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3년 11월 29일 07시49분 thebell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제약업계의 흔한 계약 중 하나가 '코프로모션'이다. A사가 개발한 의약품을 B사와 공동 판매하는 걸 말한다. 마치 '적과의 동침'과 같은 특이한 계약은 진입장벽이 높은 의약업 시장에서 윈윈 마케팅 전략으로 통한다.코프로모션은 보통 국내 영업조직이 없거나 작은 글로벌 제약사가 영업망이 넓은 국내 제약사와 손을 잡으면서 성사된다. 글로벌 제약사는 한국 병원 시스템에 빠삭하고 네트워크가 풍성한 국내사 영업 노하우를 통해 신약을 빠르게 안착시킬 수 있다.
국내사끼리도 코프로모션을 하는 경우가 있다. HK이노엔의 경우가 그랬다. 첫 신약 '케이캡'을 내면서 로컬 영업이 강한 종근당과 손을 잡았다. 결과는 '대박'이었다. 출시 3년 차만에 연매출 1000억원을 돌파했다.
코프로모션에 응하는 국내사도 얻는 게 있다. 가장 큰 이득은 오리지널의 장착이다. 제네릭 일변도인 국내사에서 오리지널의 존재가 주는 힘은 남다르다. 출시된 지 20년 넘은 올드 드럭도 전략적으로 코프로모션을 맺는 이유다.
손쉬운 매출 확대는 제약사가 대놓고 말하지 않는 달콤한 이득이다. 코프로모션을 하면 해당 약의 매출이 고스란히 판매사에도 잡힌다. 연 1000억원 매출을 내는 A사 약을 B사가 함께 판매하면 1000억원의 매출 이득을 양사 모두 받는다. 일명 '코프로모션 매직'이다.
잘 나가는 약의 코프로모션 계약을 따낼 때 이 효과가 두드러진다. HK이노엔은 상장 당시 MSD 백신 7종 판권을 가져오면서 코프로모션 매직을 한껏 누렸다. 당시 이들 백신의 국내 총매출 규모는 1500억원에 달했다. 백신을 대신 판매하는 것만으로도 1500억원의 외형 확대 효과를 얻은 셈이다.
코프로모션 매직은 신기루와 같다. 매출이 늘고 성장하는 회사처럼 보여도 실상 판매 수수료는 미미해 수익성이 나빠진다. 물건을 떼와 파는 도매상과 다를 바가 없다. 그래서 상품(직접 제조하지 않고 구매한 물건) 비중이 높은 제약사를 '외형만 제약사인 도매상'이라 비웃기도 한다.
신약 강자로 꼽히는 유한양행도 한때는 상품 비중이 더 높았다. 하지만 '렉라자'라는 오리지널리티를 확보하며 우려를 말끔히 씻었다. HK이노엔이 MSD 백신 판매계약을 끝냈어도 우려가 크지 않은 것 역시 케이캡의 힘이 크다.
반대로 1000억원 규모의 '가다실' 판권을 가져온 광동제약은 어떨까. 시장의 시선이 그리 긍정적이지 않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광동제약의 제약사업은 코프로모션이 목적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제약사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코프로모션은 유용한 수단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이는 더 높은 성장을 위한 수단일 때 빛을 발한다. 코프로모션이 목적이 되는 순간 제약사의 성장을 기대할 수 없다. MSD와 과감히 이별한 HK이노엔이 광동제약보다 더 기대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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