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13년 08월 05일 07:26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국내에 올해 초 개봉한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영화 '장고: 분노의 추적자(Django Unchained)'는 노예제도가 합법이던 미국을 배경으로, 주인공 장고가 동료 닥터 킹과 함께 노예로 팔린 자신의 아내를 되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내용이다. 액션도 볼거리지만 이 영화를 관통하는 협상의 기술이 흥미롭다.장고는 이제 막 자유인이 된 흑인. 부인을 소유한 인물의 이름은 캔디, 대규모의 플랜테이션을 소유한 억만장자다. 장고가 일개 300달러 짜리 여자 노예를 사겠다고 제안 한들 캔디가 승낙은 커녕 만나줄 리 만무했다. 대신 닥터 킹은 평소 캔디가 관심 있던 싸움꾼을 거래를 하자며 미끼를 던진다. 확실히 1만 2000달러의 싸움꾼 거래에 캔디는 정신이 팔렸다. 장고 일행은 협상을 위해 캔디의 저택에 머물며 여자 노예 하나(부인)가 마음에 든다고 넌지시 구매 의사를 전한다. 노예에 별 관심이 없던 캔디는 흔쾌히 이에 응한다.
B를 얻기 위해 전면에 A를 내세우고 A로 인한 혼란을 틈타 B를 가져오는 기술이다. 억측일지 모르지만, 요즘 금융위원회의 정책금융 재편 안을 보고 있으면 이 장고의 협상 기술이 떠오른다.
정책금융 재편. 큰 그림으로 제시된 것은 대외금융과 대내금융 창구의 일원화였다. 일사분란하게 정책금융을 시행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대외금융 일원화 안을 두고 업계가 시끄러워졌다. 무역보험공사로부터 중장기수출보험을 수은으로 몰아준다는 내용 때문이다.
무보로부터 중장기수출보험 상품을 뺏는 건 큰 그림에서 보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기본적으로 이 상품은 무보 수수료 수입의 62%를 차지하면서 손해율은 0%에 가까운 무보의 핵심이자 알짜 사업이다. 이 상품을 빼간다는 것은 사실상 무보의 해체를 의미한다. 금융위에서 산업통상자원부 소관의 무보를 희생해 기획재정부 소관 수은에 힘을 실어주는 일이 어느 정도의 실현 가능성이 있다고 봤는지 의문이다.
실제로 무보는 물론 대한상공회의소, 기업 협회까지 나서 반대한 덕에 무보-수은 일원화 안은 잠정 보류됐다. 단기보험과 단기대출은 민간에 이관하라는 원론적인 수준에서 논의가 마무리 될 분위기다.
이제 남은 건 대내금융 일원화 논의인데 대외금융으로 한바탕 소란을 피워 힘을 뺀 탓인지 산은-정책금융공사 통합을 두고는 잠잠하다. 대외·대내금융 논의를 차치하고 보면 산은-정금공 통합은 산은 IPO를 포기한 데 따른 선택이다. 시장논리에 따라 자연스럽게 산은을 민영화할 필요성이 생겨, 다이렉트 뱅킹 사업을 시작하고 정금공을 설립해 5년 여간 운영해왔지만 이를 모두 무위로 돌리겠다는 의미다.
다시 말해 산은-정금공 통합은 정책 실패를 인정한다는 소리다. 하지만 반성은 찾아볼 수 없다. 무보-수은 통합건은 양보했으니 산은-정금공 통합은 조용히 넘어갈 수 있다는 눈치다.
진정으로 대내금융을 일원화 할 계획이었다면 박근혜 대통령이 육성하겠다고 밝힌 벤처 쪽에 더 관심을 기울여야 했다. 성장사다리 펀드는 금융위에서 야심차게 밀어붙이는 프로젝트다. 그런데 이 펀드는 미래창조과학부에서 별도로 추진하는 미래창조펀드와 출자 기관도 겹치고 투자 대상도 중복된다. 같은 취지라면 당초부터 이쪽 정책금융 창구를 일원화 하는 데 더 높은 우선순위를 두었어야 했다. 그런데도 산은-정금공 통합만이 논의됐다. 금융위는 장고처럼 정책 실패를 감추고 산은-정금공을 통합하기 위해 무보-수은 통합이라는 카드를 꺼내 교란작전을 사용했던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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