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대규모 투자 결정 늦어지는 까닭은 정부 일자리 창출 주문, 컨트롤타워 부재·이재용 재판·노동규제 등 발목
김장환 기자공개 2018-07-27 07:51:23
이 기사는 2018년 07월 26일 14:47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삼성그룹이 대통령의 직접적인 요청에도 불구하고 국내 투자 결정을 선뜻 내리지 못하고 있어 그 배경이 주목된다. 역대 최대 규모의 투자와 역대급 채용 실시 등 관측은 무성하지만 구체적인 움직임은 포착되지 않고 있다. 그 이면에는 다양한 이유가 숨겨져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이재용 부회장은 지난 9일 인도 노이다 신공장 준공식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독대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이 부회장에게 "한국에서도 더 많이 투자하고 일자리를 더 많이 만들어 주길 바란다"고 언급했다. 양측의 접견이 예정돼 있지 않았고, 또 대통령이 직접 이 부회장에게 투자 요청을 했다는 점에서 상당히 이례적인 일로 평가됐다.
이를 계기로 삼성그룹이 올 하반기 국내 투자 계획을 곧 확정할 것이란 관측이 나왔다. 하지만 삼성그룹은 아직까지 결정된 게 아무것도 없다는 입장만 반복하고 있다. 항간에는 한국GM이 빠져 나간 군산시에 공장 인수 등 방식의 투자를 할 것이란 관측도 있었지만 삼성그룹은 "사실이 아니다"고 일축했다.
삼성그룹이 투자 결정을 선뜻 내리지 못하는 것을 두고 재계에서는 다양한 해석이 나온다. 일단 컨트롤타워 부재로 투자 결정을 내리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대표적이다. 삼성그룹이 지난해 미래전략실(미전실) 해체 이후 경영상 의사결정을 내리는데 다방면에서 어려움을 겪는 양상을 보여왔기 때문이다.
삼성그룹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휘말려 미전실이 '정경유착'의 주범처럼 평가받자 지난해 2월 이를 해체했다. 사업지원TF(삼성전자), EPC경쟁력강화TF(삼성물산), 금융경쟁력제고TF(삼성생명) 등 태스크포스팀을 만들어 미전실을 대체했지만 그 역할과 기능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계속돼 왔다.
미전실을 중심으로 한 삼성그룹의 의사결정 체제를 과거부터 비판해왔던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조차 삼성에 옛 미전실과 같은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최근 밝히기도 했다. 김 위원장은 지난 5월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현재 삼성전자와 삼성생명, 삼성물산 등으로 쪼개진 미전실로는 삼성이란 거대 그룹의 미래를 담보하기 어렵다"며 "(기존 미전실과는 다르더라도) 새로운 컨트롤타워를 구축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김 위원장이 이 같은 발언을 내놓은 건 삼성그룹이 미전실 해체 후 당국의 요구들을 서둘러 수용하고 결정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란 해석도 있다. 재계 관계자는 "이전에는 미전실이란 강력한 컨트롤타워가 있었기 때문에 당국이 무언가 요구를 하면 미전실을 통해 일사천리로 결정이 됐다"며 "미전실 해체 후에는 공정위 등에서 뭔가 요구를 해도 의사결정이 더디게 이뤄지는 등 추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에 김 위원장 입장에서도 불편한 점이 많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재용 부회장이 소위 '뇌물죄' 상고심 재판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는 점도 삼성그룹의 투자 결정 지연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해석도 있다. 삼성그룹이 문 대통령의 투자 요청 직후 곧바로 대규모 국내 투자 계획을 발표했을 경우 오히려 부정 여론이 확대됐을 가능성도 있었다. 일종의 '청탁'처럼 비춰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부회장은 뇌물죄 재판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았지만 2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고 올해 초 풀려났다. 대법원 판결이 언제쯤 나올지는 불확실하지만 올 가을 무렵에는 어느 정도 결론이 나오지 않겠냐는 관측이 우세하다.
진보 성향의 학자로 유명한 전성인 홍익대학교 교수는 문 대통령이 이 부회장에게 투자 요청을 한 것을 공개적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전 교수는 "대통령의 의도야 충분히 이해할 수가 있다"면서도 "지금 이재용 부회장이 개인적으로 재판중인데 만나서 이렇게 (투자 요청을) 얘기하면 원론적으로도 타당하지 않고 시기적이나 구체성과 관련해서도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국내 공장 증설 등 방식으로는 고용 확대 효과가 그리 크지 않다는 점도 삼성그룹의 투자 결정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평가 역시 있다. 특히 스마트폰 등의 해외 생산 물량을 점차 늘려나가고 있어 무리하게 국내 투자를 할 만한 상황도 아니라는 평가다. 최저임금 인상 등 노동 규제가 점차 강화되고 있는 국내 실정을 봤을 때 고용 인력을 늘리는 방식의 투자는 삼성그룹에 유리할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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