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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수답 경영, 건설업의 숙명인가 [thebell note]

길진홍 기자공개 2014-01-13 08:18:22

이 기사는 2014년 01월 10일 07:33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지난주 주요 건설사 CEO들은 잇따라 신년사를 발표하고 새해 업무에 들어갔다. 2014년 경영화두는 원가 절감과 신성장동력 발굴, 체질 개선, 리스크 관리 등으로 요약된다. 올해도 어김없이 ‘위기', ‘비상', ‘혁신' ‘생존' 등의 단어가 신년사 글머리를 장식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국내 건설시장이 침체 늪에 빠진 가운데 미국의 양적 완화 축소 등의 외생변수로 어려움이 가중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팽배하다.

새해를 맞은 CEO들의 가장 큰 고민은 일감 부족이다. 건설업은 경기에 민감한 수주산업이다. 일반 제조업과 달리 도급을 받아야 한다. 전형적인 ‘천수답(天水畓: 빗물에만 의존하는 논)' 구조를 띤다. 수주는 생존과 직결된다. 일이 있어야 현금흐름을 창출하고 돈을 벌 수 있다. 부채비율 등 재무구조 개선은 그 다음의 일이다.

그런데 최근 수년간 하늘(정부·민간)에서 비(공사 발주)가 내리지 않고 있다. 수주 가뭄이 지속되면서 업계 시름이 깊어만 간다. 살아남으려면 어떻게든 치열한 수주 경쟁을 뚫고 일감을 확보해야 한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저가 수주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수주 감소로 매출과 영업이익이 줄면서 살림살이는 더욱 팍팍해졌다. 자금시장 경색으로 차입 여건이 악화되면서 금융비용도 적잖은 부담이 되고 있다. 대부분이 수익성 개선을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고 원가 절감에 나서고 있다. 일부는 조직을 통폐합하고, 인력을 감축했다. 하지만 매출 감소로 현금창출이 둔화된 상황에서 인위적인 조정을 통한 비용 절감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경영목표 설정을 둘러싼 조직 내부 갈등도 심각하다. 수주와 매출 목표액 설정이 사내 민감한 이슈가 됐다. 업황 부진이 장기화하면서 경영진 요구를 현업 부서가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가 늘고 있다. 올해는 상황이 더 안 좋다. 새해가 시작됐지만 사업 계획 밑그림을 짜지 못한 곳들도 많다. 대형 건설사 고참급 부장은 입사 이래 이처럼 경영전략과 목표 설정이 지연된 적은 처음이라며 탄식했다.

발주처 수주에 기댄 천수답 경영을 개선할 길은 없은 것일까. 대림산업은 국내 포천과 호주 퀸즐랜드에 각각 화력발전소 지분을 갖고 운영에 참여하고 있다. 발전소 운영 경험을 쌓은 뒤 민자발전(IPP) 제안형 사업을 발굴할 계획이다. 사업을 제안하고 시공, 설계, 운영 등에 관여하는 디벨로퍼로의 변신을 꾀하고 있다.

지난해 현대건설은 중동을 떠나 중남미 석유화학 다운스트림 시장에 진출해 초대형 프로젝트를 따냈다. 중국 업체와 연합해 수의계약 방식으로 경쟁 없이 일감을 확보했다. 예상 마진율이 10%를 웃돈다. 수주 비결은 금융주선 능력에 있다. 수출입은행으로부터 수출·제작 금융 지원을 받아 발주처에 사업비를 댔다. 정책금융기관의 ECA 금융을 활용해 시장 다변화를 이룬 케이스다.

모두가 천수답 구조 한계를 벗어나 예측 가능한 수주 모델을 찾기 위한 노력들이다. 아직은 걸음마 단계지만 이런 노력이 결실을 맺는다면 가물어도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수리답 (水利畓)'으로 전환도 가능할 것이라고 본다. 또 그 성과에 따라 건설사 간 운명도 갈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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