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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예측 의무화, 채권발행시장 새 질서 세웠다 [수요예측편]①투자자 금리결정 주체로…사전매출·수수료녹이기 차단

황철 기자공개 2012-04-17 10:14:14

[편집자주]

2012년, 회사채 발행시장에 큰 변화가 예고됐다. 금융당국과 증권업계가 고민 끝에 만들어 낸 제도개선이 본격 시행된다. 사실상 무늬에 그쳤던 대표주관사의 수요예측과 기업실사가 의무화된다. 이로 인해 관행으로 굳어졌던 수수료녹이기나 바터(barter) 등도 사라질 것으로 기대된다. 새로 도입되는 발행절차의 내용은 무엇이고 그로 인해 어떤 변화가 생길 것인지 머니투데이 더벨이 기획시리즈를 마련했다.

이 기사는 2012년 04월 17일 10:14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오는 17일부터 국내 회사채 시장에도 수요예측 제도가 본격 도입된다. 기업실사 의무화에 이어 회사채시장 선진화를 위해 정부와 업계가 야심차게 준비한 발행제도 개선의 또 다른 축이다.

투자자보호를 강화하는 것에 무게를 두었던 기업실사 의무화는 회사채 시장에 급격한 변화를 몰고 오지 않았다. 그러나 수요예측 의무화의 경우 국내 채권시장의 고질적인 병폐로 여겨지던 발행사에 의한 사전매출, 증권사의 수수료 녹이기를 통한 인수 경쟁 등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있어 상당한 파급효과를 발휘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기업이 음성적인 입찰을 통해 주도하던 가격결정(발행금리) 기능이 발행사-증권사-투자자가 모두 참여하는 '시장형'으로 바뀌게 된다. 또 기업실사와 수요예측이 자리를 잡게 되면 외국인 등 투자자 저변 확대, 증권사의 주관서비스 질 향상, 장기 회사채 발행 여건 개선 등 장기적으로 긍정적인 영향이 적지 않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 회사채 가격 결정, 적정성·투명성 확보

국내 회사채 시장에는 발행절차의 핵심 과정 중 하나인 수요예측이 사실상 없었다. 발행기업이 금리를 정해 주고 인수사들을 동원해 사전에 투자자를 확정한 뒤 증권신고서 제출이나 총액인수 등은 요식행위로 진행됐다. 정작 채권을 사야 할 투자자들은 가격결정에서 배제됐다.

가격결정이 발행기업에 의해 이루어지고 증권사들의 인수경쟁마저 치열해 지면서 발행금리가 시장의 컨센서스를 현격히 하회하는 현상이 비일비재했다. 결국 증권사들은 발행기업에서 낮은 금리(높은 가격)로 채권을 인수한 뒤 최종 투자자에게 넘길 때는 인수수수료를 얹어 주는 일명 '수수료 녹이기'를 불사하는 파행적인 영업행태를 보여왔다.

이로 인해 발행금리와 유통수익률간 괴리가 점점 고착화되는 등 시장 왜곡 현상이 심각했다. 증권사들은 금리 불균형에 따른 손실을 떠안으면서까지 단순 실적 경쟁에만 매달렸다. 수수료 녹이기를 통한 사실상의 무수익 영업이었다.

수요예측 1편

투자자 입장에서도 이같은 관행은 채권 정보와 가격에 대한 신뢰를 잃게해 회사채 수요기반을 약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앞으로 수요예측이 본격화하면 시장 참가자 모두가 회사채 가격 결정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하게 된다. 투자자 스스로가 희망금리와 수량을 제시하고 발행사는 그 결과를 바탕으로 대표주관사와 협의해 최종 조건을 확정한다.

이 과정에서 구심점은 대표주관회사다. 대표주관사는 발행사와 투자자 사이에서 희망 매출·매입 가격의 간극을 조절하며 공모금리 결정의 전 과정을 조율한다. 투자자에 밴드금리와 물량을 제시할 때는 기업의 의사보다 민평이나 시장상황 등 채권의 객관적 가치를 추정해내야할 능력과 의무를 요구받는다.

이 때 투자자에 제시한 금리는 참고용일 뿐 강제성을 갖지 않기 때문에 공모금리의 결정은 오직 수요예측 결과를 바탕으로 한다. 사전매출과 같은 관행이 자연스럽게 사라져갈 것으로 기대하는 이유다. 특히 모범규준 상 수요예측 이전에 발행금리를 확약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어 기업의 입김이 개입될 여지도 크게 줄었다.

기업이 일방적으로 금리 결정하던 구조가 수급에 기초한 시장 참가자 전체의 협의로 바뀌면 자연스럽게 발행·유통수익률의 간극도 좁아진다. 이렇게 되면 IB가 수수료 녹이기를 통해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영업에 나설 개연성도 줄어든다. 발행사·투자자 입장에서도 적정 금리에 대한 기준을 찾게 돼 유무형의 비용을 줄일 수 있다. 기업은 시장 컨센서스를 인식해 좀더 손쉽게 조달을 마무리할 수 있다. 투자자 역시 가격 변동에 대한 불확실성을 해소해 거래 리스크를 낮추게 된다.

◇ 회사채 발행의 모든 과정 대표주관사 거쳐야…책임과 권한 동시 확대

대표주관사는 수요예측에 참가한 투자자에게도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투자자의 성향이나 매입 희망금리의 적정성 등을 판단해 수요예측 과정에서 가중치를 통해 우대나 패널티를 줄 수 있다. 회사채 배정 후 청약 불참, 납입금 미납, 정보 허위 작성 등 수요예측에 불성실하게 참여한 투자자를 가려내 자율규제기획부(금융투자협회)에 제출하는 역할도 갖는다. 건전한 수요예측 참여와 공모금리 적정성 확보를 위한 의무이자 권한인 셈이다.

물론 제도 도입 초기 현재 사전 태핑처럼 기관 투자자 등에 희망 매입금리나 수량에 대한 의사를 타진할 가능성도 있다. 특히 발행사에 사전에 금리를 확약하고 대표주관계약을 체결한 후 인수단과 미매각 물량을 나눠 받을 수도 있다. 이후 일정수준 금리를 높여 투자자에게 되파는 등 변형된 형태의 수수료 녹이기에 나설는 것도 예상해 볼 수 있다. 이같은 부작용을 최소화하며 빠른 시일 내에 제도를 정착할 수 있게 하는 게 숙제라면 숙제다. 이를 위해서는 금융당국의 강력한 정책 의지와 제도 선진화에 대한 공감대 형성이 필수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바뀐 제도 아래에서 사전 청약이나 인수를 확약하는 행위는 원칙적으로 금지된다"며 "일정부분 자율성을 부여했지만 발행사·투자자 모두 시장 질서를 위배한 경우 향후 조달이나 투자에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레퓨테이션 리스크를 인식한 자율규제가 제대로 작동하면 빠른 시간 내에 시장에 정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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