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16년 02월 12일 11:14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지난해 수수료를 낮게 책정한 퇴직연금 사업자들이 상대적으로 많은 자금을 유치했다. 특히 수익률 차이가 크게 나지 않는 확정급여형(DB)의 경우, 수수료에 따라 자금 유치 실적에서 큰 차이가 났다.

하지만 삼성생명과 신한은행 국민은행 등 대형사들의 퇴직연금 시장 지배력이 더욱 확고해지면서, 수수료 인하 여지가 줄어들고 있다. 적립금을 이미 많이 유치하고 있는 이들 대형사는 수수료 인하로 신규 자금을 유치하는 것보다 기존 적립금에서 발생하는 수수료 수입에 만족하고 있기 때문이다. 감독당국은 경쟁을 통해 퇴직연금 수수료 인하를 유도하겠다는 입장이다.

◇IBK·현대라이프·NH투자증권 적립금 급증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DB형 수수료가 가장 낮은 IBK연금보험은 지난해 766억 원에 달하는 퇴직연금 적립금을 신규로 유치했다. 대형사에 비해 절대 규모는 적지만 지난 2014년 적립금 577억 원 대비 133% 급증했다. IBK연금보험은 DB형 뿐 아니라 확정기여형(DC)과 개인퇴직연금계좌(IRP) 적립금도 전년 대비 각각 70%, 81% 늘어났다.


IBK연금보험 외에 DB형 수수료가 낮은 현대라이프생명과 NH투자증권의 적립금도 전년 대비 40~50%씩 증가했다. 다만 수수료가 업계 다섯 번째로 낮은 신한금융투자의 DB형 적립금은 19% 증가하는 데 그쳤다.



DC형도 마찬가지 양상이다. 수수료가 낮은 동부화재와 제주은행, 경남은행, KEB하나은행 등의 DC 적립금이 2014년 대비 20~30% 늘어났다. IRP 수수료가 낮은 IBK기업은행과 부산은행은 적립금이 80% 이상 급증했다.

수수료가 높은 사업자들과 비교하면 수수료가 낮은 사업자들의 성공적인 자금 유치를 그대로 읽어낼 수 있다. DB형 수수료가 높은 유안타증권의 경우 DB 적립금이 2014년 대비 33% 감소했다. 수수료가 높은 HMC투자증권과 경남은행은 DB 적립금 증가율이 10%대에 그쳤다.

DC형의 경우도 수수료가 높은 사업자의 적립금 증가율은 수수료가 낮은 사업자 적립금 증가율에 크게 미치지 못했다. 특히 IRP 수수료가 가장 높은 유안타증권은 적립금이 6% 감소했다.


◇대형사 수수료 인하 유인 적어

수수료가 낮으면 적립금 유치가 늘어나는 건 바람직한 현상이다. 이는 감독 당국에서도 원하는 대목이다. 감독당국이 연간 총비용부담률 즉 퇴직연금 수수료를 올해부터 공시하기 시작한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정보 공개와 더불어 경쟁을 통한 수수료 인하를 유도하기 위한 의도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연간총비용부담률에는 퇴직연금 가입자가 치르는 모든 비용이 포함돼 있다"며 "수수료 정보 공개를 통해 경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보 공개에도 불구하고 대형사들이 수수료를 인하할 유인이 많지 않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이미 적립금을 많이 쌓고 있는 대형사의 경우 수수료 인하를 통해 신규로 유치하는 자금의 이익보다 기존 적립금 수수료 이익이 더 크기 때문이다. 수수료 인하를 했다가 기존 적립금 수수료 이익이 줄어들 수 있다.

증권사 관계자는 "대기업의 퇴직연금 가입률은 이미 높은데 기업 입장에서 기존에 거래하고 있는 퇴직연금 사업자를 바꾸는 건 힘들다"며 "퇴직연금 사업자 입장에서도 안정적인 수익 창출을 하고 있는 적립금에 대해 수수료를 인하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국내 금융시장 여건상 기업들이 수수료 문제로 퇴직연금 사업자를 바꾸는 것도 쉽지 않다. 퇴직연금의 경우 주거래은행과 계약을 맺는 경우가 많은데 기업 입장에서 보면 다른 금융거래를 위한 발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가령 모 은행에 대출을 받고 있는 A 기업이 수수료가 높다고 다른 사업자로 퇴직연금을 옮길 경우 현실적으로 기존 대출 관계에서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퇴직연금의 경우 DB가 많고 DC도 원리금 보장형이 많은데 사업자간 수익률 차이는 크게 나지 않는다"며 "기업 입장에서도 다른 거래를 위해 퇴직연금을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어 "퇴직연금 사업자 변경이 쉽지 않은 환경, 즉 대형사업자들의 확고한 지위를 감안하면 수수료 인하는 결과적으로 중소형 사업자들이 내밀 수 있는 카드"라며 "이는 중소형사들의 적립금은 늘어날 수 있지만 대형사 대비 이익률이 떨어지는 악순환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