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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재계 수장들의 '참신한' 음모 [thebell desk]

김용관 산업1부장공개 2020-07-10 08:18:53

이 기사는 2020년 07월 09일 07:34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가장 강렬한 기억의 영화를 꼽으라면 단연 유아인이 주연을 맡은 '베테랑'이다. 1000만 관객을 끌어모은 영화다. 마약을 하는 재벌 2세, 실상은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는 악당과 다름없다. 측근들은 온갖 모멸감을 참아내면서 사건사고를 덮어주는데 급급하다.

대중이 이 영화에 몰입하는 배경에는 재벌 자식에 대한 반감이 깔려있다. 마약 사건을 비롯해 조폭을 이용한 폭력, 직원들에 대한 폭력 등 그간 재벌 자식들이 벌인 패륜적 사건사고를 소재 삼아 버무렸다. 실제로 재벌가 자제에 대한 혐오와 분노를 부추긴 크고 작은 사건이 많았다. 그 현장을 '실황 중계'로 지켜본 경우도 적지 않았다.

유아인의 컬러가 워낙 선명해 정도만 다를 뿐 다른 2세들도 비슷하지 않겠냐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렇다고 대부분의 재벌 자제들이 유아인처럼 폭력적이고 패륜적이라고 도매금으로 매도할 필요는 없다.

2007년 8월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부인인 변중석 여사의 장례식장에서 만난 정의선 당시 기아차 사장은 목에 잔뜩 힘이 들어있을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겸손하고 소탈했다. 자정이 넘은 시간 기자들과 소주잔을 기울이며 할머니를 회상하는 모습은 범부와 다를바 없었다. 그래서 그들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한 재벌가 자제들의 도덕과 품성, 사고와 행위 등을 함부로 일반화해 언급하는 건 매우 위험한 일이다.

그런 점에서 최근 4대그룹 총수 회동은 의미심장하다. 미래 전기차 및 배터리 분야 협업을 위해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을 중심으로 4대 그룹 수장들이 잇따라 만났다. 원래 재벌가의 회동은 실제 내용과 상관없이 부정적인 이미지가 덧대지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40대~50대 젊은 재계 수장들의 만남은 그 자체로 신선했다. 안하무인이고 몰상식한 우월감에 사로잡힌 재벌의 이미지가 아닌 비즈니스에 올인한 젊은 기업인의 활기를 발견할 수 있었다. 사진상으로 보여진 이들은 비즈니스 파트너로서 자부심이 가득했다.

이번 만남을 계기로 조만간 현대차와 3대 배터리 제조사의 협업이 가시화될 것이란 기대감이 높다. 모빌리티 사업의 미래를 내다본 젊은 수장들의 협력은 성공 여부와 상관없이 박수받을만 하다.

이재용 부회장의 할아버지 이병철, 구광모 회장의 할아버지 구인회, 정의선 부회장의 할아버지 정주영. 한때는 40대~50대의 젊은 감각으로 서로 협력하고 때로는 서로 경쟁하며 우리나라 경제를 한단계 성장시킨 기라성같은 주역들이다. 이제 그들의 레거시를 손자들이 이어받아 전면에 나섰다.

사실 대기업 수장들의 관계는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았다. 1997년 IMF 외환위기와 함께 정부 주도로 진행된 5대 그룹 간 ‘빅딜(대규모 사업교환)’은 대기업 총수들의 거리를 멀어지게 했다. 총수들이 빅딜 과정에서 갈등을 빚었고 감정의 골은 한동안 메워지지 않았다.

싫든 좋든 대기업은 한국 경제의 주력이다. 인공지능(AI), 테크놀로지, 바이오를 중심으로 벌어지고 있는 글로벌 경제 전쟁에서 이들 없이는 버텨낼 수 없다. 안타깝게도 그게 현실이다. 함께 산업 생태계를 만들어야 글로벌 시장을 주도할 수 있기 때문에 협업 사례가 더욱 늘어날 수 밖에 없다.

경제 전쟁에 나선 장수들은 이제 40대~50대로 과거에 비해 상당히 젊어졌다. 나이만큼 생각과 행동도 젊어져야 한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꼰대가 아닌 신선한 아이디어가 필요한 시점이다.

고전 경제학의 거두인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동종업계의 상인들이 모이는 것은 매우 드물지만 모였다 하면 음모를 꾸민다"고 꼬집었다. 재계 총수들은 행동으로 애덤 스미스의 생각이 잘못됐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젊은 수장들이 자주 만나서 한국 경제와 공동체를 위한 참신한 아이디어를 짜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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