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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자 "수요예측, 빛좋은 개살구 될 수도" [수요예측편]⑦역할 증대에도 더욱 치밀한 규제·감독 요구

서세미 기자공개 2012-04-18 16:52:54

[편집자주]

2012년, 회사채 발행시장에 큰 변화가 예고됐다. 사실상 무늬에 그쳤던 대표주관사의 수요예측과 기업실사가 의무화된다. 이로 인해 관행으로 굳어졌던 수수료녹이기나 바터(barter) 등도 사라질 것으로 기대된다. 새로 도입되는 발행절차의 내용은 무엇이고 그로 인해 어떤 변화가 생길 것인지 머니투데이 더벨이 기획시리즈를 마련했다.

이 기사는 2012년 04월 18일 16:52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수요예측 의무화로 투자자들의 지위는 가격 수용자에서 가격 결정자로 격상(?)된 것이지만 초기 반응은 썩 좋지 않다. 우선 크고 작은 변화에 적응해야 하는 불편함이 수반되는데다 정보노출에 대한 불안, 금융투자협회가 마련한 수요예측시스템과 모범규준에 대한 불만, 발행사 대비 상대적으로 푸대접을 받는다는 느낌 등이 뒤섞여 있다.

투자자들은 절차만 복잡해졌을 뿐 발행자 편의의 시장구조가 변하지 않았다고 보고 있다. 제도가 시행되기도 전 발행사와 증권사가 '짜고치는 고스톱'에 투자자만 바보되는 현상이 재연될 여지가 충분하다는 것이다.

◇ 투자자, "수요예측 빈틈 많고 여전히 발행사 편의적"

수요예측을 통해 금융당국이 기대하는 가장 큰 효과는 발행금리와 유통금리의 왜곡을 해소하는 것이다. 증권신고서를 내기도 전에 투자자모집이 끝나는 사전매출과 금리 왜곡에 따른 수수료녹이기 등의 후진적인 관행을 없애는 것도 기대되는 긍정적인 변화다.

그러나 투자자들은 발행기업의 재량권이 너무 크다고 우려하고 있다. 조금 복잡할 뿐이지 여전히 금리결정의 주도권을 발행기업이 휘두를 수 있고 심지어 수요예측 자체를 무효화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발행사와 대표주관사가 종전처럼 사전매출을 해 놓고 희망금리를 낮게 제시하는 등 수요예측을 형식적으로 할 수 있지 않느냐는 지적이 있다. 의도적으로 미매각 물량을 만든 뒤 인수단이 떠안고 그 후 수수료를 녹여 사전매출한 투자자에게 판매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수요예측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 발행기업은 금리를 낮추거나 발행물량을 줄일 수 있고, 심지어 수요예측 결과에 불복해 발행을 철회할 수도 있다. 금융투자협회는 '평판리스크' 때문에 그렇게 할 기업들이 없을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입찰 취소를 허다하게 겪어온 투자자들의 의심은 생각보다 훨씬 뿌리깊다.

배정을 받고 투자를 철회할 경우 불성실 수요예측 참여자라는 불명예를 안게 되고 한달간 시장참여가 금지되는 것에 대해서도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모 자산운용사 본부장은 "발행시장의 많은 문제를 야기하고 있는 것은 투자자가 아니고 발행기업과 증권사들"이라며 "기업은 수요예측 결과를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고 투자자는 투자철회시 불이익을 받게 된다는 것에 억울해 하는 건 당연하다"고 말했다.

업무가 크게 늘어나는 것 자체도 불만이다. 지금까지는 친한 브로커를 통해 메신저로 주문을 내면 그만이었으나 이제부터는 정해진 시간에 맞춰 금투협 입찰 시스템에 로그인해 원하는 금리와 물량을 입력해야 한다. 회사채도 대표주관사에게 인수대금을 지불해야만 수령이 가능하며, 이 과정에서 청약서 작성이 필요하다.

다른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결국은 입찰과정만 더 복잡해졌을 뿐 예전처럼 발행사 중심의 시장이 형성될 것 같다"며 "투자자를 위한 제도라고 하지만 사실상 투자자가 할 수 있는 역할은 제한적인 데 반해 규제만 늘어난 느낌"이라고 말했다.

◇ 금융당국·증권사, "투자자에게 좋으면 좋았지, 더 나쁠 건 없다"

금융당국과 증권사는 투자자들의 우려와 불만이 과하다고 보고 있다. 제도가 개선되자마자 시장이 정상화될 것이라 기대하긴 어렵지만 수요예측 도입은 시장에 의미있는 변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의견이다.

여태까지는 발행사가 증권사들에게 직접 입찰을 받아 금리, 물량, 인수사 등을 결정했다. 결정하는 과정에서 오가는 내용은 발행사 외에는 알 수 없는 구조였다. 하지만 수요예측이 시행되면서 투자자는 정해진 가격에 회사채를 사오는 것이 아니라 직접 가격을 정할 수 있게 됐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투자자 입장에서 인수절차가 복잡해진 것 외에는 크게 나쁠 것이 없다"며 "기대했던 것 보다 변화될 것이 없다는 점이 실망스러울 수는 있지만 수요예측을 통해 발행사 중심 시장이 투자자 쪽으로 좀 더 기운 것은 사실이다"라고 주장했다.

금융당국 역시 이번 제도는 투자자들을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당국 관계자는 "투자자들이 우려하는 것처럼 편법이 시행되지는 않을 것"이라며 "기업실사 때와 마찬가지로 결국은 평판 리스크(repuatation risk)를 의식해 제도의 취지에 맞게 행동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기업실사가 시행된 직후 일부 증권사들은 '쉽고 간편한 기업실사'를 영업전략으로 내세우는 꼼수를 부렸으나 결국 비난에 못이겨 정상적인 절차를 밟기 시작했다는 설명이다.

감사에 대한 압박도 무시할 수 없다. 수요예측이 시행되면서 모든 발행과정이 문서화되면서 발행사와 증권사들의 편법을 잡아내기가 쉬워질 예정이다. 여태까지는 수수료녹이기가 공공연하게 이러졌음에도 증거가 없어 제재가 힘들었던 부분이 있다.

◇ 정보 접근성에 대한 불안감 커…세밀한 규제 및 감독 요구 커

하지만 투자자들의 불만에도 이유가 있다. 가격형성과정에서 투자자들의 역할이 커졌다고는 하나 투자자 입장에서 정보 투명성에 대한 아쉬움이 남는다. 정부나 증권사 입장에서는 과거보다 정보 공유가 수월해졌지만 투자자들은 오히려 정보 접근성이 낮아진 감이 있다. 대표주관사 외에 다른 인수사들과의 거래가 금지되면서 정보를 제공받을 수 있는 체널이 줄어들었다. 게다가 수요예측이 비공개입찰로 진해되는 탓에 배정 기준을 알기가 어렵고 결과도 통보 받는 입장이다.

투자자들이 갖는 불만은 결국 아직 명확하지 않은 부분이 많다는 불안감에서 비롯된 것으로 파악된다. 즉 투자자들이 수요예측의 목적에 좀 더 공감하고 협조하기 위해서는 투자자들을 안심시킬 수 있는 촘촘하고 세밀한 규제·감독이 필요하다는 요구다. 한 투자자는 "예전보다 나아질 것으로 기대하지만 지금까지 나온 규정만으로는 불안한 감이 있다"며 "발행사와 계열관계에 있는 증권사들간의 거래규정이라든지 입찰금리를 조회할 수 있는 증권 담당자의 제한 등에 대한 구체적인 규정이 마련됐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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