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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패밀리 오피스의 진화 [thebell note]

최은진 기자공개 2018-10-08 08:52:08

이 기사는 2018년 10월 02일 08:04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패밀리 오피스(family office)는 자산가들의 재산 은닉 필요에서 출발했다. 19세기 로스차일드 가문이 정부와 경쟁자들의 눈을 피해 막대한 재산을 굴리기 위한 대안으로 집사를 대리인으로 내세워 관리토록 한 것이 시발점이다. 자금 운용의 추적을 피하며 정보를 독점하려는 욕망에서 비롯됐다. 이후 미국의 석유재벌 록펠러 가문이 '패밀리 오피스'를 처음으로 설립하며 공식화됐다.

패밀리 오피스는 대를 거듭하며 목표와 전략이 변한다. 1세대 자산가들은 재산 은닉이 목적이었다면 2세대로 넘어오며 상속이 화두로 떠올랐다. 세금을 줄여 상속을 하고, 기업을 안정적으로 승계하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재산 은닉과 운용에 방점이 찍혔던 초창기 패밀리 오피스 전략에 절세, 승계, 법률 이슈가 추가된 형태로 발전했다. 현재 전세계 약 1만여개의 패밀리오피스가 활약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우리나라 패밀리 오피스 시장은 어떨까. 삼성생명, 신영증권을 비롯한 유수의 금융회사들이 관련 사업을 시작한 지 10년이 흘렀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사모펀드를 활용한 자금 운용은 물론 절세, 법률, 상속 등 종합적인 서비스를 함께 제공하고 있지만 해외 시장과 비교하면 발전 속도가 매우 더디다.

그 배경에 대해서는 다양한 해석이 나온다. 한국인의 정서 상 가문의 자산을 대리인에게 맡긴다는 것에 거부감이 크고, 금융회사에 수수료를 지불하는 것을 민감하게 받아들인다는 것. PB들의 역량이 종합적인 가문관리를 할 정도가 아니라는 불신도 배경으로 꼽힌다. 이에 앞으로도 패밀리 오피스 사업이 안착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는 시각도 상당하다.

하지만 우리나라 자산가들도 대를 거듭하며 니즈가 변화하고 있다는 점에 초점을 맞추면서 패밀리 오피스 시장의 활성화를 기대하는 의견도 있다. 최근 기업의 오너 자제들이 가업 승계를 포기하려는 움직임이 높아지면서다. 50%를 웃도는 상속세와 증여세, 가치관 변화, 직업의 다양화 등 사회적인 이슈와 맞물려 가업을 물려받기 보다는 매각 등 다른 방안을 찾는 사례가 늘고 있다. 기업을 매각해 현금화 하거나 전문경영인을 내세우고 배당을 챙기는 방안 등 여러 조언이 뒤따른다.

이 과정에서 패밀리 오피스가 활약할 여지가 있다. 현금화 한 자산을 관리 및 운용하는 것은 물론 전문경영인을 통해 운영되고 있는 회사의 재무 상태 등을 모니터링하는 역할을 PB들이 충분히 수행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대리인에 대한 거부감이 과거에 비해 꽤 완화된데다 서비스에 대한 정당한 수수료를 지불하는 것에 익숙한 젊은 부호들에게 패밀리 오피스는 비서 및 집사로서 충분한 대안이 될 수 있다고 기대한다. 일부 금융사와 PB들은 이러한 움직임을 읽고 젊은 부호들을 위한 서비스와 미케팅에 열중하고 있다.

패밀리 오피스의 성공은 결국 자산가들의 니즈를 얼마나 잘 간파하느냐에 달렸다. 재산 은닉에서 절세와 승계로, 해외 패밀리 오피스 시장이 자산가의 니즈에 유연하게 대응하며 성장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국내 패밀리 오피스 전략도 자산가들의 변화에 맞춘 진화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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