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18년 07월 05일 15:01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HSD엔진이 선박용 중속엔진 사업을 잠정 중단했다. 주력 제품인 저속엔진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포트폴리오 다각화를 통한 수익 창출을 위해 중속엔진 시장에 진출했지만 조선업 침체로 발주량이 전무한 탓에 지난 상반기 단 한 대도 생산하지 못했다.

일각에선 HSD엔진이 설비 유지비용, 불투명한 업황 회복 가능성 등을 고려해 중속엔진 시장에서 발을 빼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HSD엔진은 2007년 선박용 중속엔진 시장에 뛰어들었다. 당시 호황기를 맞은 조선사들이 엔진 발주를 늘리자 더 많은 수익을 창출하기 위해 제품 다각화에 나섰다. 중속엔진은 군함(독도함), 크루즈선, 해저시추선 등에 사용되는 제품이다. 불확실한 업황에 대비해 주력 제품인 저속엔진에 치중된 사업 구조를 분산시키려는 전략이기도 했다.

이듬해 10월 HSD엔진은 경상남도 창원시에 위치한 본사에 1만7010㎡(약 5145평) 규모의 중속엔진 공장을 신설했다. 연 500대 규모의 생산능력을 보유한 중속엔진 공장은 작업 과정에서 오류가 발생할 경우 생산라인이 자동으로 정지하는 풀프루프(fool proof) 시스템과 무빙라인(moving line) 등을 업계 최초로 설치해 시장의 이목을 끌었다.

하지만 당초 예상과 달리 신규사업은 녹록치 않았다. 선박용 중속엔진 시장의 경우 덴마크 만디젤(MAN Diesel), 스위스 바르질라(Wartsila), 일본 야마하(Yanmar), 미국 캐터필라(Caterpillar) 등 원천 기술을 보유한 업체(licensor)들이 제품 생산부터 판매까지 모든 인프라를 갖춘 탓에 엔진 제조사들이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세계 시장점유율 10~15% 확보를 목표로 삼았던 HSD엔진은 저속엔진 1대당 평균 3~4대의 중속엔진을 패키지로 팔며 반등을 꾀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여기에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선박용 엔진 발주량 자체가 줄어든 것 역시 악재였다. 2009년 818억원, 2010년 1343억원, 2011년 1402억원으로 늘어났던 HSD엔진의 중속엔진 신규수주액은 2012년 200억원 안팎으로 급감했다. 2011년 1800억원이었던 중속엔진 매출도 이듬해 980억원으로 반토막났다.

2014~2015년 총 1000억원 이상의 영업손실을 기록한 HSD엔진은 2016년 구조조정에 돌입했다. 그해 7월 재무구조 개선 일환으로 중속엔진 공장 내 시운전 설비를 제외한 나머지 자산을 모두 정리했다. 시운전 설비는 현재 저속엔진 조립공장으로 옮겨진 상태다.

HSD엔진 관계자는 "저속엔진 사업에 좀 더 집중하기 위해 중속엔진 공장을 매각했다"며 "하지만 시운전 설비가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에 중속엔진 사업을 완전히 접었다고 보긴 어렵다"고 말했다.

자산 매각과 더불어 제작방식에도 변화를 줬다. HSD엔진은 재고자산에 대한 부담을 덜기 위해 중속엔진을 미리 만들어두지 않고 주문이 들어오면 사내 검토 후 제작하는 방식으로 생산체계를 바꿨다.

HSD엔진 관계자는 "선주가 별도로 중속엔진 제작을 요청하면 이를 진행할지 여부를 검토하는 방식으로 시스템이 변경됐다"며 "지금은 생산활동을 하고 있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업계에선 HSD엔진이 올해 상반기 중속엔진을 단 한 대도 생산하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해당 사업을 잠정 중단한 것으로 보고 있다. 2017년까지만 해도 보고서에 기입됐던 중속엔진의 내수·수출가격 등에 대한 정보가 올해 1분기 보고서에 빠져있다는 점도 이같은 관측에 무게를 싣는다. 일각에선 HSD엔진이 설비 유지에 따른 고정비용 지출, 불투명한 업황 회복 가능성 등을 고려해 중속엔진 시장에서 철수하는 것 아니냐는 전망도 나온다.

HSD엔진 관계자는 "지금까지 사업 전략은 중속엔진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흘렀던 게 맞다"며 "하지만 이번에 회사 주인이 바뀌었기 때문에 중속엔진에 대한 경영 방침이 어떤 식으로 수립될지 현재로선 알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