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선 시대, 도전과 응전]엔진 품질 논란 ‘정면돌파’...장기 리스크 해소 기대엔진품질비용 대규모 반영…선제적 고객 보호, 3분기 적자 불가피
김경태 기자공개 2020-10-22 08:22:13
이 기사는 2020년 10월 20일 10:56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현대자동차는 설립 이후 일본 미쓰비시와 기술제휴를 맺고 협력했다. 고 아산 정주영 회장은 국가 경제를 위해서는 기술 독립이 절실하다는 점을 간파하고 실행에 나섰다. 자동차 부품을 국산화하는 과정에서 내연기관차의 심장인 엔진이 핵심이라고 생각했다.아산은 1980년대초 엔진을 자체적으로 만들겠다는 결단을 내렸다. 당시 사내에서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미쓰비시가 기술을 제공하지 않아 생산에 차질이 생길 것이란 우려였다. 하지만 아산은 1983년초 엔진 개발을 위한 연구소 설립 계획을 확정했다. 같은 해 9월에는 '신엔진 개발 계획'을 만들었다. 이듬해 11월에는 경기 용인 구성면 마북리에 연구소 건물을 준공했다.
인재 영입에도 박차를 가했다. 1984년 미국 GM과 크라이슬러에서 엔지니어로 일하던 이현순 박사와 이대운 박사를 영입하면서 직원 5명으로 엔진 부서가 사상 처음으로 생겼다. 영국 회사 리카르도와 기술 협력도 맺었다.
미쓰비시의 반대 입장은 명확했다. 당시 구보 도미오 미쓰비시 회장은 "최신 기술을 줄 테니 이현순을 해고하라. 로열티 절반을 깎아줄 테니 사표를 받아라"는 식으로 회유했다. 하지만 아산은 '미쓰비시가 이렇게 좋은 제안을 하는 것을 보니 반드시 좋은 결과가 있겠다'는 생각으로 지속 추진했다.
아산은 마북리에 자주 찾아 연구원들과 접촉했다. 공학적인 지식은 없었지만 타고난 감각으로 연구원들에 엔진의 용적 비율 등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아산의 애정 속에 현대차는 1991년 독자기술로 만든 '알파엔진'을 탄생시켰다.
정몽구 명예회장 시기에도 진보했다. 연구원 140여명이 4년 가까이 매달린 끝에 2002년 세타엔진을 개발했다. 대한민국이 엔진 수입국에서 엔진 수출국으로 전환하는 순간이었다. 그 후 현대차는 미쓰비시, 크라이슬러와 '글로벌엔진제조연합(GEMA·Global Engine Manufacturing Alliance)'을 결성했다. GEMA 내에서도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세타엔진 기술을 미쓰비시에 로열티를 받고 팔았다는 점이 의미가 깊었다. 미쓰비시는 세타엔진을 보강해 활용했다. 크라이슬러 경영에 참여하고 있던 벤츠에도 엔진 3종이 공급됐다. 크라이슬러는 세타엔진을 받아 간 뒤 월드엔진시리즈와 타이거샤크라는 엔진을 만들었다.
다만 세타엔진은 대규모 리콜 사태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등 논란을 겪었다. 2015년9월 미국에서 2011년~2012년 사이에 생산된 쏘나타 47만대가 리콜됐다. 국내외에서는 세타2 엔진에 대한 문제 제기가 연이어 나왔다.
정의선 회장이 사실상 그룹 경영을 진두지휘하던 작년에도 이슈는 계속됐다. 본사와 공장 압수수색, 검찰 기소, 미국 집단소송 합의 등이 이어지며 현대차는 지속적으로 엔진 논란에 대비해야 했다. 현대차와 기아차는 세타2 GDi 엔진 리콜과 관련해 두 차례 충당금을 반영한 적이 있다. 2018년 3분기 4600억원, 지난해 3분기 9200억원이다.
그러다 이달 19일 더 과감한 조치를 한다고 밝혔다. 현대차와 기아차가 올해 3분기에 엔진 품질비용으로 각각 2조1000억원, 기아차 1조2600억원 총 3조3600억원을 충당금으로 설정하기로 했다.
현대·기아차는 떨림과 시동꺼짐 등 결함 논란에 휩싸인 세타2 GDi 및 세타2 터보 GDi 엔진을 장착한 2010~2019년 차량 보유 고객(한국 및 미국)에게 평생 보증프로그램을 제공하기로 결정했다.
우선 세타2 GDI이 적용된 2011~2014년식 차량 191만4000대의 교환율 상승, 차량 운행기간 재산정 등으로 1조4800억원을 잡았다. 2015~2018년식 차량 230만대에서는 예상을 상회하는 클레임과 평생보증 고려해 추가 충당금 1조3700억원을 쌓는다. 기타엔진(세타 MPI, 세타 HEV, 감마, 누우)이 쓰인 315만9000대에 대해서는 장기 신뢰 회복을 위한 선제적 고객 보호 조치로 8146억원을 반영키로 했다.
이번 충당금 규모는 현대차의 연간 이익에 맞먹는다. 현대차의 작년 연결 영업이익은 3조6055억원, 당기순이익은 3조1856억원이다. 올해 상반기에는 코로나19에도 불구하고 연결 영업이익 1조4540억원을 거뒀다.
증권업계에서는 현대차가 충당금 반영 탓에 3분기에 수천억원대 적자 전환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했다. 코로나19로 인한 어려움 속에서 손실을 감수하고서라도 과감한 결단을 내린 셈이다. 품질비용 반영 발표가 3분기 잠정실적 발표를 일주일 가량 남겨둔 뒤 이뤄진 점도 주목된다.
시장에선 정 회장이 지난주 회장에 취임한 뒤 책임경영의 연장 선상에서 이번 조치를 취한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전날 오후 증권사 애널리스트 등을 대상으로 열린 설명회에서도 정 회장 취임과의 연관성을 묻는 질의가 나왔다. 다만 현대·기아차 관계자는 연관성이 없다고 짤막하게 답변했다고 알려졌다.
실제로 업계에선 정의선 회장이 '빅 배스'를 단행한 것으로 보고 있다. 대규모 비용 반영을 통해 반복적으로 지적되온 엔진 문제를 본인의 취임을 계기로 과감히 끊고 가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이를 통해 현대기아차에 대한 고객 신뢰도 함께 잡겠다는 점을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 정 회장은 취임사에서 '고객'을 9번이나 언급할 정도 강조했다. 정 회장이 "고객의 다양한 목소리에 귀 기울여 소통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기본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는 점에서 이번 충당금 설정도 연장선상에서 봐야한다는 설명이다 .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이번 충당금 반영으로 현대·기아차가 향후 장기간 발생할 수 있는 품질 리스크를 해소했다는 평가가 나온다"며 "해당 품질 이슈에 대해 향후 발생할 수 있는 리스크를 2037년까지 해소했다는 점은 긍정적"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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