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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무 별세]뜨겁게 부딪혔던 '최태원 회장'의 마지막 배웅95년 LG·98년 SK '회장 취임'..화학·통신 분야서 20년 경쟁

박창현 기자공개 2018-05-22 13:58:12

이 기사는 2018년 05월 21일 18:15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고개를 푹 숙인 채 빈소에 들어섰다. 붉게 상기된 얼굴은 누가봐도 이별을 맞이하는 사람의 그것이었다. 평소 인연을 묻는 취재진의 질문도 바람처럼 흘렸다. 그렇게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구본무 회장의 마지막을 배웅하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5월 21일 구 회장 장례 이틀 째. 최 회장은 정오 즈음 빈소를 찾았다. 태어난 시대는 달랐지만 두 기업이 그룹 수장이 돼 서로를 쫓고 쫓았던 시기는 겹쳐있다. 20년이라는 세월. 미운 정 고운 정이 들 법한 기간이다.

구본무 회장은 1995년 2월, 50세에 부친인 구자경 명예회장의 뒤를 이어 LG그룹 제 3대 회장으로 취임했다. 취임 이래 특유의 '끈기와 결단'의 리더십으로 LG그룹을 명실상부한 글로벌 기업으로 키워냈다. 회장 취임 당시 30조원 수준이었던 매출 규모는 지난해 160조원까지 늘었다.

최태원 회장은 3년 뒤인 1998년 아버지 최종현 전 회장이 별세하자 38세 때 SK그룹 회장을 맡게됐다. 취임 이후 이사회 중심의 경영과 수출 역량 강화로 성공적인 변신을 이끌었다는 평가다. SK그룹 매출은 회장 취임 당시에는 36조원에 불과했지만 지난해 말 125조원으로 3배 이상 증가했다. 재계 순위도 3위까지 끌어올렸다.

공교롭게 두 사람이 그룹 회장직을 맡고 성장 가도를 달렸던 시기가 정확히 겹친다. 특히 구 회장이 성장축으로 삼았던 '전자-화학-통신서비스' 3대 핵심 사업 가운데 화학과 통신서비스 2개 분야에서 치열한 경쟁을 펼쳤다. 화학은 'LG화학-SK이노베이션(SK종합화학)', 통신서비스는 'LG유플러스-SK텔레콤'이 라이벌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화학 분야에서는 LG화학이 주도권을 쥐고 있다. LG화학은 구 회장이 첫 근무를 시작했던 계열사다. 그만큼 애착이 컸다. 석유 화학 기초 소재 부문에 대한 선제적인 투자와 고부가 제품 개발로 그룹의 든든한 캐시카우로 성장시켰다. 또 대규모 적자에도 불구하고 과감한 결단을 내려 배터리 사업을 신성장 동력으로 안착시켰다.

SK그룹도 SK종합화학을 앞세워 기초 소재 분야에서 LG화학을 뒤쫓고 있다. 매출 11조원으로 LG화학(17조원)과 여전히 격차가 크지만 지속적인 설비투자로 매출 외형을 꾸준히 키워나가고 있다. 아울러 자동차 배터리 분야에서도 무섭게 LG화학을 추격하고 있다. 특히 최 회장이 배터리 사업을 '딥체인지 2.0'의 핵심 분야로 삼으면서 전폭적인 투자가 이뤄지고 있다. 향후 배터리 시장에서 국내 대표 그룹간 선의의 경쟁이 기대되고 있다.

통신 분야에서는 구 회장의 LG가 후발주자다. 최 회장은 탁월한 마케팅과 선제적 투자로 SK텔레콤을 국내 1위 통신 사업자로 키워냈다. 구 회장의 LG유플러스는 '타도 SK텔레콤' 기치 아래 수십년에 걸쳐 영토 전쟁을 벌이고 있다.

2010년에는 LG텔레콤-LG데이콤-LG파워콤 등 3개사 합병을 주도하기도 했다. 그렇게 유무선 통합 LG유플러스를 출범시키면서 만년 3등 사업자에서 시장 선도자로 이미지를 바꾸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다. LG유플러스의 초기 사업 성과가 나오지 않자 구 회장이 직접 "단기 경영실적에 연연하지 말고 네트워크 구축 초기 단계에서부터 과감하게 투자하라"고 독려한 일화도 유명하다.

반도체를 둘러싼 인연도 얄궂다. 반도체 사업 포기는 구 회장 평생의 한이다. 구 회장은 1989년 5월 금성일렉트론을 설립하면서 반도체 사업을 시작했다. 반도체를 미래 신수종 사업으로 여기면서 강한 애착을 숨기지 않았다. 하지만 1997년 외환위기 여파로 정부가 재벌 빅딜에 나서면서 구 회장은 반도체 사업을 포기해야만 했다.

LG반도체를 모태로 만들어진 기업이 바로 '하이닉스'다. 공교롭게도 최 회장은 2012년 고심 끝에 하이닉스를 인수했다. SK하이닉스가 탄생하는 순간이다. 두 사람의 인연은 그렇게 하이닉스와도 연결돼 있다.

낮 12시 30분. 최 회장은 조문을 마치고 1층 주차장으로 내려왔다. 굳게 닫힌 입술은 끝까지 열리지 않았다. 그렇게 최 회장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구 회장 배웅을 마쳤다. 자신과 똑같은 운명을 타고난 LG가(家)의 구광모 상무. 그 누구보다 위로의 마음이 잘 전달되지 않았을까. 그렇게 LG와 SK가의 인연은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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