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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이빗뱅킹은 '스토리텔링'이다 [thebell note]

송광섭 기자공개 2014-03-06 09:55:00

이 기사는 2014년 03월 03일 10:25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2000년대 중반 이후 취업준비생들 사이에서 '국토순례'가 유행했다. 학점이나 어학능력 등 지원자들의 '스펙'에 변별력이 없어지면서 기업들이 개개인의 '스토리'에 주목한 탓이다. 학생들은 콘텐츠를 발굴하기 위해 다양한 경험을 찾아 나섰고, 기업들도 최고가 아닌 최적의 인재를 발굴하는 데 힘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패러다임은 서서히 바뀌었다.

오늘날 프라이빗뱅킹은 취업 시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 프라이빗뱅커(PB)는 매 순간이 면접의 연속이다. 조금이라도 밉보이면 고객은 떠나기 마련이다. 어떻게든 붙잡으려고 안간힘을 쓸 뿐이다. 사소한 부탁을 들어주거나 명절마다 선물을 챙기는 일은 기본이다. 때론 혼기가 찬 고객의 자녀를 위해 직접 중매에 나서기도 한다.

물론 평가시스템이 이를 부추기는 면이 있다. 은행이나 증권사에서 신규 고객 수, 관리자산 규모, 회사 수익기여도, 고객 만족도 등을 토대로 '최우수 PB'를 선정하고 있다. 누가 고객의 이탈이 가장 적었는지, 누가 고객의 자금을 더 끌어왔는지, 누가 신규 고객을 많이 소개받았는지가 관건이다. 그만큼 고객의 비위를 잘 맞추는 데 집중해야 한다.

그러나 이는 PB들 간에 차별화된 부분이 없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실제로 일선 PB들을 만나 보면 대다수가 영업 노하우로 '작은 일이라도 성심성의껏'을, 포트폴리오 전략으로 '중위험·중수익'을 꼽고 있다. 그래서인지 PB들의 개인 사무실에는 수상 내역이나 매스컴과 인터뷰한 기사들이 가장 눈에 잘 띄는 곳에 놓여있다.

그런 점에서 하나대투증권 청담금융센터의 사례는 눈여겨볼 만하다. 사실 이곳이 유명세를 떨친 데는 금융과 엔터테인먼트를 결합한 새로운 형태의 마케팅 덕분이다. 카페 같은 인테리어에 와인바, 게임방 등 다양한 여가시설을 마련해 누구든지 이용할 수 있게 했다. 실적이 오르자 이를 벤치마킹 하는 금융회사들도 속속 등장했다.

하지만 이곳의 진짜 무기는 따로 있다. 어떠한 서비스나 높은 수익률을 약정하는 스펙 위주가 아닌, 스토리에 의존한 영업이 그것이다. 대표적인 콘텐츠가 기부 프로그램이다. 단순히 '기부하면 소득공제 받으니 계좌 만드세요'가 아니다. 특정 대학 출신들과 모교에 대한 고민을 공유하면서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초점을 맞춘 것이다.

또 최근에는 문화에 관심이 많은 기업인들을 대상으로 국내 문화·예술의 발전에 대해 화두를 던졌다. 프랑스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이나 영국 런던의 대영 박물관과 같이 우리나라에도 세계적인 박물관을 만들어보자는 취지에서다. 빠르게 공감대를 이끌어내면서 초기 열댓 명이었던 후원자 수는 어느 새 수십 명까지 늘어났다.

이 같은 영업의 효과는 성과로 증명되고 있다. 처음 센터를 열 당시 자산규모는 3000억 원에 불과했다. 그마저도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1500억 원까지 줄었다. 하지만 콘텐츠 개발에 나서면서 금세 늘어났다. 지난해 8월에는 3조 원을 넘었고, 현재는 3조 3000억 원에 달하고 있다. 이는 사내에선 물론이고, 전체 금융회사 중에서도 최고 수준이다.

금융업이 악화되면서 많은 금융회사들이 웰쓰매니지먼트(Wealth Management)에서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그만큼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는 신규 고객은커녕 기존 고객도 유지하기 힘들어졌다. 패러다임의 전환을 진지하게 고민해볼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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