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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은행 리오픈 발행, 알고보면 '준비된 홈런' 철저한 준비의 산물…타이밍 잡기 힘든 시장, 신속한 발행이 생명

한희연 기자/ 서세미 기자공개 2012-06-29 15:43:27

이 기사는 2012년 06월 29일 15:43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산업은행이 '단 12시간만에' 글로벌본드 리오픈(추가 발행: Reopen) 을 성사시키자, '기습적이다', '전격 발행이다' 등 여러 수식어가 따라붙고 있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딜이 등장한데 따른 당연한(?) 시장 반응이기는 하지만, 화려한 '한 방'을 위한 산업은행의 준비는 치열했고 조심스러웠다. 유럽 재정위기로 금융시장의 분위기가 자고나면 바뀔 정도로 변동성이 심한 상황에서는 준비된 발행자만이 최적의 타이밍을 잡아낼 수 있는 법이다.

◇ "리오픈 발행, 사실은 예전부터 비밀리에 만지작거리던 카드예요"

27일 오전 9시반, 바클레이즈·스탠다드차타드·씨티글로벌마켓증권·UBS·KDB아시아 등 다섯개 IB에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산업은행 국제금융실로부터였다. 전날에도 특별한 언지는 받지 못했었다. 10시, 다섯개 주관사들은 리오픈 발행 멘데이트를 부여받았다. 하루가 채 지나지 않아 5억 달러의 글로벌본드 리오픈 발행이 성사됐다.

양승원 산업은행 국제금융실 외자조달팀장은 "빠르게 진행됐다고 해서 결정도 급작스레 내린 것은 아니다"라며 "리오픈 발행이 새로운 조달방식으로 괜찮을 거 같다는 생각에 미리 만지작 거리고 있던 카드"라고 밝혔다.

국제금융실 실무자들은 이미 이달 초부터 발행을 염두에 두고 시장을 탐색했다. 6월엔 재무장관회의 등 유럽 관련 이벤트들이 줄줄이 대기해 있었다. 실무자들은 언제 어떻게 열릴지 모르는 윈도우에 대비해, 미리 준비할 수 있는 부분은 차근차근 만들어 놓고 있는 상태였다. 지난 22일에는 미국 SEC에 채권 발행 등록을 했다. 27일 새벽 서류의 효력이 발생했다는 통지가 오자마자, 산업은행은 본격적인 행동에 착수했다.

리오픈발행의 경우 기존채권의 유통금리가 확실히 존재하기 때문에 목표 발행가격 선정시 논란의 여지가 적다. 추가발행 대상인 2017년8월 만기채권은 이날 오전 '미국 국채수익률(T)+185bp'에 거래되고 있었다. 투자 모멘텀을 키우기 위해 넉넉하게 'T+195bp(area)'에 이니셜가이던스를 잡았다. 27일 12시 딜어나운스와 함께 투자자 모집을 시작했다.

아시아시장에서 청약북은 예상보다 빠르게 쌓였다. 유럽시장으로 넘어갈 즈음엔 이미 18억 달러의 주문이 들어왔다. 당초 산업은행이 설정했던 목표 발행금액은 2억5000만~5억 달러 선. 리오픈 발행이기 때문에 기존 채권보다도 더 큰 규모로 발행하면 가격 면에서 투자자에게 불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발행금리를 낮출 단계라 판단한 산업은행은 'T+185~190bp'에 수정 가이던스를 제시했다. 'price within the range'라는 문구를 추가, 주문이 더 쌓이더라도 가이던스를 수정하지 않겠다는 뜻도 분명히 했다. 미국장이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 최종 가격을 확정했다. 가이던스 하단인 'T+185bp'에 5억 달러를 발행하기로 했다. 딜 어나운스 시점으로 부터 12시간이 지난, 28일 자정 즈음이었다.

◇ "급변하는 시장 상황, 리오픈이 최적의 답이었다"

산업은행이 신규 발행이 아닌 리오픈 채권을 선택한 것은, 어떻게 보면 최근 급변하는 시장 상황 때문이다.

예전 같으면 주관사 선정부터 도큐멘테이션, 로드쇼, 프라이싱 등 일련의 발행과정에는 두 세달 정도가 소요됐다. 오늘 발행하나 내일 발행하나 시장 환경이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금융위기 이후, 특히 요즘처럼 유럽 등 선진국 발 이슈가 연일 나오는 상황에서는 매일의 변동성이 커 발행시기를 잡기 쉽지 않다. 오늘은 발행할 수 있지만 당장 내일은 발행할 수 없는 상황이 오기도 한다.

양 팀장은 "윈도우가 잠깐 열렸다 닫히기 때문에, 발행할 수 있을 때 얼른 발행하고 빠져 나와야 하는게 요즘 상황"이라며 "신규 발행은 발행 프로세스가 길어질 수 밖에 없는 반면, 리오픈 채권의 경우 절차가 간소하고 빠르게 의사결정을 해 발행할 수 있어 유리하다고 봤다"고 말했다.

지난 2월 7억5000만 달러의 채권 발행 때부터 이번 리오픈 채권 발행이 예견된 측면도 있다. 이왕 발행하는데 10억 달러를 발행하자는 의견도 일부 있었지만, 냉정히 봤을 때 아예 최적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시장상황에서, 일단 일부를 발행하고 시장 상황을 보면서 추가로 발행하자는 의견도 있었던 것.

가격 지지효과도 무시할 수 없는 이유다. 통상 유동성이 많아질수록 거래가 활성화 돼 적정가격에서 유통가격이 지지되는 효과를 노릴 수 있다.

발행가격 측면에서도 리오픈 채권은 뉴이슈프리이엄(NIP)나 유동성 프리미엄을 지급하지 않아도 되는 경우가 많아 유리하다는 설명이다. 기존 가격에 유동성이 더 풀리는 것이니 투자자나 발행자나 손해볼 것 없는 장사란 얘기다. 실제로 발행직후인 28일에도 해당 채권은 가산금리 상승 없이, 발행가격과 동일한 'T+185bp'에 거래됐다.

풍부한 내부 외화유동성도 좀더 여유있게 시장을 탐색하며 리오픈 같은 새로운 조달을 시도할 수 있도록 유도했다. 양 팀장은 "당장 내부 외화 유동성 상황을 봐도 7억 달러나 10억 달러처럼 대규모로 조달할 필요가 없다"며 "시기를 적절히 분배해 이번에는 큰 사이즈로 조달하기 보다 2억5000만~5억 달러 정도를 조달하는 게 낫다는 판단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 금융위기 이후 닫혔던 달러 리오픈 발행, 뚫을 수 있던 비결은?

이번 산업은행 리오픈 채권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한국기관으로써는 최초로 시도된 달러 리오픈 딜이다. 금융위기 이전에는 정책금융기관이나 공사를 중심으로 발행이 있었지만 금융위기 이후 리오픈 채권은 발행을 감췄다. 산업은행 역시 2002년 발행이후 리오픈 발행을 멈췄던 상황이었다. 발행을 할 수 있는 여건이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일단 리오픈 채권을 발행하기 위해서는 조달 규모가 어느정도 큰 기관이어야 한다. 1년에 한두번만 조달한다면 그때그때 새로운 채권을 발행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프리퀀트 발행사이면서 조달 규모도 어느정도 큰 기관의 경우 리오픈 채권은 고민해 볼 수 있는 방법이 된다.

금융위기 이후 시장의 변동성이 커진 상황에서 발행사는 위축될 수 밖에 없다. 투자자 수요에 대한 신뢰가 없다면 섣불리 결정을 내릴 수 없는 게 사실이다. 투자자 수요에 대한 자신감, 신속성, 판단력이 갖춰지지 않는다면 성사시킬 수 없는 딜인 셈이다.

리오픈을 염두에 두고 있더라도 고민만 거듭하다 끝날 수도 있었을 터다. 발행의 도화선으로 작용한 것은 과연 무엇일까.

양 팀장은 "어떤 큰 이벤트를 앞두고 있을 때, 그 이벤트의 결과가 불확실하다고 생각한다면, 이 이벤트가 나오기 전에 미리 움직여야 한다"며 "지금같이 위기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유럽연합 정상회담 등의 이벤트는 호재보다는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는게 현명하고 판단했다"고 전했다.

사실 산업은행은 올 상반기 그 어느때보다도 자주 발행시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2월 7억5000만 달러의 글로벌 본드를 시작으로 링기트, 우리다시, 사무라이, 스위스프랑, 딤섬까지 다양한 시장에서 조달에 박차를 가했다. 상반기중 발행한 공모채권만 달러로 약 20억 달러 정도다. 공·사모를 합치면 올해중 조달 목표의 70%가까이 이미 달성했다는 설명했다.

짧은시간에 다양한 시장에서 조달을 한점을 미뤄보면, 현재 산업은행 국제금융실 실무진의 시장판단'촉'은 그 어느때보다도 예리하게 서 있을 터다. 리오픈딜도 결국은 이런 '촉'에서 나온 자신감이 일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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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궁극의 목표는 '낮은 조달금리'…통화다변화로 저금리 노린다"

산업은행은 상반기중 7개 통화(우리다시본드 포함)를 통해 공모채권을 발행했다. 상당히 다변화된 통화구성이라 볼 수 있다. 산업은행은 이런 통화다변화에 대해 오로지 하나, '낮은 조달금리를 추구하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양 팀장은 "저희의 궁극적인 목적은 '낮은 조달금리'"라며 "달러화의 경우 시장 변동성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한편, 로컬통화 시장은 후행하는 경향이 있어 특별한 이벤트가 있을 경우, 시장간 반응 속도에 따라 저리조달의 기회가 생기곤 한다"고 귀띔했다.

낮은 금리로 조달하려는 타이밍을 노리려면 평소 시장 모니터링은 필수다. 산업은행은 매주 만기별, 각 통화별로 조달금리 현황을 점검한다. 달러화의 경우 매일 체크한다. 양 팀장은 "얼마전 발행했던 딤섬본드의 경우에도 모니터링 결과 당시 딤섬본드로 조달하는 게 달러대비 15~20bp 저렴하다는 판단하에 추진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금리'를 중시하는 것은 정책금융기관으로써 산업은행의 기능적 역할이 이전과는 달라진 점도 어느정도 영향을 끼쳤다. 60~70년대까지만 해도 국내에 외화자금이 부족했기 때문에 산업은행은 외자를 조달해 국내에 공급하는 입장이다. 이 시절에는 조달 규모를 키우는 게 중요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기업체나 기관들이 자체적으로 채권 발행해 자금을 조달하므로, 국가 전체적으로 외자가 부족한 상황이 아니다. 산업은행은 이제 유동성 위기 등에 대비해 선제적으로 일부 자금을 조달하는 역할만 수행하면 되는 셈이다.

양 팀장은 "기능상으로 역할이 바뀌다 보니 이제는 금리를 얼만큼 낮춰 찍느냐가 정책금융기관으로써 할 역할이 아닌가 싶다"며 "가급적 조달 원가를 낮춰서 저희도 좋고 뒤따라 발행에 나서는 기관도 좋은 조건으로 발행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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