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17년 05월 10일 16:37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한국물(Korean Paper·KP) 시장이 오랜 만에 활기를 되찾았다. 우리은행은 달러화 티어1 코코본드를 발행하면서 발행 규모의 세 배에 달하는 수요를 모으는데 성공했다. 프랑스 대선이 시장의 기대에 부합하는 결과를 도출했고 북한에 대한 지정학적 리스크도 이전보다는 감소했기 때문에 가능한 결과라는 분석이다. 특히 국내 시중은행의 신종자본증권은 절대 금리 수준이 높아 한국물을 찾는 투자자들이 적극적으로 주문을 냈다는 후문이다.

우리은행은 지난 8일 아시아 시장에서 투자자 모집을 선언하고 티어1 코코본드(AT1) 발행에 돌입했다. 이 채권은 투자자들에게 5년 후 조기상환을 청구할 수 있는 콜옵션을 포함시켰다. 이니셜 가이던스(Initial Guidance·최초 제시 금리)는 5.5%로 제시했다. 9일 새벽(현지시간) 미국에서 주문을 마감한 우리은행은 155개 기관으로부터 15억 달러의 주문을 이끌어냈다. 발행 규모는 5억 달러로 확정했으며 금리는 5.25%로 결정됐다.

4월 이후 한국물 시장은 극심한 수요 부진에 시달렸다. 국제 금융 시장의 변동성이 커진 가운데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한에 대한 공격적인 발언을 이어가면서 한반도의 지정학적 리스크가 부각됐다. 이로 인해 한국물 투자를 꺼리는 글로벌 기관투자가들이 늘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4월 이후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프라이싱을 실시한 곳은 남동발전·도로공사·광물자원공사 총 세곳이다. 남동발전은 3억 달러 규모의 유로본드를 발행하면서 얻은 주문은 8억 달러에 불과했다. 도로공사는 당초 글로벌본드를 발행하면서 5억 달러를 조달하고자 했으나 최종 주문이 6억 달러에 그쳐 발행 규모를 4억 달러로 줄였다. 글로벌본드를 찍었던 광물자원공사도 수요가 5억 달러에 머무르면서 4억 2500만 달러로 발행 규모를 줄일 수밖에 없었다. 4월 말 기획재정부로부터 발행 윈도우(Window)를 받은 국민은행은 시장 여건이 개선되지 않아 커버드본드 프라이싱을 실시하지 못했다.

우리은행의 티어1 코코본드 흥행으로 한국물은 새로운 전기를 맞을 것으로 기대된다. 먼저 프랑스 대선에서 유럽연합 잔류를 주장한 중도 후보 마크롱이 당선되면서 국제 금융 시장은 안도했다. 지난 주말 프랑스 대선 결과를 지켜본 우리은행은 8일 장이 열리자마자 과감하게 프라이싱을 실시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지난달 25일 북한이 창군일에 별다른 도발을 하지 않으면서 북한에 대한 지정학적 리스크도 줄어 우리은행이 성공적으로 수요를 모집하는데 영향을 미쳤다.

한국물 투자자들이 원하는 국내 은행의 후순위 채권을 내놓은 점도 흥행 요소 중 하나였다. 한국물 발행사들은 선순위 채권의 경우 가격 결정을 타이트한 수준으로 하기 때문에 투자자들의 피로도가 상당하다. 지난 3월 5년 만기 5억 달러 글로벌본드를 발행한 신한은행 선순위 채권의 쿠폰금리는 2.88%에 불과하다. 우리은행과 크레딧에서 차이가 있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높은 절대 금리 수준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지적이다.

우리은행은 이번 티어1 코코본드에 5.25%의 금리를 지불한다. 5년 후 콜옵션이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5년 내 국내 은행 시장의 별다른 크레딧 이벤트가 없을 경우 우리은행 티어1 코코본드로 더 높은 이자 수익을 향유할 수 있다. 특히 우리나라 은행들의 코코본드는 선진국보다 상각 조건이 까다로워 손실 가능성이 낮다는 점을 투자자들이 선호한다. 은행이 부실에 빠졌을 경우 우리나라 정부가 적극적으로 대응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도 신용도에는 긍정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한국물 투자자들은 높은 금리를 얻을 수 있는 국내 시중은행들의 신종자본증권과 후순위채를 원한다"며 "다만 국내 은행들의 자본비율이 워낙 좋아 은행들이 외화로 조달할 니즈가 적은 편"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딜은 BNP파리바, 씨티그룹글로벌마켓증권, HSBC, JP모간, 노무라증권이 액티브(Active) 주관사로 참여했다. 직접 주문을 받을 수 없고 가격 결정에 참여하지 않는 패시브(Passive) 주관사는 미쓰비시UFJ, 소시에테제네랄이 선정됐다. 법률 자문사는 김·장 법률사무소, 클리어리 고틀립(Cleary Gottlieb Steen & Hamilton)이 활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