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금운용본부, 독립을 실험하라 [기로에 선 국민연금]⑥공단 내에선 비효율 수두룩…인사권 예산권 등 부여해야
최욱 기자공개 2014-06-26 12:12:00
이 기사는 2014년 06월 17일 17:24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는 427조 원에 달하는 자산을 굴리고 있지만 정작 국민연금 내에서의 역할과 위상은 과소평가를 받아왔다. 인사 및 행정권을 갖고 있지 않아 전문인력을 확보하는데 어려움이 많다. 외부감사가 지나치게 많아 자산운용 업무에 집중할 수 없다는 문제도 있다.2043년까지 자산 규모가 늘어나는 국민연금은 이 기간 동안 기금운용 수익을 극대화시켜 기금 고갈 시기를 최대한 늦춰야 한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기금운용본부의 권한을 대폭적으로 강화해 투자 업무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미 정치권에서는 기금운용본부를 국민연금에서 독립시켜 별도 법인화 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국가재정법에는 기금운용본부의 독립이 명시돼 있다.
하지만 이 방안은 국회에서 여야의 의견이 첨예하게 맞서고 있어 당장 실현되기 어렵다. 이보다는 대안으로 기금운용본부의 권한을 대폭 강화해, 향후 성과를 지켜본 뒤 기금운용본부의 독립을 논의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기금운용 담당 부이사장직을 신설하고 기금운용본부에 행정 및 인사권을 부여하자는 것이다.
◇기금 늘면서 기금운용본부 비효율성 '부각'
국민연금이 기금운용본부를 출범시킨 것은 지난 1999년이다. IMF를 전후해 국민연금의 수급 대상이 전국민으로 확대되면서 좀 더 체계적으로 기금운용을 전담할 조직이 필요해진 것이다. 당시 국민연금이 영입한 펀드매니저는 22명에 불과했다. 파격적인 성과급(성과에 따라 연보수의 100% 지급) 조건을 내세워 조직을 꾸렸다.
자산 규모가 전세계 4위로 성장하면서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는 어느새 세계적인 '큰 손'으로 성장했다. 국민연금에서 투자를 받기 위해 전세계에서 내로라 하는 IB업계의 거물들이 찾아온다. 10여년 만에 국민연금의 국제적 위상은 크게 올라갔다.
하지만 국민연금 내에서 기금운용본부의 역할과 위상은 한계가 분명하다. 국민연금은 10개실, 2개 본부, 4개 센터, 1개 연구원, 97개 지사로 구성된 방대한 조직이다. 올해 1분기 기준 전체 직원이 4791명에 달한다. 이중 기금운용본부 인력은 199명으로 4.1%에 불과하다. 운용인력 156명을 기준으로 할 경우 비중은 더욱 축소된다. 국민연금 내에서도 주요 업무는 연금수납과 지급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기금운용본부는 국민연금의 수많은 조직 중 한 곳에 불과한 게 사실이다.
기금운용본부가 국민연금공단 산하에 속해 있으면서 초래되는 비효율성도 만만치 않다. 국민연금은 보건복지부, 기획재정부 등 여러 기관의 감독을 동시에 받고 있어 기금운용본부 역시 두 달에 한 번 꼴로 감사를 받고 있다. 신진영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는 "기금운용본부의 운용인력들이 외부감사 준비 등 다른 업무에 치여 새로운 투자처 발굴 등 본연의 업무에 집중할 수 없는 환경"이라며 "국민들이 낸 돈을 운용하면서 감사를 받는 것은 당연하지만 운용업무에 방해가 될 정도로 빈도가 너무 잦다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기금운용본부가 자체적으로 인사권과 예산권을 갖고 있지 않아 우수한 인력 확보에 차질이 발생한다는 점도 문제다. 1인당 운용자산 규모가 2조 원을 넘어 전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인력 충원은 더디기만 하다. 기금운용본부장(CIO)에게 인사권과 예산권, 행정권이 없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몸값이 비싼 해외·대체투자 전문가 영입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고 잇다.
◇"완전독립 이전에 중간과정 거치게 해야"
이 같은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는 기금운용본부의 독립이 제시된다. 기금운용본부를 한국투자공사(KIC)처럼 별도의 '기금운용공사'로 만들자는 것이다. 이미 국가재정법 제78조에는 '국민연금기금은 자산운용을 전문으로 하는 법인을 설립하여 여유자금을 운용하여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국민연금의 기금관리체계 개편과 관련된 법안은 지난 2008년부터 국회에서 꾸준히 논의돼왔다. 정부입법안을 비롯해 총 5개의 입법안이 국회에 올라와 있다. 이들 법안들의 주요 쟁점 역시 기금운용본부의 공사화로 요약된다.
기금운용본부를 별도 법인으로 분리시키자는 내용을 담고 있는 법안은 정부입법안(2008년 발의)과 김재원 새누리당 의원 입법안(2012년 발의)이다. 두 법안 모두 기금운용공사를 한국은행이나 금융감독원처럼 무자본 특수법인으로 설립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나머지 3개 법안은 새정치민주연합 소속 의원들이 발의한 것으로 기금운용본부 분리를 원칙적으로 반대하고 있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떠오르는 것이 국민연금 내 기금운용본부를 독립된 조직으로 운영하자는 것이다. 우선 기금운용본부장(CIO)의 직급을 이사에서 부이사장으로 격상시키고 CIO에게 기금운용본부의 인사권과 행정권을 일임한다. 이렇게 되면 운용역 성과보상체계 개선, 전문인력 수급 등 그동안 지적됐던 문제점들을 해소할 수 있다.
기금운용을 전담하는 CIO 밑으로는 해외투자본부, 국내투자본부, 투자전략본부를 신설한다. 기존 주식운용실, 채권운용실, 대체투자실, 해외증권실, 해외대체실, 운용전략실 등이 확대 개편돼 본부로 승격되는 것이다. 본부장의 직급은 현재 기금운용본부장과 같은 이사급으로 올라가게 된다.
원종욱 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현재로서는 기금운용본부 독립을 두고 여야의 의견이 첨예하게 맞서고 있어 정치권이 합의를 이루기 바라기는 어려운 상황"이라며 "우선 기금운용본부의 조직 개편을 통해 국민연금 내에서 위상을 높여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기금운용본부를 분리시켰다가 수익률이 오히려 떨어질 경우 엄청난 비난을 받을 수 있다"며 "이보다는 중간 과정을 거쳐 일단 실험을 해보는 게 합리적인 대안"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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