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4년 03월 22일 07:58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금융사 경영전략은 매년 초 발표되는 핵심성과지표(KPI)를 통해 임직원들에게 공유된다. 각 사마다 다르지만 대게 100페이지 안팎 분량으로 구성된다. 그해 집중해야할 영업활동에 대한 지침이 세세하게 담겨 있다.큰 틀에서 평가기준은 4가지 정도로 나뉜다. 소비자보호와 내부통제 관련 평가항목은 모든 금융사들에서 공통적으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다. 다만 세부 지침과 내용은 차이가 크다. 소비자보호의 범위와 주관 부서, 평가방식이 다르다. 내부통제 역시 각 사별 상황에 맞춰 전략방향이 다르다.
수익성과 건전성도 모든 금융사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평가요소다. 수익성 지표를 설계해 영업수익에서 각종 비용을 제한 수치로 각 영업점을 평가한다. 건전성 평가는 부실자산을 조기에 인식하고 사전적으로 관리하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러나 세부적인 내용을 들여다보면 수익성과 건전성 평가 기준과 방식은 각 사별로 편차가 크다.
금융사별 KPI에서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은 전략지표다. 경영전략에 따라 설계된 전략지표는 전체 KPI 배점의 50% 정도가 부여될 정도로 중요도가 큰 평가지표다. 그해 각 금융사들이 중점적으로 추진하는 영업기조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다. 주력으로 판매해야할 상품군과 전략적으로 확대해야할 비즈니스 영역, 경쟁사와 차별화를 꾀하는 영업전략 등이 지표화돼 전국 네트워크에 하달된다.
이처럼 KPI는 각 금융사의 내밀한 경영전략이 고스란히 담긴 일종의 경영지침서다. 그 만큼 보안이 철저하다. 모든 금융사들이 KPI를 대외비로 관리하고 외부 유출이 발생할 경우 최고 수준의 징계를 할 정도다.
최근 금융감독원은 홍콩 H지수 ELS 사태가 재발하지 않도록 다양한 제도개선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금융사 직원들의 성과평가를 고객의 이익과 연계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실적 경쟁을 부추기는 금융사의 KPI가 ELS 사태의 원인이 됐다는 분석에 기초해 KPI에 대한 감독을 강화하겠다는 뜻이다.
홍콩 H지수 ELS 사태를 둘러싸고 금융 당국 책임론이 불거지고 있는 가운데 금융 당국이 또 다시 금융사를 타깃으로 책임 회피에 나서고 있다는 의심을 지우기 힘들다. 대규모 배상안을 통해 금융사 책임론 굳히기에 들어간 뒤 곧바로 KPI를 구실로 금융사를 압박하려는 의도라는 의심도 든다.
그만큼 시장에선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금융사의 내밀한 경영전략이 담긴 KPI에까지 금융 당국이 관여하는 것은 자율경영을 무너뜨리는 행위다. KPI 설계 단계에서부터 금융 당국이 개입한다면 개별 금융사의 경영전략 자체를 당국 입맛에 맞게 좌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는 검사가 아닌 검열이다.
몇 년에 한번씩 대규모 비이자상품 부실 사태가 벌어질 때마다 금융 당국은 모든 화살을 금융사로 돌렸다. 그 때마다 금융사들은 시스템을 개선하고 내부통제를 강화하면서 발전하고 있다. 이제는 금융사 탓만 할 때는 지났다. 금융사를 압박하고 경영에 관여하는 방식으로는 재발 방지를 위한 근본 해결책을 찾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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