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15년 03월 26일 07시53분 thebell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중부발전이 회사채 3000억 원을 발행하려다가 2000억 원으로 줄이는 사태가 발생했다. 금리에 만족하지 못해서 중부발전이 스스로 발행액을 줄인 것이 아니다. 사실상 투자 수요를 채우지 못해서 예정된 금액을 조달하는 데 실패한 것이다.주관사 선정 입찰에 참여했던 증권사가 대표주관이 아니면 채권을 인수할 수 없다면서 인수 확약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이 증권사가 인수단으로 참여하지 않으면 발행액이 1700억 원으로 줄게 돼, 자칫 발행을 못하게 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소송전 얘기까지 오고 가다가 서로 한 발짝 씩 물러나 발행액을 2000억 원으로 맞추기로 하면서 합의가 이뤄진 것으로 전해진다. 한 때 불공정 입찰 시비가 벌어지기도 했다.
이번 사태는 중부발전뿐만 아니라 발전자회사 채권이 이미 증권사들에게 계륵과 같은 존재가 됐다는 점을 보여준다. 대표주관사로 선정된다고 해서 수수료를 더 받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표주관이 아닌 인수단에 끼는 것은 의미가 없어졌다. 돈은 안 되지만 실적이라도 쌓자는 증권사들만 기웃거리는 시장이 돼 버린 것이다.
국내 한 대형 증권사는 일찍이 발전자회사 채권 주관사 입찰에 참여하지 않기로 방침을 정했다. 또 다른 증권사는 기준금리가 1%대에 진입하자 미매각 상태에 있던 채권을 모두 정리하고, 한 동안 발전사자회사 채권을 인수하지 않기로 했다.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지만, 실제로 발전자회사 채권을 기피하는 증권사는 이미 한 둘이 아니다.
중부발전 채권은 발행된 지 3일이 지났다. 그 동안 발행액 2000억 원 중 1000억 원 정도만 거래됐다. 1000억 원이 아직 최종 투자자를 찾지 못하고, 증권사 채권 북(book)에 미매각 상태로 남아 있다는 얘기다. 발행된 채권의 만기가 5년, 10년 등 장기채라는 점을 고려하면 증권사가 부담해야 할 금리변동 위험이 적지 않다.
금리가 계속 떨어지면 투자자에게 팔려 나가겠지만 금리 하락 추세가 주춤하거나 상승세로 역전되면 손실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한 증권사 임원은 "앞서 발행된 발전자회사 채권의 상당액이 미매각 상태로 남아 있다"면서 "시장금리에 운명을 맡기고 있다"고 말했다.
수수료 녹이기, 금리 왜곡 등 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발전자회사 채권. 한 때는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채권을 인수해 주던 증권사 친구들이 하나둘 떠나기 시작했다. 과거의 관행을 유지하려고 들다가는 자본시장과의 거리는 점점 더 멀어질 수 있다. 발전자회사 채권에 수요예측을 도입해야 한다는 시장의 목소리도 점차 커지는 분위기다. 이제는 발전자회사들이 자본시장을 지혜롭게 관리하는 방향으로 변해야 할 때가 온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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