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상사 자원개발업 점검]한 때 1등 LG상사의 현재는자원개발 영업익 비중 전체 70% 넘기도…원자재 가격 하락 탓 신규투자 '뚝'
김성진 기자공개 2019-10-15 14:10:55
[편집자주]
'무역에서 에너지로'는 2000년대 중후반 국내 종합상사들의 공통된 캐치프레이즈였다. 2008년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뒤 자원개발을 국가적 사업으로 여기고 세계 각지의 석유·석탄·가스·식량자원 분야에 대대적인 투자가 진행됐다. 그러나 실패가 더 많았다. 수조원의 투자금이 허공에서 사라졌다. 구조조정을 거쳐 자원개발 사업장의 옥석가리기가 진행됐다. 지금은 어느덧 살아남은 사업장이 하나 둘 생겨나 각 종합상사들의 캐시카우가 되는 반전의 상황이 나오고 있다. 종합상사들의 자원개발 사업 과거와 현재를 더벨이 들여다봤다.
이 기사는 2019년 10월 14일 09:01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지난 2000년 LG상사는 영국 런던에서 자원개발 사업에 필요한 자금을 모으기 위해 로드쇼를 개최했다. 필리핀 금·동광 개발에 필요한 1억6000만달러(한화 약 1900억원) 자금 중 1억달러(한화 약 1200억원) 투자자금을 조성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자원개발 사업에는 호주 클라이맥스와 영국 스탠다드은행이 함께 했다. 로드쇼에는 주관사인 스탠다드은행을 비롯해 로스차일드, 바클레이 등 15개 외국은행이 참여했다.자원개발 사업 자금 모금을 위해 로드쇼를 개최하는 것은 요즘에도 흔한 일은 아니다. 하물며 20년 전에 해외에서 자금모금 행사를 벌였으니 이는 당시 LG상사의 자원개발 사업에 대한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LG상사는 대한광업진흥공사와 함께 2500만달러(한화 약 300억원)를 투자해 각각 24%, 10%의 상당한 지분을 보유하고 있었다.
1980년대부터 자원개발 사업에 뛰어든 LG상사는 한 때 자원개발 사업 분야에서는 국내 종합상사 중 가장 선두에 서 있었다. 당장 수익이 나지 않더라도 참을성 있게 기다리며 사업기회를 모색했다. 그러다 2000년대 중반부터 그동안 투자했던 자원개발 사업장들이 연달아 원활하기 돌아가기 시작했고 '자원개발 전문업체'를 표방하며 힘을 실었다. 그 결과 자원개발 사업에서 창출되는 영업이익이 전체 70% 비중을 넘기도 했다.
석유, 석탄, 광물 등 전 세계의 자원을 거침없이 캐내던 LG상사의 의지에 제동이 걸린 것은 2015년부터다. 탐사와 생산 등 20여개가 넘는 자원개발 프로젝트를 동시에 진행하고 있었지만 현재는 13개로 줄어들었고 새롭게 탐사 중인 자원개발 사업은 전무한 상황이다. 원자재 가격이 대폭 떨어진 이후 회복하지 못해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하고 있다. 대신 수익성은 다소 낮지만 식량자원 개발에 힘을 주고 있다.
◇IMF 전후 사업개편과 함께 자원개발 전면에
LG상사가 최초로 자원개발 사업에 뛰어는 것은 36년 전이다. 1983년 일본 에너지회사들 틈새에 끼어 호주 엔샴광산에 1000만호주달러를 투자해 5%의 지분을 확보한 게 첫 번째 도전이었다. 엔샴탄광의 추정매장량은 16억9500만톤으로 당시 석탄가격으로 환산하면 735억달러(한화 약 87조원) 규모에 이를 정도로 거대했다.
초창기 자원개발 사업은 원자재 수급을 위한 중개무역 성격이 강했던 탓에 규모가 크지 않고 소극적이었다. 그러나 1997년 외환위기 전후로 대대적인 변화가 시작됐다. LG상사는 당시 대규모 구조조정과 함께 전면적인 사업 개편을 단행했다. 매출 비중은 크지만 수익성이 낮은 수출대행 업무의 비중을 줄이는 동시에 자원개발 사업 등 수익성이 높은 사업을 전면에 내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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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자원개발 사업 역시 모두 이 시기 이후에 이뤄졌다. LG상사가 30년간 운영하다 올 초 사업권을 반환한 오만 부카 가스전과 웨스트 부카 유전 사업 계약은 1997년에 체결됐다. 당시 LG상사는 금호그룹 및 효성그룹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부카유전 지분 50%를 4450만달러(한화 약 530억원)에 매입했으며, 이중 60%인 2670만달러(한화 약 300억원)를 부담하는 구조였다. 1999년에는 카타르 액화천연가스(LNG) 사업에 참여했으며 2002년에는 베트남 11-2광구 개발 컨소시엄 참여했다. 2003년에는 필리핀 동·아연 등 자원개발 사업, 2005년에는 필리핀 말람파야 가스전 35% 지분참여 등 자원개발 사업 투자가 연달아 이어졌다.
◇구본준 부회장 체제 이후 만개
LG상사가 자원개발 사업에서 빛을 보기 시작한 시기는 2008년 구본준 현 LG그룹 부회장이 LG상사를 이끌던 시기와 맞물린다. LG상사는 구 부회장 취임 3~4년 전부터 공격적으로 투자했던 자원개발 사업에서 속속 성과를 내고 있었다. 2009년에는 지난 1997년 오만에서 착수한 원유사업에서 원유를 생산하기 시작했고, 같은 해 인도네시아 MPP 유연탄광에서는 유연탄 생산이 시작됐다. 특히 인도네시시아 MPP 유연탄광 사업의 경우 LG상사가 국내 종합상사로서는 최초로 탐사 단계부터 개발 및 생산에 성공한 사업이었다.
물론 새로운 사업 개발도 계속됐다. 특히 2008년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이후 '자원외교' 정책과 맞물려 새로운 사업을 연달아 시작했다. LG상사가 2008년 들어 가장 먼저 정부와 손잡고 실시한 사업은 바로 우즈베키스탄 가스전 사업이었다. 당시 정부는 이명박 대통령 취임에 맞춰 우즈베키스탄과 합작투자회사를 만들었고 가스전 개발과 석유화학 및 건설사업을 연계한 패키지형 사업안을 구상했다. LG상사는 이 합작회사에 5%의 지분을 투자했다.
정부기관과 합작은 연속으로 이뤄졌다. 2008년 4월에는 대한광업진흥공사와 함께 구리·아연 등이 생산되는 필리핀 라푸라푸 광산 개발을 시작했다. LG상사가 42%, 대한광업진흥공사가 28%의 지분을 소유하는 구조였다. 또 같은 달에는 한국남부발전과 손잡고 오만 국영투자회사와 함께 석탄관련 합작사를 세웠다. 아울러 LG상사는 한국전력, 대한광업진흥공사와 함께 러시아 우라늄국영회사인 ARMZ 우라늄홀딩스와 우라늄 공동개발을 위한 MOU를 체결하기도 했다.
LG상사가 자원개발 사업에 주력하자 해외에서도 주목했다. 2008년 9월에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의 러브콜을 받기도 했다. 푸틴 총리는 러시아에서 활동 중인 글로벌 10개 기업의 최고경영자들을 자신의 공관으로 초대했는데 한국 기업인으로서는 구 부회장이 유일하게 초대를 받았다. 당시 구 부회장은 푸틴 총리와 함께 자원개발 사업 추가 투자에 대해 논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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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준 체제 시절 자원개발 사업 순항은 당시 실적을 보면 알 수 있다. 2007년 LG상사가 자원개발 사업으로 벌어들인 수익은 475억원 수준이었다. 그러나 이듬해인 2008년 영업이익은 1181억원으로 증가했고 2009년에 또 한 차례 실적이 좋아지며 1249억원을 기록했다.
◇숨고르는 자원개발 신규투자…탐사광구 0개
순항 중이던 LG상사의 자원개발 사업에 제동이 걸리기 시작한 시점은 지난 2015년부터다. 그동안 자원개발 사업에서 꾸준한 흑자를 내던 LG상사는 2015년 돌연 900억원에 달하는 적자를 기록했다. 당시 적자 원인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철강, 비철 등 원자재에 대한 수요가 줄어든 데다 유가 하락까지 겹치면서 자원개발의 시황 자체가 악화일로를 걸었다. LG상사 역시 오만과 베트남 광구 등에서 거듭 손실을 냈다. 2015년에는 960억 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하며 처음 적자전환의 쓴맛을 봤다. 2016년 곧바로 275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하며 흑자전환하긴 했지만, 이후에도 예년만큼의 실적을 기록하진 못하고 있다. 지난해 영업이익은 283억원 수준에 머물렀다.
자원개발 사업 실적 부진이 이어지며 자연스레 진행 중인 프로젝트 숫자도 줄어들었다. 현재 LG상사가 영위하는 자원개발 사업은 모두 13개다. 몇 년 전만 해도 20개가 넘는 프로젝트를 동시에 진행하던 것과 비교하면 눈에 띄는 차이다. 무엇보다 현재 탐사 중인 사업은 전무한 상태로 사실상 자원개발 사업 투자가 멈췄다고 볼 수 있다. 석유, 가스, 석탄 등 원자재 가격이 현재 낮게 형성돼 투자 기회가 적당하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수익성은 낮지만 안정적인 식량자원 개발 사업에 눈을 돌리고 있다. LG상사는 지난 2009년 인도네시아 칼리만탄에서 팜농장을 확보하며 처음으로 팜오일 사업에 진출했다. 지난해 말에는 761억원을 투자해 팜 농장 2곳을 새로 인수하며 팜오일 사업에 힘을 주고 있다.
LG상사 관계자는 "2010년 이전에 자원개발 사업이 활발하게 이뤄졌고 이 사업장들이 모두 생산단계에 들어가며 이득을 많이 봤었다"며 "다만 2010년대 중반 들어 원자재 가격이 급격하게 꺾이며 상황이 안 좋아지기 시작했고 이후 기존 투자한 자산들의 운영을 효율화하는데 많이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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