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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 현대증권 매각 불발되자 자세 180도 바뀌어 [산은 기업구조조정 흔들]②강제적 구조조정 해법 강요..실패하면 기업 탓

안경주 기자/ 문병선 기자공개 2015-11-12 12:24:57

이 기사는 2015년 11월 11일 17:52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현대증권 매각 불발과 재매각 시도 불발 사례는 산업은행의 구조조정 해법이 과거와 달리 얼마나 허술해 졌는지, 구조조정 해법이 실패로 돌아갔을 때 어떻게 책임을 기업들에게 전가하는지, 또 은행이 은행 이익과 기업 이익 중 무엇을 우선순위에 놓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산업은행 주도의 구조조정 해법이 과거와 달리 허술해져 보이는 사례는 현대증권 사례 외에도 여럿 있다.

2014년 초 동부그룹은 제조업 계열사 유동성 위기가 불거지자 급기야 주요 계열사 및 주요 자산을 매각해야 한다는 산업은행의 조언을 수용하기에 이르렀다.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은 애착이 강했던 동부제철을 지키고자 했고 위기를 넘기면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졌다. 하지만 자산 매각 방안을 두고는 산업은행과 초반부터 엇나갔고 반목하는 형국이 자주 언론에 노출됐다.

대표적 반목의 사례는 동부발전당진 매각 해법이다. 산업은행의 해법은 '패키지 딜'이다. 매각 가치가 있는 '동부발전당진 및 동부인천스틸'을 함께 묶어(패키지) 팔자는 안이었다. 김 회장은 빠른 매각과 경영정상화를 위해 각 자산을 개별적으로 나누어 팔자는 안을 고수했으나 끝내 산업은행의 주장을 이겨내지 못했고 산업은행 주도의 구조조정이 진행됐다. 그러나 결과는 실패였다.

이 외에도 동부익스프레스 매각, 동부건설 자산 매각, 동부하이텍 매각, 동부특수강 매각, 동부메탈 매각 등이 진행됐으나 중요 타이밍을 놓친데다 매각 전략이 여러 루트를 통해 외부에 전해지면서 인수 후보들은 값이 더 떨어질 수 있다는 눈치를 보며 발을 빼기에 바빴다.

재계 한 관계자는 "구조조정 해법을 두고 기업과 산업은행이 얼마나 많은 싸움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고 했다.

산업은행의 주장에 설득된 대가는 참혹했다. 동부그룹은 김 회장이 그토록 지키고 싶어했던 동부제철을 지켜내지도 못했고 다른 제조업 계열사까지 모두를 내주고 구조조정에서 발을 빼야 했다. 산업은행 책임론이 불거졌지만 그때 뿐이다. 당시 구조조정 해법을 설계하고 실무를 담당했던 임직원은 지금도 다른 대기업 구조조정 작업에 참여 중이다.

현대그룹 자구안

산업은행이 제시한 구조조정 해법을 그대로 따라했다가 곤혹스런 처지에 몰린 다른 대기업으로는 현대그룹을 빼놓을 수 없다.

당초 산업은행은 현대그룹의 선제적 구조조정을 위해 현대증권의 조속한 매각을 추진했다. 이를 위해 현대상선이 보유한 현대증권 지분 22.43% 중 19.54%를 담보로 설정하고 2000억 원을 현대상선에 대출해줬다. 매각의 주도권을 산업은행이 쥐겠다는 계산이었다. 이후 매각과 관련해 현대그룹으로부터 전권을 위임받아 현대증권 매각을 주도해 왔다. 하지만 현대증권 매각이 불발된 이후 소극적인 태도로 바뀌었다.

자구계획안과 양측이 맺은 재무구조개선약정 제도의 흐름상 매각이 불발됐으니 재매각에 나서거나 그에 상응하는 다른 자금조달 방안을 도출하는 게 다음 순서다. 하지만 정부 관계자 입을 통해 전해진 소식은 현대그룹의 몸통인 현대상선이 매각될 것이라는 확인되지 않은 추측이다. 현대그룹은 그룹 해체론까지 나오는 '격랑' 속으로 빨려들어가게 됐다.

산업은행은 그동안 보였던 모습과 정반대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전해진다. 현대그룹에 현대상선 유동성 위기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추가 자구계획을 연말까지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면서도 가장 빠르게 유동성을 확보할 수 있는 현대증권 매각은 배제하고 있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대우증권 매각이 마무리되는 내년 상반기께나 현대증권의 재매각을 추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 현대그룹은 영구채를 발행할 수 있도록 산업은행에 건의했다. 현재 협의가 진행 중이다. 현대상선에서 벌크전용선부문을 분리한 자회사 현대벌크라인이 영구전환사채(하이브리드 CB)를 발행하는 방안이다. 발행 규모는 3000억 원 이상으로 추정된다. 금융권 관계자는 "3000억 원 이상 규모로 영구채를 발행하면 당분간 유동성에 숨통을 틔울 수 있다"고 말했다.

금융권에선 현대증권 매각을 서두르지 않는 이유가 산업은행의 자회사인 대우증권 매각 때문으로 보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산업은행은 현대증권의 매각 불발로 대우증권 매각에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얘기하면서도 (현대증권) 재매각 추진을 꺼려하고 있다"며 "이는 대우증권 매각을 통한 자금 회수 계획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고 우려하는 듯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대기업 한 관계자는 "정부의 방침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선택을 했겠지만 산은 구조조정 담당 부서의 역할이 기업 구조조정에 있다면 기업에 이익이 될 수 있는 방안을 짜야 하는데 그렇지 않아 보이는 점이 많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은행이 은행의 손해를 감수하고 기업에게 마냥 자금을 지원할 수는 없다.

업계에서는 정치권 눈치를 봐야하는 국책은행의 입장을 이해하면서도 시스템 업그레이드가 없는 산업은행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일각에서는 최고경영자가 바뀌면서 산업은행의 구조조정 원칙이 흔들렸다는 지적도 내놓는다. 그리고 원칙을 정하고 원칙을 잘 따르는 기업에게는 혜택이 갈 수 있도록 도움을 줘야한다는 지적도 많다.

재계 관계자는 "업종마다 특성이 다르고 일하는 방식도 다름에도 일률적인 잣대를 들이대거나 과거 성공했다고 해서 그 방법을 다른 사례에 대입하려는 시도가 없지 않다"며 "동부그룹이나 현대그룹은 일부 반목을 하긴 했으나 구조조정 플랜을 잘 따랐는데도 불구하고 위기에 처했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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