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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RP 꼼수영업에 당국 뒷북 대응 [thebell note]

최은진 기자공개 2015-09-15 10:35:24

이 기사는 2015년 09월 10일 07:33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개인형퇴직연금(IRP)제도는 근로자가 회사 이·전직시 수령한 퇴직급여를 적립·축적해 노후재원으로 관리하라는 취지에서 만들어졌다. 회사에서 가입시켜주는 확정급여형(DB)·확정기여형(DC)제도와 개인적으로 개설할 수 있는 IRP를 통해 퇴직급여를 노후까지 지속적으로 관리해 나가도록 한 것이다.

올해 7월 말 기준 IRP 가입자 수는 총 215만 명, 올해들어 56만 명이 늘었다. 퇴직연금 제도의 또 다른 유형인 DB 가입자가 같은기간 47만 명, DC가 8만 4000명 늘어나는데 그쳤다는 점을 감안하면 괄목할만한 성과다.

퇴직연금 사업자들의 공격적인 마케팅 공세에 IRP가 양적으로 급성장하는 모습이다. 특히 은행권은 IRP의 세액공제 혜택을 내세워 가입자를 크게 늘렸다. 올해들어 은행권에서 확보한 IRP 가입자 수만 52만 명이다.

하지만 퇴직연금 사업자들의 도 넘은 IRP 마케팅이 문제로 떠올랐다. 대형 시중은행들은 법에도 없는 퇴직IRP, 적립IRP라는 명칭까지 만들어 장사를 했다. IRP는 하나의 계좌만 있어도 충분한데 고객들에게 2개 이상의 계좌를 만들도록 유도하기 위해서다. 불법은 아니지만 계좌 수를 늘리기 위한 일종의 꼼수였다.

계좌 수가 곧 실적이라는 은행들의 묘한 감정싸움이 불필요한 경쟁으로 번졌다. 그러는 동안 쓸모없는 공(空)계좌만 늘었다. 퇴직급여를 IRP라는 한 바구니에 담아 운용하자는 제도 본연의 취지도 무색해졌다. 계좌가 우후죽순 남발되다보니 적립금 관리도 엉망이었다. IRP 적립금 대부분이 예금에 몰려있거나 현금성 자산으로 방치되고 있는 상황이다. 퇴직급여는 대부분 연금이 아닌 일시금으로 해지됐다.

결국 고용노동부가 칼을 들었다. 적립IRP, 퇴직IRP라는 명칭 사용을 금지했고, 금융사 당 1개의 계좌만 개설할 수 있도록 제한했다. 불필요하게 한 금융사에 복수계좌를 만든 경우는 고객 동의를 받고 통합절차를 진행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하지만 이미 올해 상당한 성과를 쌓아올린 은행들은 포식을 넘어 과식했다는 표정으로 계좌 수 제한에도 느긋하다. 복수계좌 통합지침에 다소 불만을 내비쳤지만 그마저도 당국에서 강제할 수 없는 사안이기 때문에 무시하겠다는 속내를 벌써부터 드러내고 있다. 실제로 몇 십만 명 되는 고객들에게 일일이 동의를 다 받기도 어렵고 그걸 강제하도록 감독하는 일도 불가능하다.

칼을 늦게 빼들었고 또 너무 약했다. 이미 오래 전 금융사들의 영업관행이 도마 위에 올라 노동부와 금융감독원은 제재를 논의했지만 대응책은 수개월이 지나서야 나왔다. 이런저런 이해관계를 다 고려하느라 제때 대응하지 못했다. 또 각자 추구하는 방향이 달라 소통하기 어렵다는 점도 발목을 잡았다. 권한을 갖고 있는 부처와 실제 감독하는 기관의 심리적 거리도 상당했다.

그러는 동안 금융사들의 도 넘은 영업행위는 통제되지 않았고 IRP 시장은 더욱 혼탁해졌다. 연금은 어느 자리든 빠지지 않고 거론될 정도로 매우 중요한 제도인데 눈에 뻔히 보이는 사업자들의 꼼수영업 하나 단속하는 데에만 수개월이 걸렸다면 제도운영과 감독체계가 너무 느슨한 것 아닌가.

IRP제도 권한을 가지고 있는 노동부, 감시·감독을 맡은 금융감독원, 실제 제도를 운용하는 퇴직연금 사업자. 아무도 잘못했다 하는 이 없지만 사실은 모두가 잘못한 일에 고객들만 피해 입었다는 것을 깊이 반성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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