗이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각국의 로컬사를 연쇄적으로 인수하는 방식으로 그들만의 리그를 구축했다. 터빈을 대형화하고 라이프 사이클을 줄여 진입장벽도 높였다. 1위 베스타스의 연 매출은 약 10조원, 유니슨은 2400억원(지난해 말) 수준이다.
3월 유니슨의 신임 대표이사로 선임된 박원서 대표는 최근 '차도지계'를 택한 배경에 대해서 절절하게 설명했다. 박 대표가 택한 칼은 중국의 밍양스마트에너지(밍양)다. 밍양은 중국 3위권(발전량 기준) 회사다. 최근 전략적 제휴를 맺은 데 이어 현장실사가 진행되는 등 협력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타깃은 명확하다. 글로벌 풍력 골리앗이다.
박 대표는 "발전사업 프로젝트 매출이 곧바로 반영되는 구조도 아니거니와 대형사에 맞서 신제품 출시 속도와 R&D 비용 리스크를 감당하기도 힘든 상황"이라면서 "주요 메이커들은 이미 수직계열화를 완성해 원재료 조달, 가격경쟁에서도 우위를 점하고 있다"고 말했다. 10조에서 1%만 R&D에 투입해도 유니슨 매출의 반(1000억원)이라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밍양의 칼을 빌리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게 박 대표의 생각이다. 중국 정부의 비호 아래 급성장한 중국 메이커들은 이미 자체 밸류체인을 내재화하고 있다. 거대한 내수 시장에서 비축한 자본력도 상당하다. 밍양의 연 매출은 5~6조원 가량, 생산시설은 18곳 정도다. 다만 웃자란 아이처럼 의욕은 넘치나 경험치가 부족한 게 단점으로 거론된다. 박 대표는 "우리는 그들의 밸류체인을 빌리고 그들은 우리의 경험을 빌리면 된다"고 말했다.
확정되진 않았지만 밍양과 유니슨은 협업 이상의 적극적 연합을 구상하고 있다. 대형 투자의 가능성이 크다. 해상풍력 시장에서 유의미한 점유율을 만들어 내기 위해 14~16M급 대형 터빈을 개발하고 있는 유니슨 입장에서는 양검을 빌려오는 셈이다. 밍양의 투자로 R&D에 속도를 내고 그들의 밸류체인을 활용해 가격 경쟁력도 키우는 그림이다. 국내에서 조립하니 'Made in Korea' 명분도 생긴다. 한국 바다를 노리는 베스타스는 하기 힘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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