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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업'은 뒷전…무늬만 PEF난립 우려 "CRC경험만으론 쉽지 않아"...창업투자 위축될 수도

민경문 기자공개 2011-12-14 09:53:29

이 기사는 2011년 12월 14일 09:53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업계에서 벤처캐피탈(VC)의 사모투자펀드(PEF) 조성은 이미 ‘대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본업(창업 투자)보다 PEF에 무게중심이 쏠려있는 곳도 이미 상당수다.

한국벤처투자(모태펀드) 등에서 출자를 받아 100억원 정도의 벤처펀드를 운용중인 소형 벤처캐피탈들도 PEF조성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PEF보유 여부에 따라 벤처캐피탈의 ‘급'이 나뉜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여기에는 대형 유한책임투자자(LP)의 과감한 자금 출자가 배경이 됐다. 국민연금, 정책금융공사 등 대형 LP의 올해 PEF출자액은 1조5000억원에 이른다. 벤처펀드에 비해 회수 기간이 짧은 데다 투자 규모가 큰 만큼 기대 수익도 높다는 점이 매력이었다.

대다수 독립계 PE는 투자 제한, 타 LP와의 조건 차이 등으로 여기에 응하지 않았다. 실력을 갖춘 전문 PE의 경우 어차피 해외에서도 조달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들의 자리를 대신한 건 바로 벤처캐피탈이었다. 증권사PE는 오히려 벤처캐피탈보다도 낮은 대접을 받았다.

그렇다면 과연 벤처캐피탈이 PEF를 운용할 만한 자격은 제대로 갖추고 있는 것일까.

시장 전문가들은 건당 30억원 내외의 벤처투자와 몇 백억 혹은 수천억 단위의 PEF투자는 ‘급'이 다르다고 말한다. 투자 단위가 다른 만큼 의사 결정을 내리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경영권 참여가 필요한 만큼 사후 관리 측면에서 역량을 갖춘 벤처캐피탈을 찾기도 어렵다. 섣불리 PEF운용을 맡겼다간 자칫 관리 보수만 날리는 꼴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정책금융공사와 우정사업본부 등에서 PE운용사에 새로 선정된 벤처캐피탈은 대부분 기업구조조정전문회사(CRC)로서의 경험을 내세운다. CRC는 부실 징후 기업을 인수한 후 경영 정상화를 통해 수익을 올린다. 현재 제도 자체가 사라졌지만 스틱인베스트먼트, 원익투자파트너스, LB인베스트먼트 등이 과거 CRC를 통해 인수합병(M&A) 경험을 쌓았다.

하지만 CRC이력만 가지고 PEF에 도전하기란 쉽지 않다는 것이 업계의 공통적인 시각이다. 한 PEF관계자는 "부실 기업에서 출발하는 CRC와는 달리 PEF는 어느 정도 현금 창출이 보장된 중견 기업을 타깃으로 한다"며 "당연히 투자 전략 자체가 달라지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PE투자는 CRC보다 회수까지 걸리는 시간이 길다"며 "장기적인 산업 전망이 가능한 운용 인력을 가지고 있는지도 중요한 변수"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펀드 규모 또한 CRC(중소기업)에 비해 PEF(중견기업)가 훨씬 큰 만큼 펀딩 능력도 더 많이 요구된다"고 했다.

PEF의 꽃은 ‘바이아웃(Buyout)'이다. 기업의 경영권을 목적으로 투자하는 것을 말한다. 벤처캐피탈 가운데 바이아웃을 목표로 내걸고 PEF조성에 나선 곳은 찾아보기 어렵다. 대부분은 향후 기업의 성장성에 근간을 둔 그로스캐피탈(Growth Capital) 투자에 주력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있다.

말 그대로 경영권 인수보다는 우선주 혹은 전환사채(CB)나 신주인수권부사채(BW) 등을 통한 단순 지분 투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리스크가 적은 만큼 ‘대박'은 못 내더라도 이자 수익 정도는 안정적으로 거두겠다는 것이다. 바이아웃 투자는 역량이 부족하다는 점을 스스로 인정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일부 벤처캐피탈이 PEF를 통해 바이아웃에 도전하기도 했으나 결과는 대부분 좋지 않았다. 한 벤처캐피탈 PEF담당자는 "바이아웃은 이사진 파견부터 시작해 회사 하나를 새로 경영하는 것인 만큼 섣불리 나섰다가 낭패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사실상 PEF로 평가받는 스틱인베스트먼트 조차도 바이아웃 전력은 거의 없다.

설사 인수합병(M&A)를 시도하더라도 독자적으로 나서기보다는 전략적 투자자(SI)를 동반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두산계열 벤처캐피탈인 네오플럭스의 경우 올해 휠라-미래에셋 컨소시엄의 타이틀리스트 인수를 위한 재무적 투자자(FI)로 참여했다.

벤처캐피탈이 PEF로 몰리면서 업계는 무엇보다 초기 창업 투자가 위축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 '부업'(PEF)에 치중하느라 정작 '본업'(벤처투자)이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는 것이다.

스틱의 경우 지난 2008년 결성한 벤처조합이 마지막이었다. 모태펀드가 조성하는 창업초기펀드는 신생 벤처캐피탈의 전유물이 된 지 오래다. 상위권 벤처캐피탈의 경우 100억~200억 규모의 벤처조합 결성에 더 이상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한 중견 벤처캐피탈 관계자는 "1000억원 짜리 펀드를 만들어놓고 10억 규모의 투자를 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며 "수익을 키우기 위해 벤처캐피탈이 PEF로 발을 넓히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라고 했다. 그는 "모태펀드를 중심으로 창업초기 혹은 엔젤투자 펀드 출자가 활성화되고 있지만 벤처캐피탈이 PEF로 경도되는 것을 막기는 어려운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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