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5년 01월 09일 08:01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저희라서 더 안되는 게 있어요.”얼마 전 철강업계 관계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한 포스코그룹 관계자가 이렇게 말하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반덤핑 제소가 초래할 보복이 심각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포스코 입장에선 그럴 수도 있겠구나' 새삼 생각했다.
포스코는 국내 철강 대장주다. 국제사회에서의 영향력은 훨씬 크다. 회장은 세계철강협회의 고위 간부직을 도맡아 왔다. 회사는 세계적인 철강 전문 분석 기관 WSD로부터 15년 연속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철강사' 1위로 선정된 바 있다. 명실상부 업계 선두주자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업계를 취재하며 느끼는 실질적인 리더십은 현대제철에 있다. 현대제철은 지난 7월 중국산 후판에 대해 반덤핑 조사를 신청했고 12월에는 중국과 일본산 열연강판에 대해 반덤핑 제소를 단행했다. 중국·일본산 저가 철강재로 인해 답답했던 관계자들의 속을 시원하게 긁어줬다는 게 현장의 평가다.
현대제철은 지난해 12월 한 달 동안 철근을 하나도 팔지 못했다. 아니, 아예 팔지 않았다고 한다. 손익분기점을 밑도는 제품 가격 탓에 차라리 창고에 쌓아두고 판매를 포기했다는 전언이다. 현대제철은 포스코와 함께 유일하게 고로를 보유한 국내 양대 철강사다. 이런 상황을 감안하면 중견·중소 철강 업체들의 사정은 불 보듯 뻔하다.
이럴 때 눈 딱 감고 포스코가 반덤핑 제소에 동참한다면 어떨까. 물론 쉽지 않은 장면들이 그려진다. 위상이 위상인 만큼 중국과 일본 철강사들을 대면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 상대국들이 국내 다른 제품에 역으로 관세를 부과하며 보복할 가능성도 있다. 눈치껏 정부 분위기를 살펴야 할 처지인 셈이다.
그러나 포스코의 제소 동참이 가져다줄 분명한 순기능, 국내 철강업계의 생존을 지키겠다는 상징성에 있다. 특히 저가 철강재의 마구잡이식 유입은 생태계를 파괴하는 행위다. 업계 리더가 이를 단호히 저지하겠다는 메시지를 업계 전체가 기다리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앞으로 모든 제품에서 중국이 밀고 들어올텐데 그때마다 보복을 두려워할 것인가"라며 "원칙대로 행동해야 업계 질서가 바로 설 것"이라고 했다.
많은 이들이 말하듯 철강업은 사이클 산업이다. 비통함 속에서도 호황은 언젠가 다시 찾아오겠지만 역시 포스코가 흐트러진 판을 정리하고 호황의 시계를 앞당기는 데 선봉에 섰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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