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어른', 4세 승계 앞두고 '역할론' [CJ를 움직이는 사람들⑨]손경식, '총수 부재' 전방위 이어간 스킨십…이미경, 방송·엔터테인먼트 씨앗 뿌려
노아름 기자공개 2018-02-22 08:20:23
[편집자주]
CJ에는 '2인자'로 불리거나 이재현 회장의 '오른팔'로 일컬어지는 특정 인물이 없다. 2007년 일찍이 지주사 체제로 전환하면서 '비선 라인' 없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이 회장 경영 복귀 이후 '그레이트 CJ'와 '월드 베스트 CJ' 달성을 위해 사업구조 개편, 대형 M&A 등이 속도를 내고 있다. CJ의 비전을 실현 가능한 목표로 구체화하고 전략을 실행하는 컨트롤타워 조직과 인물들을 살펴본다.
이 기사는 2018년 02월 12일 15:39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이재현 회장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곳에는 항상 그가 있었다. 정치권과 재계는 그의 입을 통해 CJ가 처한 상황과 고민을 전해 들었다. 희끗한 머리칼과 정갈한 수트는 트레이드 마크가 됐다. CJ는 그가 대외 스킨십을 유지해 준 덕택에 이재현 회장의 부재가 일정 부분 메워졌다고 안도한다. 그룹의 '큰 어른'인 손경식 회장의 이야기다.CJ그룹은 내수사업 의존도가 높아 소비심리 변화에 민감하다. 주력 사업으로 꼽히는 식품분야서 시장점유율을 유지하는 동시에 4대 사업축(식품·바이오·신유통·엔터테인먼트)을 균형감 있게 성장시키기 위해 촌각을 다툰다. 2016년 CJ그룹이 정치권발(發) 돌발 이슈에 당황했던 이유는 기업 활동과 큰 연관고리가 없어 보이는 사안에 연루됐기 때문이다. 다르게 말하면 바쁘게 흘러가는 시계를 따라잡기도 힘든 와중에 최순실 게이트의 중심에 선 셈이다. 이 즈음 역설적으로 손 회장의 존재가 빛났다.
◇손경식, 이재현 회장 복귀 후에도 '고문' 역할
이재현 회장의 외삼촌인 손 회장은 1994년 이후 CJ그룹 회장 직을 수행해왔다. 그룹의 고문 격으로 중요 의사결정에 대한 의견을 내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러한 역할은 지난해 5월 이 회장이 경영 일선에 선 이후에도 지속됐다.
이 회장은 아직 실질적으로 업무 복귀를 하지는 않았다. 건강 상의 이유로 사무실에 정기적으로 출근하지 않고 대내외 행사에만 참석하고 있다. 이 회장이 모습을 드러낸 행사는 블로썸파크 개관식(2017년 5월), 온리원페어 아이디어 경영대회(2017년 9월), CJ컵 폐막식(2017년 10월) 등에 불과하다.
완쾌되지 않은 이 회장을 대신해 손 회장은 현재 서울 중구에 위치한 CJ제일제당 내 CJ㈜ 임시사무실로 매일 출근하고 있다. 이는 이 회장의 부재(2013년), 이미경 부회장 퇴진 압박(2016년) 이후 손 회장이 이어왔던 행보와 크게 다름이 없다.
손 회장은 청와대로부터 이미경 부회장의 퇴진 압박을 받은 당사자이자 CJ그룹을 대표하는 인물로서 특검 소환 조사, 법원 출두 명령 등에 응해왔다. 이와 별도로 증인 신분으로 국회를 오가는 틈틈이 해외 인사를 접견하며 그룹 살림도 챙겼다. 월드 베스트(World Best)를 꿈꾸는 CJ그룹에 있어 해외 사업실적은 경영목표 달성을 가늠케 만드는 바로미터라 할 정도로 중요도가 크다. CJ그룹으로선 손 회장이 기댈 언덕이나 다름 없었다는 해석이 나오는 까닭이다.
손 회장은 지난해 8월 서울 중구 CJ인재원에서 미국 에드 로이스 연방하원의회 외교위원장과 회동을 가졌다. 이날 에드 로이스 하원외교위원장은 CJ그룹으로 인해 1000여 명의 고용창출 효과를 봤다며 CJ그룹에 연방의회 감사패를 전달했다. 사료·품종 주요 사업장 중 하나로 꼽히는 베트남 또한 살뜰히 챙겼다. 손 회장은 지난해 12월 베트남 수상실에서 응우엔 쑤언 푹 수상을 만나 문화·경제 교류 확대 방안을 논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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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엔터테인먼트 '씨앗' 이미경 부회장, 美 '원거리' 경영
CJ그룹의 기업사를 설명할 때 빼 놓을 수 없는 인물은 또 있다. 이 회장의 누나이자 고(故) 이맹희 명예회장의 장녀인 이미경 부회장이다. 그룹 사업 확대에 공을 세웠으며 위기 상황에서도 맡은 바 몫을 톡톡히 해냈다는 평가다. 현재는 미국에서 원거리 경영을 지속하고 있으며 국내 복귀 시점은 미정이다.
1995년 당시 드림웍스 투자를 주도한 이 부회장은 CJ그룹이 엔터타인먼트사업 포문을 열 수 있게 만든 장본인이다. 방송 및 영화 등 영상 콘텐츠 사업과 영화관 극장사업은 이 부회장으로 인해 태동될 수 있었다는 게 재계 안팎의 시각이다. CJ그룹의 한류문화 콘텐츠 페스티벌 '케이콘(KCON)', '마마(MAMA)' 등은 이 부회장의 기획력이 발휘된 국제행사로 꼽힌다.
이 부회장 역시 핵심 경영인으로서 CJ그룹의 대소사를 챙겼다. 이 부회장은 2013년 이재현 회장의 부재로 인해 꾸려진 그룹 최고 의사결정기구 '5인경영위원회'에 소속돼 비상경영체제를 이끌었다. 현재는 미국에서 유전성 신경질환 치료를 이어가는 동시에 엔터테인먼트 관계자 미팅을 통해 협력사 네트워킹을 이어오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드림웍스 지분과 콘텐츠 배급권을 씨앗 삼아 CJ그룹은 2020년 해외사업 비중 50% 달성을 눈앞에 두고 있다. CJ제일제당과 CJ E&M, CJ 푸드빌, CJ CGV 등이 현지 사업자와 합작사(JV) 설립, 시설투자를 이어온 결과다. CJ제일제당은 오는 2분기 아이오와주 현지공장에 사료용 아미노산 생산라인 착공을 앞두고 있다. CJ CGV는 지난해 러시아 부동산 디벨로퍼 ADG그룹과 JV 설립계약을 체결했다.
◇4세 승계 앞둔 CJ그룹, 손경식·이미경 역할론은?
CJ그룹은 오너 4세 승계에 본격적으로 나서지는 않았으나 이 회장의 장남 이선호 CJ제일제당 부장이 적통 후계자로 인식된다. 가족 관계나 지분 구성을 감안하면 손 회장, 이 부회장은 이 부장이 경영수업을 마칠 때까지 외풍을 막고 그룹 내부의 중심을 세우는 후견인 역할을 이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슬하에 자녀를 두지 않은 이미경 부회장과 달리 손경식 회장은 아들 주홍 씨와 딸 희영 씨 등에게 조이렌트카의 지분을 나눠줬다. 손 회장의 자녀는 CJ그룹 계열사에서는 근무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최근 손 회장이 조이렌트카 매각 수순을 밟으며 그룹 차원의 부담 마저 낮춰주고 있는 상황이다. 조이렌트카는 CJ그룹의 일감몰아주기 규제 대상이 된 특수관계사다.
재계 일각에서는 손 회장과 이 부회장의 2선 퇴진이 가시화됐다고 진단한다. 지난해 정기인사에서 이재현 회장의 맏딸 이경후 상무가 승진하며 중진으로 올라섰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지역본부 마케팅팀 팀장을 맡고 있다. 그는 남편 정종환 미국지역본부 공동본부장과 함께 각각 상무대우에서 상무로 승진했다. 지난해 3월 상무 대우로 첫 임원직에 오른 두 사람은 8개월 만에 승진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그룹이 경영 안정화에 속도를 냈다는 분석이 나왔다.
재계 관계자는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직을 맡은 손경식 회장과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이끈 이미경 부회장은 입지전적 인물로 꼽힌다"며 "두 사람이 CJ그룹 내에서 각자의 역할을 해 준 덕택에 CJ가 이재현 회장 부재에도 덜 흔들릴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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