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16년 12월 05일 07:08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지난 1974년 삼성그룹은 역사적인 전환점을 맞는다. 고(故) 이병철 회장은 그룹 인사 발령을 통해 장남인 고 이맹희 CJ 명예회장의 한솔제지(옛 전주제지) 이사직을 박탈한다. 대신 그 자리를 3남인 이건희 회장이 물려받았다. 이 회장은 당시 제일제당 이사에도 오른다. 삼성가 경영권 승계의 시작이었다.이듬해 12월 이병철 창업주는 그룹 모태인 삼성물산 상장 카드를 꺼냈다. 상장 후 삼성물산은 제일복장, 신세계 맥그리거 사업부 등을 흡수하면서 성장 가도를 달린다. 1975년 순매출액이 약 800억 원으로 전기보다 6배 이상 증가했다. 외형확장과 동시에 유상증자로 이건희 회장 등 대주주 지분율이 대폭 늘어났다. 자본 확충에 이어 코리아엔지니어링 지분 투자(1978년), 일본 마루베니 소유 삼성조선 출자 지분 인수(1977년), 중국 전자 공장 투자(1980년) 등 삼성물산 주도의 그룹 신사업 투자 확대가 이뤄진다.
삼성전자의 전신인 한국반도체 인수도 이 시절 이뤄졌다. 이 회장은 이처럼 삼성물산의 성장을 기반으로 그룹 전반의 영향력을 급속도로 확대해 갔다. 삼성물산이라는 비옥한 토양 위에 화려한 꽃을 피운다.
그로부터 40년이 흐른 지난 2015년, 또다시 빅딜이 성사된다. 이건희 회장이 장기간 와병 중인 가운데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옛 에버랜드)이 통합을 단행한다. 합병으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이부진, 이서현 등 오너 3세가 보유한 에버랜드 지분이 삼성물산 지분으로 바뀐다. 이 부회장은 삼성전자와 삼성생명에 대한 간접 지배력을 갖게 되고, 승계 기반을 마련했다. 주요 계열사 합병으로 지배구조는 한결 단순화됐다.
이후 바이오산업 등에 대한 대규모 투자가 단행된다. 주력사인 삼성전자는 10조 원을 투자해 전장산업에도 손을 뻗쳤다. 소유구조 변화와 방식이 40년 전 경영권 승계 당시와 판박이다. 그룹 시작인 삼성물산이 3대에 걸쳐 소유와 경영의 고리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이 부회장의 승계는 그러나 아직 마침표를 찍지 못했다. 합병 과정에서 삼성물산의 기업가치 저평가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국회는 합병에 찬성한 국민연금 등의 기관투자가에게 의사결정의 근거를 대라며 으름장을 놓고 있다. 국회가 스스로 정한 자본시장법에 기초해 산정된 합병비율의 근거를 무력화할 논리를 찾을 수 있을 지 의문이다.
이와 별개로 삼성물산의 가치 판단을 단순히 정량화해 접근하기는 무리가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소유와 경영이 일치된 환경에서 삼성물산의 포지션은 특수한 의미를 갖는다. 때로는 그룹 운명과 직결되는 승계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한 전략적인 판단도 필요하다.
삼성 오너일가는 앞서 스스로 이에 대한 정당성을 증명했다. 지난 1938년 자본금 3만 원으로 삼성물산 전신인 삼성상회를 설립한 이병철 회장은 제일제당(1953년), 제일모직(1954년) 등을 잇달아 설립하고 그룹 면모를 갖췄다. 이건희 회장은 승계 후 시가총액 350조 원 규모의 글로벌기업 삼성을 일궜다.
삼성물산 주가 평가액을 따져 국민연금이 수천억 원의 손실을 봤다는 식의 접근법만이 유효한 건 아니다. 우리는 아직 '이재용의 시대'를 보지 못했다. 베팅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삼성물산 기업가치 산정과 제일모직 합병 정당성을 따지는 건 그때 가서 해도 늦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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