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17년 08월 17일 08:22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주식시장은 냉정하다. 투자자는 기업에 대한 평가를 주식을 사거나 파는 행위로 매우 기민하게 구체화한다.최근 현대자동차 주가는 14만 원대. 평가 방법에 따라 조금 달라질 수 있으나 주가순이익(PER)은 대략 7, 주당순자산(PBR)은 0.5배에서 주가가 형성돼 있다. 지금 수준의 이익을 앞으로 7년 정도밖에 못 낼 것 같고 청산가치의 절반 정도로 현대차의 현재 가치를 평가하고 있다는 뜻이다. 현대차에 대한 평가는 그만큼 혹독하다.
실적 부진은 미국과 중국 시장 그리고 내수 할 것 없이 무차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에서 위협적이다. 현대차 뿐 아니라 기아차와 현대모비스 등 계열사들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그 사이 경쟁자 일본과 중국의 자동차 회사들은 약진하고 있어 현대차의 부진은 일시적이고 상대적인 것이라기보다 구조적이고 근본적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일부 전문가들은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가 현대차 부진의 한 요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가격 경쟁력 확보를 위해 부품과 물류, 판매 계열사들을 모두 두면서 생산 단계를 일원화하는 전략이 과거에는 적중했지만 어느 순간 서로가 서로의 발목을 잡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는 시각이다. 최종 제품을 생산하는 현대차와 부품을 제공하는 현대모비스, 철강 제품을 제공하는 현대제철, 완성품을 운반하는 현대글로비스 등이 상생보다는 공멸의 길을 걷고 있는 게 아니냐는 우려다. 계열사 물건과 용역을 서로 안정적으로 주고 받을 수 있으니 경쟁력이 강화되기보다는 그 반대로 작동했을 가능성도 있었다는 얘기다.
이 분석은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 일례로 현대제철의 강판보다 대체로 뛰어난 것으로 평가받는 포스코 강판은 현대차와 기아차에 명함을 내밀지 못한다. 현대차와 기아차는 성능이 조금 떨어지더라도 계열사 물건을 구매해 주고 있다. 계열사마저 현대제철을 외면하게 되면 현대제철은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 같은 논리로 현대차와 기아차가 모비스보다 가격과 질이 더 좋은 다른 회사의 부품을 사용한다면 모비스의 운명도 장담할 수 없다. 현대모비스는 현대차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는 기업이다.
현대차그룹 계열사간 공동 운명체는 끊어 내기도 힘들다. 현대모비스와 현대차, 기아차 그리고 현대제철 등 현대차그룹은 그 어느 대기업보다 탄탄한 순환출자 고리로 묶여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 곳이 삐걱대면 그룹 전체가 와해될 수 있다.
문제는 순환출자가 정몽구 회장과 정의선 부회장의 지배력 강화를 위해 불가피하다는 점이다. 정몽구 회장과 정의선 부회장의 계열사 지분율이 낮아 순환출자가 그 부족함을 메워주고 있다. 그래서 경쟁력이 떨어지는 계열사를 정리하는 것보다 지배력 강화를 위해 순환출자를 유지하는 걸 택하고 있을지 모른다. 또 순환출자 고리를 유지한 채 차곡차곡 현금을 쌓는 게 승계 문제의 훌륭한 솔루션일 수 있다.
변화보다 현상유지를 택할 수밖에 없는 현대차그룹의 상황을 투자자들도 간파하고 있었다. 그래서 현대차그룹의 부진은 쉽게 개선될 수 없는 구조적인 문제로 본 것이다.
그런데 최근 상황이 변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현대차그룹이 지배구조 개편을 위해 이미 움직였다는 소문까지 돌았다. 게다가 새정부가 현대차그룹의 순환출자를 문제 삼으면서 지배구조 개편에 대한 외부의 압박도 거세지고 있다.
상황을 감지한 일부 투자자들은 현대차그룹 계열사 주식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지배구조 개편에는 호재가 뒤따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대차그룹은 어떤 압박에도 현상을 유지할 것'이라며 여전히 주식을 내다 파는 투자자도 있다. 현대차에 대한 시각은 여전히 엇갈리고 있는 셈이다.
사거나 혹은 파는 양쪽 모두의 논리의 끝에는 공통된 의견들이 있다. 애증의 현대차그룹이 잘 됐으면 하는 바람이 그것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현대차그룹의 변화에 대한 요구는 확실합니다. 투자자 즉 주주만을 위한 변화가 아닌 현대자동차 스스로 그리고 경영자, 크게는 국가 경제를 위해 변해야 합니다"
기업이란 직원을 위한 것인지, 투자자를 위한 것인지 혹은 국가를 위한 것인지 아니면 오너만을 위한 것인지 주식시장은 현대차에 묻고 있다. 현대차가 답할 때도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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