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bell

전체기사

해외채권 열풍, 경제민주화와 어울려?

강종구 기자공개 2013-04-01 08:10:54

이 기사는 2013년 04월 01일 08:10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이건 사기입니다 사기. 투자자를 상대로 사기를 치고 있는 거라구요" 2010년 미래에셋증권이 브라질 국채로 한창 인기몰이를 하고 있을 때 모 증권사 임원은 그렇게 말했다. 연 12%에 달하는 엄청난 고금리, 세계에서 가장 뜨고 있는 이머징마켓, 거기에 비과세 혜택까지 주어지는 이 매력적인 투자대상을 그는 왜 '사기'라고 했을까.

증권신고서를 금융감독원에 제출하지 않고서는 공개적으로 판매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편법적으로 공개 판매를 하고 있다는 점, 환매가 자유롭지 않을 수 있다는 점 등 여러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문제는 역시 환위험이었다.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지만, 증권사들이 팔고 있는 해외채권 대부분은 환위험에 100% 노출돼 있다. 브라질 헤알화, 멕시코 페소화, 인도네시아 루피아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랜드화, 인도의 루피화, 터키의 리라화는 국내에서 환헤지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국내은행 중 이들 이머징마켓 통화에 대해 환헤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 없다. 결국 국내 외국환 은행과 외국 은행을 통해 원화를 달러로, 달러를 다시 해당국 통화로 두 차례 헤지를 해야 하는데 그 비용을 지불하느니 차라리 해외채권 투자를 포기하는 게 낫다.

처음엔 한두 개 증권사가 팔던 해외채권이다. 나머지 증권사들이 '저거 괜찮을까' 우려하는 시선으로 바라봤었다. 그러나 지금은 팔지 않는 곳을 찾는 게 더 어렵다. 삼성증권 미래에셋증권 동양증권 등 먼저 치고 나간 곳과 우리투자증권 대우증권 현대증권 신한금융투자 등 뒤따라 간 곳이 있을 뿐이다. 그 중에는 "브라질 국채 판매는 사기"라고 외쳤던 그 임원이 속한 증권사도 포함돼 있다.

일부 증권사는 아예 좌판을 벌였다. 5~6개 이머징국채를 진열해 놓고 손님을 부르고 있다.

사실 채권에 투자하면서 환위험을 100% 감수한다는 것은 상식과는 거리가 멀다. 주식과 달리 업사이드 포텐셜(upside potential;추가 수익을 얻을 수 있는 잠재력)을 포기하는 대신에 다운사이드 리스크(downside risk; 손실을 입을 위험)를 최대한 피하고 안정적인 원리금 회수를 목표로 하는 게 채권 투자자의 심리다.

우리나라 주식에 투자하는 외국인의 90%가 환헤지를 하지 않고 우리나라 채권에 투자하는 외국인 자금 거의 100%가 환헤지를 하고 있다는 것만 봐도 상식과 非상식의 구분은 어렵지 않다.

확실히 국내 증권사가 팔고 있는 해외채권은 채권이기보다는 환투기 상품에 가깝다. 헤알화가 강세를 보이면 수익률 대박을 낼 수 있지만 약세를 보이면 작년처럼 피박을 쓰게 될 테니 말이다.

그런데도 증권업계에서 잔뼈가 굵었을 노련한 전문가들조차 "고금리 뿐 아니다. 헤알화가 강세를 보이면 환차익까지 노릴 수 있다"며 투자자를 유혹하고 있다. 환위험에 노출된 채권투자라는 이 非상식을 오히려 해외채권의 매력으로 승화(?)시키고 있으니 증권사들의 영악함이 놀라울 뿐이다.

하지만 기자는 다른 이유로 국내 증권사들의 해외채권 판매 열풍을 집단적 사기행위라고 본다.

첫째는 증권사들이 자산관리(WM)사업의 신호탄을 해외채권으로 쏘았다는 것이다. 고객이 사달라는 주식이나 채권을 단순히 '중개'하는 저부가가치 업무에서 벗어나 고객의 재산을 장기적이고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불려 가는 '집사'가 되겠다더니 고작 한다는 것이 온 증권사가 떼로 몰려다니며 해외채권 봇짐 장사란 말인가.

둘째는 자본시장과 증권사의 존재 이유에 대한 것이다. 자본시장은 기업에게는 안심하고 쓸 수 있는 장기자금을, 투자자에게는 다양한 금융상품으로 부를 창출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곳이다. 증권사는 투자자와 기업 사이에 돈이 잘 흐르도록 유도하는 자본시장의 농사꾼이다. 모든 증권사들이 국내 기업에 등을 돌리고 해외채권 판매에만 미쳐 있으면 '소는 누가 키우나'.

결정적으로 국내 증권사의 해외채권 판매 열풍은 현 정부의 모토인 경제민주화에 배치된다. 더 이상 고용창출 능력을 상실한 대기업 중심에서 중견·중소기업 중심으로 성장전략의 궤도를 바꾸는 시대적 과제에 자본시장과 증권사도 구경꾼일 수는 없다. 중견·중소기업이 우리나라 경제를 짊어질 새로운 성장동력이 되기 위해서는 금융의 물꼬를 이들에게 틀어 놓는 게 필수적이고 그 역할을 수행할 곳은 다름 아닌 증권사가 아니던가.

해외채권에 몰입해 있는 저 증권사들 대부분은 국내 회사채 시장에서 BBB급 이하를 취급하지 않는다. 삼성그룹 현대차그룹 SK그룹 등 극소수 AA급 기업이 채권을 발행한다고 하면 거의 무보수로 나서서 주선을 하겠다고 박 터지는 경쟁을 하지만 조금만 등급이 낮아도 문전박대하기 일쑤다. BBB급이라고는 해도 두산그룹 한화그룹 현대그룹 동부그룹 등 굴지의 기업들은 물론이고 강력한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 중견기업들이 즐비한데도 말이다.

환율 때문에 늘 불안하고 경제정책이 하루아침에 뒤바뀔까 걱정스럽고 결정적으로 문제가 생겨도 손을 쓸 수 없는 이억 만 리 이머징마켓의 연 5%짜리 국채가 환위험이 없고 지척에 있어서 항상 감시가 가능하고 사후관리가 되는 우리나라 BBB급 기업의 7%짜리 채권보다 더 매력적이라고 그들은 정말 믿고 있는 것일까.
< 저작권자 ⓒ 자본시장 미디어 'thebell',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주)더벨 주소서울시 종로구 청계천로 41 영풍빌딩 5층, 6층대표/발행인성화용 편집인이진우 등록번호서울아00483
등록년월일2007.12.27 / 제호 : 더벨(thebell) 발행년월일2007.12.30청소년보호관리책임자김용관
문의TEL : 02-724-4100 / FAX : 02-724-4109서비스 문의 및 PC 초기화TEL : 02-724-4102기술 및 장애문의TEL : 02-724-4159

더벨의 모든 기사(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으며, 무단 전재 및 복사와 배포 등을 금지합니다.

copyright ⓒ thebell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