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촌을 움직이는 사람들]우창록·윤세리 주축으로 만든 '율사의 마을'①조세·공정거래 양날개…'앙팡 테리블'
조세훈 기자공개 2019-08-28 07:43:35
[편집자주]
1992년 우창록 변호사가 독립해 설립된 법무법인 율촌은 비교적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국내 대표적인 대형 로펌으로 성장을 거듭해왔다. 설립 초기 조세·공정거래 분야의 전문성을 기반으로 송무와 기업자문 분야까지 영역을 확대하며 존재감을 각인시키고 있다. 2007년 대형 로펌으로는 최초로 베트남에 진출했으며, 인도네시아·러시아·중앙아시아에도 현지 사무소를 두고 해외 법률 자문시장 확대에 앞장서고 있다. 더벨은 율촌의 성장을 이끌어온 기업자문 변호사들의 면면을 세대별로 살펴봤다.
이 기사는 2019년 08월 27일 15:02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1992년 8월 서초구 반포동 대정빌딩. 40대 초반의 우창록 변호사는 김·장법률사무소(이하 김앤장)을 떠나 홀로서기에 나섰다. 신생 로펌의 출발을 알린 '율촌'의 등장은 비교적 조촐하게 이뤄졌다. 스타 법조인을 영입하기보다는 뜻을 나누는 동지들을 조용히 규합하면서 세상의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우 변호사 역시 '대형 로펌'을 만들 계획은 없었다. 실제 합동사무소로 전환하는 데만 5년의 시간이 걸렸다.다른 대형 로펌들과 마찬가지로 율촌은 외환위기를 통해 크게 성장했다. 새로운 형태의 법무법인을 꿈꾸던 율사(律士)들은 의기투합해 '작지만 강한 로펌'을 만들었다. 새로운 분배 시스템, 협업의 강조, 율촌 아카데미 개설 등 동시대에 등장한 로펌과 달리 율촌이 국내 수위권 로펌으로 성장할 수 있는 토대가 됐다.
◇법률가 마을을 꿈꾼 1세대…조세·공정거래 '양 날개' 구축
율촌은 '뜻을 함께하는 율사들의 마을'을 의미한다. 첫 태동기 한국형 로펌의 안정적인 울타리를 벗어나 도전 정신을 갖춘 창립자들의 의지로 탄생했다. 설립 주역인 우창록 변호사는 판검사 임관 대신 변호사로 법조 인생을 시작했다. 사법연수원 6기로 곧장 김앤장에 입사해 조세 분야에서 명성을 쌓고 있던 우 변호사는 노태우 정부 때인 1992년 현대그룹 계열사 소송을 맡으며 인생의 갈림길에 서게 됐다. 김앤장이 1300억원 규모의 현대그룹 조세 사건을 중도에 맡지 않기로 결정하면서다.
우 변호사는 현대그룹 소송을 끝까지 책임지고자 김앤장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그해 8월 서울 서초구 반포동 대정빌딩에 '변호사 우창록 법률사무소' 간판이 걸리게 된 토대가 됐다. 우 변호사는 "규모가 있는 로펌을 만들어야겠다는 계획 같은 것은 없었다"며 "그 사건에서 손을 떼서는 안 될 것 같아서 무작정 나왔다"고 회고했다.
우 변호사는 사법연수원 시절 은사인 윤일영 전 대법관과 공동 소송 대리인을 맡아 4년 만에 국세청을 상대로 100% 승소를 이끌어냈다. 이밖에 1992년 현대산업개발의 수백억 원대 토지초과보유세부과처분 취소소송에서 승소하는 등 세무 소송 분야 국내 최고 전문가로 명성을 쌓아가기 시작했다.
개인 변호사 사무소였던 율촌이 현재의 모습을 갖춘 것은 '조세법의 대가'로 알려진 이창희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現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권유에서 비롯됐다. "규모가 크지 않더라도 좋은 사람들이 모인 고품격 로펌을 만드는 것이 어떠냐"는 이 교수의 제안에 우 변호사는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1997년 김앤장 출신인 강희철 변호사(11기), 한만수 변호사(13기)와 이 교수의 소개로 연을 맺은 한봉희 변호사(16기)와 함께 '법무법인 율촌 합동법률사무소'로 개편했다.
그해 여름에는 우방합동법률사무소에서 공정거래와 조세를 비롯해 외국계 기업의 자문 업무를 수행한 윤세리 변호사(10기)와 정영철 변호사(13기)도 율촌에 합류했다. 두 변호사는 당시 한국 법조계에서 보기 드문 경력을 지녔다. 한국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미국 변호사를 취득한 뒤 글로벌 로펌인 베이커앤맥켄지(Baker&McKenzie)에서 변호사 생활을 했다. 특히 윤 변호사는 서울대 법대 대학원 시절 당시 경제기획원에 있던 박병원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으로부터 공정거래법 연구를 제안받고, 1978년 국내 최초의 공정거래법 논문으로 평가받는 '불공정거래 행위에 관한 고찰'을 작성한 경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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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여섯 명의 변호사는 그해 7월 서울 삼성동의 섬유센터로 사무실을 옮겨 현재의 율촌을 창립했다. 우창록·한만수 변호사가 조세를, 윤세리 변호사가 공정거래와 국제 조세를, 강희철·정영철 변호사가 M&A와 일반 기업 자문을, 한봉희 변호사가 금융권과 지적재산권을 담당했다. 특히 국내 최고 수준의 명성을 지닌 우 변호사의 조세 분야와 윤 변호사의 공정거래 분야는 초기 율촌이 비약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양 날개가 되어줬다.
◇외환위기 시기 '도약' …윤용섭 합류 후 송무 성장세 본격화
한국 경제사에서 빠져서는 안될 외환위기 태풍이 우리나라를 강타한 90년대 말 정부는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기에 이른다. 위기감에 휩싸인 율촌 역시 공채 1기 변호사 채용 규모를 줄여 정치형(24기), 김기영(27기), 김윤숙(27기) 변호사 등 3명을 채용하는데 그쳤다. 그러나 위기는 곧 기회로 돌아왔다. 대기업이 파산하거나 구조조정을 하면서 각종 분쟁이나 대량의 부실채권 처리 문제 등 법률 문제가 대거 발생했다.
율촌은 대형 로펌 출신 파트너 변호사들의 경쟁력을 바탕으로 여러 사건을 수임하는데 성공했다. 1998년 국내 대형증권사를 대리해 세계적인 투자은행과 벌인 '총수익스와프(Total return swap)' 관련 대형 국제소송에서 승소해 짧은 기간 위상을 높일 수 있었다. 강희철, 한봉희 변호사 등이 골드만삭스와 리먼브라더스 등 글로벌 금융사의 자문을 연달아 맡으며 기업금융과 투자금융 분야에서도 시장의 주요 플레이어로 자리매김했다.
상대적으로 취약한 지점으로 꼽힌 송무 분야는 당시 윤용섭 서울지방법원 서부지원 부장판사(10기)를 영입하면서 보완했다. 법원 안팎에서 실력가로 명망이 높은 윤 부장판사를 연수원 동기인 윤세리 변호사가 권유했고, 윤 부장판사는 1999년 3월 송무 분야 '구원투수'로 율촌에 합류했다. 율촌 송무 분야는 판사 출신 윤윤수(13기), 문일봉(20기), 박주봉(23기) 변호사가 추가 합류해 역량이 한층 강화됐다. 이듬해인 2000년 3월에는 대법원 재판연구원 시절 조세조 조장을 지낸 소순무 부장판사(10기)까지 율촌에 가세, 조세소송 분야도 더욱 강력해졌다. 우 변호사와 서울대 법대 동기였던 소 변호사는 율촌에서 조세 부문의 양대 주축으로 호흡을 맞추게 됐다.
비교적 젊은 로펌인 율촌은 법조계 원로 인사들이 합류하면서 신구 조화를 완성했다. 2000년 9월 김용준 헌법재판소장이 임기를 마치고 율촌에 합류했다. 김 소장은 서울대 법대 3학년 재학 중 9회 고등고시(사법과)에 수석으로 합격했다. 대법관과 헌재소장을 역임하며 자타가 공인하는 법률의 대가다. 신성택 전 대법관(사법과 16회)과 김대환 전 서울고등법원장(사법과 8회)도 율촌에 합류해 경륜의 힘을 보탰다. 단기간 내에 급성장한 율촌이 앙팡 테리블(무서운 신예)라는 별칭을 얻었던 시점도 이 즈음이었다.
율촌은 올해 큰 변화를 겪었다. 율촌 창립멤버이자 공동대표인 우창록, 윤세리 변호사가 올해 2월 대표직에서 물러나 명예대표를 맡았다. 두 변호사는 율촌 설립 20여 년 만에 변호사 380여명을 포함해 850여명 규모의 대형 로펌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도력을 발휘해왔다. 다만 세대교체와 율촌의 제2 도약을 위해 용퇴를 결정한 것이다. 2기 대표는 윤용섭(10기), 강석훈(19기), 윤희웅 변호사(21기) 등 3인이 공동으로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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