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금 많은 조선사, 신용등급 하락 위험 한기평 신용평가 방법론 수정…"더 이상 현금으로 볼 수 없어"
이 기사는 2011년 09월 22일 07:04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조선사 선수금은 '언제든 빼 쓸 수 있는 현금'인가. 한국기업평가가 이 해묵은 논쟁에 종지부를 찍었다. 국내 조선사들의 선수금은 더 이상 현금성 자산으로 보기 어려워, 차입금으로 취급해 신용등급에 반영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이로 인해 선수금을 선박 건조에 사용하지 않고 타법인 인수자금이나 다른 대규모 투자에 소진한 STX조선해양(A-등급)의 경우 재무건전성 지표의 급격한 악화로 신용평가에서 상당한 감점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기업평가는 21일 '연속된 위기 속에서의 조선업 회고와 전망' 관련 세미나를 통해 "평가요소 측면에서 현금성자산으로의 성격만 반영해 왔던 선수금에 대해 영업부채로서의 이면을 반영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시황 침체가 장기화되고 선박계약조건이 달라지는 등의 사업환경 변화를 반영하기 위해서다.
정상훈 수석연구원은 "그동안 조선사는 선박 건조대금으로 20% 정도의 계약 선수금을 받게 되면 기성에 투입되기 전까지 현금자산으로 들고 있을 수 있었다"며 "그러나 여타 산업에서 보기 어려운 이 같은 구조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많이 희석됐다"고 말했다.
금융위기 이후 조선경기가 침체에 빠지고 선박금융이 끊기면서 계약선수금 비중이 크게 낮아지는 등 더 이상 현금으로 보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는 것이다.
선수금을 계속 현금으로만 인정하면 후발업체에 비해 사정이 훨씬 나은 빅3 조선사를 역차별하는 문제도 간과할 수 없었다. 빅3의 경우 금융위기 이후에 조선경기 침체를 극복하기 위해 해양플랜트 비중을 크게 늘렸다. 그런데 해양플랜트의 선수율은 기존의 상선시장에 비해 크게 낮은 것이 보통이다.
한기평은 내년초 조선산업 신용평가 방법론을 수정하면서 공식적으로 선수금의 부채성격을 평가요소에 반영할 계획이다. 선수금에서 현금성자산을 제한 금액만큼을 총차입금에 가산해 자산 대비 차입금 부담이나, 현금흐름 대비 차입금 등 상환능력을 재검토하겠다는 것이다.
선수금을 차입금으로 인정하게 되더라도 탈조선업을 목표로 종합중공업메이커로 변신 중인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은 상대적으로 영향을 적게 받을 것이란 전망이다.
대규모 수주로 올해 말 순차입금이 마이너스로 돌아서거나 급격히 줄어들 가능성이 높은데다 선수율이 낮은 해양 플랜트 비중이 크게 높아졌기 대문이다.
그러나 상선 위주의 조선사는 선수율이 높아 재무지표 훼손으로 나타날 수 있다. 차입금이 크게 증가해 차입금의존도의 상승과 현금흐름/차입금 배수의 악화를 피하기 어렵다.
개별 조선사별로는 STX조선해양의 상환능력에 대한 평가가 큰 폭 하향조정될 가능성이 높다. 대부분 선수금을 M&A 등에 소진하고 현금보유비중은 15%대에 그친다는 설명이다.
올해 6월말 현재 STX조선해양의 차입금의존도는 32% 수준이다. 한기평의 A등급 가이드를 충족하는 수준이다. 그러나 대략 1조원인 차입성 선수금을 감안할 경우 차입금의존도는 50%에 육박하게 된다. 현금흐름/차입금은 고작 3%에 그치게 된다.
연결기준 STX조선해양의 차입금은 4조9158억원에 달한다. 한국 본사와 STX대련 등의 차입성 선수금을 가산하면 6조원을 쉽게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실적이 조기에 큰 폭 개선될 것으로 기대하기 어려워 공격적인 자산매각을 통해 차입금 축소에 나서지 않으면 각종 재무지표가 크게 악화돼 신용등급에 빨간 불이 켜지게 된다.
정 수석 연구원은 "매출채권과 선수금 위주의 운전자본부담이 개선되지 않는 이상 차입부담이 완화되기 어려울 것"이라며 "특히 재무건전성관련 평가요소에 선수금이 추가 고려될 경우 추가적인 감축이 필요할 것"이라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