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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DB칸서스 제기, 금호생명 소송에도 허용될까 ②美 "경우에 따라 허용" vs 英 "원칙적으로는 불허"

권일운 기자공개 2015-11-30 06:00:00

[편집자주]

국내 기업 인수합병(M&A) 시장에 큰 영향을 줄 만한 의미있는 판결이 최근 나왔다. 거래 당사자가 진술 및 보증(Representations & Warrnaties) 조항 위반 사실을 미리 알았더라도 손해 배상을 받을 수 있다는 취지인데, 이 판결로 향후 M&A 거래들의 계약서 협상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더벨은 총 3회에 걸쳐 이 판결의 의미를 조명해보고자 한다.

이 기사는 2015년 11월 20일 10시19분 thebell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샌드배깅(Sand Bagging)은 흉기처럼 보이지 않는 모래 주머니를 살상 무기로 사용한 미국 갱들에게서 유래됐다고 보는 게 일반적이다. 요컨대 경쟁자보다 자신이 우위에 있는 능력을 숨겨 수싸움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행위를 말한다. 인수합병(M&A) 에서는 진술과 보증 위반 사실을 알고 있었던 인수자가 거래 완료 뒤 전술과 보증 위반을 이유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행위를 일컫는다.

국내에서는 최근 들어서야 샌드배깅을 허용하는 최종심 판결이 나왔고, 사법 역사가 우리보다 긴 여러 선진국에서도 허용 여부를 놓고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샌드배깅이라는 용어가 태동한 미국의 경우에는 불허 기조가 계속되다가, 여러 정황을 고려한 뒤 특정 상황에서는 샌드배깅을 허용해야 한다는 취지의 판결이 잇따라 등장하고 있다.

◇ 美, 예외적인 경우에 한해 샌드배깅 허용

미국의 경우 주마다 샌드배깅에 대해 서로 다른 접근법을 택하고 있다. 샌드배깅을 불허해야 한다는 쪽은 진술과 보장 위반 내역을 알고 있던 인수자는 진술과 보장 위반 자체를 신뢰하지 않았으므로 굳이 손해배상을 할 필요 없다는 입장이다. 반면, 진술과 보장이라는 계약 자체를 돈 주고 산 것이라는 해석을 하는 경우에는 손해배상이 가능하다고 본다.

통상 M&A에서 준용하는 뉴욕주의 판례는 전자를 따라 왔다. 하지만 1990년대 들어 예외적인 경우에는 샌드배깅을 허용하자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다만, 인수자 측이 진술과 보증 위반에 대한 정보를 사전에 직간접적으로 제공했거나 인수자 측이 진술과 보증 위반 사항을 매매 협상에 활용할 수 있었던 경우에는 샌드배깅이 허용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이번 현대오일뱅크-한화 간 샌드배깅 소송에서도 현대오일뱅크 측이 진술과 보증 위반 여부를 취득한 경위와 시점을 놓고 갑론을박이 있었다. △진술과 보증 위반 내역을 계약 체결 이전에 인지했는지와 △해당 내용의 출처가 거래 상대방이었는지의 여부도 재판 과정에서 쟁점이 됐다.

뉴욕주는 또, M&A 계약서 상에 샌드배깅이 가능하다는 조항이 삽입되거나 손해배상 권리를 포기하지 않도록 명시했다면 샌드배깅이 허용가능하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리고 있다. 이번 현대오일뱅크-한화 샌드배깅 소송 3심 재판부 역시 별도의 샌드배깅 불가 조항이 없다는 점에 주목했다.

◇英 "진술과 보증 위반 내역 인지 정도도 중요"

영국은 원칙적으로 샌드배깅을 허용하지 않는다. 영국의 현행법은 진술과 보증을 제공한 시점에 이미 위반 사실을 알고 있고, 이를 가격에 반영할 기회가 있었다면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다만, 몇 가지 영국 판례에 따르면 △인수자 측이 인지한 진술과 보증 위반 내용의 깊이가 어느정도였는지와 △해당 내용을 거래 협상에 반영할 수 있었는지는 쟁점이 될 수 있다. 아직 최종심 판결은 나오지 않은 한 영국 판례에 따르면 인수자의 대리인이 알고 있는 진술과 보증 위반 내용을 인수자 본인이 완전히 알고 있던 게 아니라면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이처럼 국내에서도 진술과 보증 위반 내역을 어느정도로 알고 있었는지가 쟁점이 되고, 판결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예컨대 매각자 측이 진술과 보증 위반 내용을 두루뭉술하게 언급했다고 하더라도 인수자 측이 해당 내용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다면, 인수자 측이 위반 내역을 알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또, 매각자 측에서 언급한 위반 내역이 계약서에 구체적으로 명시되지 않았을 경우에도 분쟁의 여지가 있다.

◇국내 사법부, 최근까지는 샌드배깅 불허 기조

국내에서는 지난 10월 15일 처음으로 샌드배깅을 허용하는 최종심 판결이 나왔지만, 여전히 진행 중인 샌드배깅 관련 소송이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KDB생명(당시 금호생명)을 둘러싼 금호아시아나그룹-KDB칸서스펀드 간 소송과, 동국제강이 DK아즈텍 설립자 등을 대상으로 제기한 소송이다.

KDB-칸서스펀드는 금호생명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금호아시아나그룹이 부실 자산 내역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아 비싼 값에 금호생명을 인수했다는 이유로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진술과 보증 위반을 알고 있는 인수자가 가격에 이를 반영할 수 있었는데도 방치한 것"이라며 "뒤늦게 책임을 묻는 것은 신의성실 원칙에 맞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서울중앙지법은 샌드배깅이 가능하다는 조항을 계약서에 삽입하지 않았다는 점도 문제 삼았다.

동국제강은 사파이어 잉곳 제조사 아즈텍을 인수해 보니 실제 회사 가치가 상당히 부풀려져 있었다는 이유로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매각자 측은 "실사를 통해 충분히 알 수 있었던 내용"이었다며 배상할 수 없다고 맞섰다. 서울중앙지법은 이번에도 "인수자 측이 (실사를 통해) 쉽게 알 수 있었던 진술과 보장 위반 내용을 자신들의 과실로 인해 인지하지 못했다"며 "신의성실 원칙에 따라 손해배상 의무가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요컨대 현재까지 국내 사법부는 샌드배깅을 허용하지 않는 쪽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한화-현대오일뱅크 간 소송에서 대법원이 샌드배깅을 허용하는 쪽으로 입장을 선회하면서 다른 사건들의 상급심 판결이 어떻게 내려질지에 대해 M&A 업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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