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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채 시장 위기설의 진실

강종구 기자공개 2013-01-08 18:58:46

이 기사는 2013년 01월 08일 18:58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올해 첫 회사채를 발행한 기업은 동부그룹 계열사인 동부메탈과 동부씨엔아이다. 신용등급이 BBB급으로 우량기업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신용등급 A-인 크라운제과가 최근 실시한 회사채 수요예측에는 예정액의 두 배에 달하는 기관투자가 수요가 몰렸다. 절반은 채권을 배정받지 못하고 빈 손으로 돌아서야 했다.

참 이상한 일이다. 웅진 사태 이후 심각한 신용경색으로 A급 이하 기업들은 회사채 발행이 하늘의 별따기라고 하지 않았던가. 올해 만기도래하는 A급 이하 회사채가 20조 원이나 된다며 마치 대기업 줄도산 사태라도 벌어질 양 대책마련에 부산하지 않았던가.

심지어 정부는 채권시장안정펀드라는 카드까지 꺼냈다. 리먼 사태로 시장 실패(market failure)를 넘어 시장 붕괴(market crash)에 이르렀던 2008년 말 꺼냈던 그 특단의 대책을 말이다. 회사채 수요 확충을 위한 방안도 마련해 발표하겠다고 금융위원장은 약속했다. 그런데 BBB급 회사채가 버젓이 발행되고 A급 회사채에 기관투자가들이 몰려들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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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 중 하나는 진실이 아니어야 한다. 크라운제과 회사채에 대한 기관투자가들의 열광이 지극히 예외적인 일이거나 지난해 11월부터 급속하게 퍼진 위기설이 괜한 엄살이다.

위기설이 시작된 회사채 수요예측 현장으로 가 보자. 과연 최근 두달 여 동안 수요예측에 실패한 기업들이 부지기수다. A급 기업은 물론이고 AA급 조차 문전박대를 당했다. 대한항공 CJ제일제당 한화 포스코건설 대우조선해양 GS칼텍스 등 내로라하는 재벌기업들이다. 심지어 최상위 신용등급인 AAA의 한국남동발전 회사채마저 전혀 팔리지 않았다.

설마 금융위기에 필적할 만한 신용경색이 찾아온 것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 기업들은 오히려 실패를 의도했다고 하는 편이 낫겠다.

수요예측에서 투자자들의 반응이 신통치 않은 기업들은 하나같이 격에 맞지 않는 낮은 금리를 원했다. 예외가 없다. A급 기업은 AA급 금리에 발행하겠다고 하고 AA급 기업은 AAA급 금리를 고집한다. 심지어 거의 국채급 대우를 원하는 곳도 있다. 거래란 서로 가격이 맞아야 성사되는 법이다. 공정가격보다 턱없이 비싸게 샀다가는 그 즉시 평가손실을 떠안을 것이 뻔한데 투자자들이 응할 리 없다.

기업들도 이를 잘 알고 있다. 알면서도 말도 안되는 금리를 부르는 이유는 그래도 발행이 되기 때문이다. 수요예측에 실패하면 인수계약을 맺은 증권사들이 총액인수의무에 따라 미매각 채권을 전부 떠안아 준다. 발행 규모가 크고 우량한 기업일수록 증권사 IB부서에게는 귀한 고객이다. 협상력에서 밀릴 수 밖에 없다.

신용경색이라는 표현을 쓸 정도면, 기업들이 억울할 정도의 높은 금리를 제시해도 자금을 조달할 수 없어야 한다. 크라운제과의 회사채 발행은 대기업 신용경색이 넌센스임을 알려주는 좋은 사례다. 크라운제과는 투자자들에게 3.90~4.00% 의 금리를 제시했다. 수요예측 전날 크라운제과 회사채 금리는 3.88%. 불과 0.02%포인트를 양보함으로써 투자자들의 환호를 받은 셈이다.

비슷한 사례는 많다. SK가스 서울신문사 두산엔진 LG패션 SK종합화학 현대오일뱅크 세아베스틸 농협금융지주 등도 투자자와 눈높이를 맞춰 수요예측에서 대성공을 거두었다. 모두 웅진 사태 이후의 일로 이 중 BBB급인 서울신문사를 제외하고는 5%를 넘긴 곳이 없다. 어떻게 신용경색일 수 있는가.

잘 되던 수요예측이 웅진사태 이후 갑자기 부진에 빠진 것도 아니다. 처음 도입된 5월 이후 늘 그랬다. 기업들은 낮은 금리를 원했고 투자자들은 외면했고 증권사는 미매각 회사채를 떠안았다. 오히려 웅진사태를 전후한 8~11월은 연중 평균보다 낙찰률이 높았다. 수요예측이 안 되는 게 위기라면 80% 이상의 실패를 기록했던 5~6월이었어야 했다.

그럼 위기설은 도대체 왜 나온 것일까. 아마도 금리상승에 놀란 일부 증권사의 비명이었을 것이다. 수요예측에 실패해 증권사들이 비싸게 인수한 미매각 채권은 발행액의 절반에 육박했다. 누적액이 13조 원에 달한다. 이 위험한 도박이 10월까지는 잘 통했다. 미매각 채권이 목까지 차올랐다 싶으면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내려 더 비싸게 팔아 치우길 두번이나 했다. 손실은커녕 큰 돈을 벌었다.

그런데 이후 분위기가 묘하게 돌아갔다. 증권사들은 기준금리 인하도 삼세판을 기대하고 있는데, 미국을 필두로 세계경기가 회복신호를 보이더니 금리가 슬금슬금 오르기 시작했다. 한국은행만 믿고 미매각을 다시 잔뜩 쌓아놓고 있었으니 겁이 덜컥 났을 만하다. 여러 증권사가 미매각 채권을 모아서 프라이머리 CBO를 만들 수 있게 해 달라는 민원까지 당국에 넣었다고 하니 급하긴 했던 모양이다. 이쯤되면 시장의 위기가 아니라 회사채를 너무 비싸게 너무 많이 사들인 '누구'의 위기다.

신용등급 A 이상이면 거의 우량 대기업들이다. 4%도 안되는 금리로 얼마든지 채권 발행이 가능하다. 역사상 이보다 더 자금조달 사정이 좋은 때는 없었다. 불과 0.01~0.02%포인트 때문에 벌어지는 마찰적인 문제에 정부까지 나서서 부산을 떨고 시장실패 때나 써야 할 채권시장안정펀드까지 등장시키다니 마치 한편의 코미디를 보고 있는 듯 하다. 정작 추운 곳은 따로 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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