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12년 06월 01일 07:20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포비아(phobia)는 특정 대상이나 상황에 국한해 발생하는 공포를 의미한다. 고소공포증과 심해공포증, 바늘공포증 등이 대표적이다. 전문가들은 지속적인 스트레스와 공포 상황에 대한 학습 효과를 포비아의 발병 원인으로 설명하고 있다.무서울 것이 없어 보이는 국내 대표 대기업 KT에게도 공포(?)의 대상이 있다. 바로 사모투자펀드(PEF)가 그 주인공이다. 자산 규모 33조원의 IT공룡이 PEF만 만나면 한없이 작아지기 때문이다.
최근 KT는 PEF인 MBK파트너스가 보유하고 있는 KT렌탈 지분 42%를 전량 인수하기로 결정했다. KT는 2010년 MBK와 컨소시엄을 구성해 금호렌터카를 인수했다. 이후 KT렌탈과 금호렌터카가 합병되면서 MBK는 2대주주가 됐다.
KT렌탈이 정상궤도에 오르자 KT는 MBK 지분을 털어내기 위해 올해 초 기업공개(IPO)를 꺼내들었다. 공동 경영권을 가진 MBK 지분을 시장에서 처분해 단독 경영권을 확보하겠다는 의중이었다. 하지만 MBK는 인수 당시 KT와 맺었던 주주간 계약을 근거로 적정가치를 KT측에 요구했다.
IPO 여부를 두고 갈등 양상이 빚어졌지만 결국 판세는 MBK측으로 기울었다. KT는 상장 주관사 후보들이 책정한 밴드 최상단 가격으로 MBK 지분을 인수하기로 했다. 취득 비용만 2200억원에 달했다. 인수 당시 1300억원을 투자했던 MBK는 2년 여만에 2배 가량의 투자 수익을 거두게 됐다.
유력 경쟁사를 컨소시엄 파트너로 끌어들여 타깃 회사를 인수한 후 그룹 시너지로 창출된 밸류에이션 상승분을 경영권 프리미엄으로 챙긴 '바이아웃 전략'의 진수라는 평가가 MBK에 쏟아졌다. KT는 MBK의 수익 창출을 도운 좋은 지렛대가 된 셈이다.
KT가 PEF의 좋은 엑시트 창구가 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KT는 지난해 계열사인 KT스카이라이프 IPO에 나섰을 때도 공모에 앞서 어피니티에쿼티파트너스(AEP)의 지분을 사들였다. 오버행 이슈 해소와 지배력 강화가 목적이었다.
2008년 우선주 560주(무상감자/액면분할 전 1400만주)를 700억원에 취득했던 어피니티는 해당 지분을 KT측에 무려 1232억원(주당 2만2000원)에 팔았다. 투자한지 2년10개월 만에 2배에 가까운 수익률을 달성한 것. 결과적으로 공모가가 1만7000원에 머무르면서 어피니티에게 큰 이득이 되는 거래가 됐다.
IPO를 앞두고 FI 지분을 정리하는 것은 발행사의 전략에 따라 충분히 선택 가능한 옵션이다. 하지만 KT의 경우는 전략적 선택이라기보다는 단기적 의사결정이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KT렌탈은 2대주주와의 갈등 봉합을 위한 차악책 성격이 강했고, KT스카이라이프는 결국 손해보는 거래를 했기 때문이다. 반대로 PEF들은 엄청난 투자 수익을 챙겼다.
FI와의 협상 능력이나 공동 경영 경험이 부족한 KT가 PEF에 계속 휘둘리는 모양새다. KT의 인심(?)은 IB시장에서 미덕이 아니라 무능으로 비춰질 수 있다. KT의 PEF 포비아가 단순한 기우로 그칠지 구조적 약점으로 부각될지 다음 행보를 지켜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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