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 모니터/SK그룹최태원 회장 "ESG는 일시적 유행 아닌 패러다임 전환"① 2013년 사회공헌위원회 시초 "딥 체인지를 위한 실체적 수단"...주요 계열사 A등급
박상희 기자공개 2021-03-08 10:18:40
[편집자주]
생존(survival)은 인간과 같은 생물에게만 적용되는 말은 아니다. 기업도 살아있는 유기체와 같아서 변화하고 혁신하고 적응하지 않으면 한순간 도태돼 사라질 위기에 처할 수 있다. 코로나 19 팬데믹을 계기로 친환경(E)·사회적책임(S)·지배구조(G)를 합친 단어인 'ESG'가 2021년 국내 재계의 최대 화두가 됐다. ESG 경영을 천명하고 실제로 행동에 옮기지 않으면 소비자와 투자자를 비롯한 이해관계자들에게 외면받는 시대가 도래했다. '생존의 시대', 기업들의 ESG 철학과 경영전략을 살펴본다.
이 기사는 2021년 02월 25일 10:43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기업 경영의 척도도 진화한다. 과거엔 매출과 영업이익, 자산 규모 등 외형적 성장을 보여줄 수 있는 숫자가 일류기업으로의 도약을 알리는 지표였다. 이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이제 세상은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증명하고, 잠재성장력을 뒷받침 할 수 있는 객관적 지표를 요구한다. 갈라파고스섬에서 도태되지 않기 위해 기업들이 ESG(친환경·사회적책임·지배구조 개선) 경영으로 적극 선회하고 있는 이유다.가장 적극적으로 변신하고 있는 기업은 SK그룹이다. 그 중심에는 그룹의 수장인 최태원 회장(사진)이 자리하고 있다. 국내 재계 총수 가운데 ESG 경영을 전면에 내세운 첫 인물이다. 당초 금융회사에서 지속 가능한 투자를 위한 가이드라인을 개발하기 위해 도입됐고, 실제로 금융기관이 투자 대상 기업을 평가하는 수단으로 활용하던 ESG 개념을 기업 경영 방법론으로 도입하면서 주목을 받았다.
SK그룹은 수년 전부터 계열사 단위 별로 창출한 사회적 가치를 경제적 가치로 측정 변환해 그 결과를 발표하는 등 ESG 경영을 선도적으로 실천해 오고 있다는 점에서 걸음마 단계인 다른 기업의 ESG 경영과는 차별화된다는 평이다.
◇ESG 경영 선점한 최태원 회장...2013년 사회공헌위원회 시초
신축년 재계 신년사에 공통으로 가장 많이 등장했던 단어 중의 하나가 ESG였다. SK는 물론 현대차, LG, 한화, 포스코, 현대중공업 등 대다수 기업의 총수가 올해 경영 방침으로 ESG를 꼽았다. 올해를 ESG 경영 원년으로 선포하는가 하면 전담 조직을 신설하고 ESG 경영을 강화하겠다는 발표가 잇따랐다. 가히 ESG 붐이 일고 있다고 할만하다.
시계를 잠시 거꾸로 돌려보면 재계 총수 가운데 ESG 경영과 관련해 가장 기민하게 대응한 건 SK그룹의 최태원 회장이다. 최 회장은 지난해 9월과 10월 각각 구성원 전원과 계열사 CEO를 대상으로 ESG 경영의 필수불가결함을 설파했다.
사실 SK그룹의 ESG 경영은 2013년 출범한 수펙스(SUPEX) 산하 사회공헌위원회를 시초라고 볼 수 있다. 사회공헌위원회는 소셜밸류(SV)위원회로 발전했고, 지난해는 환경사업위원회와 거버넌스위원회도 발족했다. 재계 컨트롤타워에서 ESG 관련 개별 전담 조직을 별도로 두고 있는 곳은 SK그룹이 처음이다. ESG 경영을 조직적으로 가장 빠르게 내재화한 그룹이라고 볼 수 있다.
SK그룹이 ESG 개념을 적극 활용할 때 다른 기업들은 ESG 관련 손을 놓고 있던 걸까. 그런 것은 아니다. 국내 대다수 기업은 ESG의 개념을 사회공헌이나 CSR(기업의 사회적 책임) 개념과 비슷한 것으로 이해했다. 대기업에 사회공헌활동이나 CSR를 담당하는 부서가 존재한다는 것이 이를 방증한다.
LG그룹 지주사인 ㈜LG의 경우 지난해 연말 인사에서 CSR팀장을 사장으로 승진 조치하기도 했다. 그만큼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역할에 대해 조직 차원에서 관심이 높다는 의미다.
최 회장이 언급한 ESG 경영이 재계 화두가 된 것은 ESG 개념을 CSR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에서 더 나아가 기업의 경영 방법론과 결부시켰기 때문이다. ESG는 2006년 처음 등장한 이래 기업경영에서 핵심 개념이 되지 못하고 주변부를 맴돌던 신세였다. ESG는 듣기 좋은 미사여구에 불과할 뿐 기업 입장에서 실질적으로 중요한 것은 매출과 영업이익 등 숫자로 보여지는 지표를 키우는 일이었다.
지난해 발발한 코로나19 팬데믹 사태는 ESG 경영의 중요성을 새롭게 각인하는 계기가 됐다. 코로나 사태가 궁극적으로 인간의 환경 파괴 행위에 따른 결과물이라는 생각에 이르자 더 이상 ESG를 등한시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전 지구적 재앙이라고 할 만한 사태를 겪으면서 먼저 글로벌 큰 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의 래리 핑크 회장이 지난해 공개 서신을 통해 "투자 결정시 지속 가능성(sustainability)을 기준으로 삼겠다"라고 밝힌 이후 ESG를 투자 지표로 삼겠다는 기관 투자가들이 우후죽순 늘어났다.
최 회장은 이같은 글로벌 트렌드를 놓치지 않았다. 지난해 9월 SK그룹의 모든 구성원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ESG 경영을 강조했다. 그는 이메일에서 "우리는 이미 기업 경영의 새로운 원칙으로 ESG를 축으로 하는 파이낸셜 스토리 경영을 설정하고 방법론을 구상하고 있다"고 밝혔다.
최 회장의 ESG 경영 강조는 계속됐다. 지난해 10월에는 주요 관계사 CEO들이 모인 그룹 CEO세미나에서 향후 ESG 경영을 보다 공세적으로 펼쳐 나가자고 주문했다. 그동안 ESG관련 이슈들을 적당히 대응 또는 수비하고 리스크를 제거하는 방향으로 관리했다면, 앞으로는 정면으로 부딪혀 돌파하고 비즈니스 모델(BM)로 만들어 직접 해결해 나가자는 의미였다.
◇시대적 흐름에 편승?…"ESG 경영은 딥체인지 위한 방법론"
최 회장의 ESG 경영 강조는 단순히 'ESG'라는 글로벌 대세에 편승한 것과는 차이가 있다는 평이다. SK그룹은 최 회장이 '딥 체인지(deep change)'를 실현하기 위한 방법론의 하나로 ESG 경영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고 설명한다. 딥 체인지는 SK그룹이 계속해서 발전하기 위해서는 ‘모두 바꿔야 한다'며 미래 먹거리를 발굴하기 위해 강조하고 있는 '근본적 혁신'을 의미한다.
최 회장은 CEO 세미나에서 "기업가치를 제고하는 공식이 바뀌고 있다. 고객, 투자자, 시장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에 적합한 성장 스토리를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신뢰와 공감을 이끌어 내야 한다"고 강조했는데 ESG 경영은 최 회장이 제시한 다양한 방법론 중 하나였다.
SK그룹의 수펙스(SUPEX)추구협의회 SV추진팀장을 맡고 있는 김광조 부사장은 "주주를 중심에 놓고 경영하던 시절에서 다양한 이해관계자 위주의 경영으로 패러다임이 바뀌었다"면서 "SK그룹이 ESG 경영을 강조하는 것은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변화하는 세상에 적응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외부평가기관 A등급...사회적 가치를 경제적 가치로 전환 시도 주목
SK그룹의 경영 철학이 ESG와 맞닿아 있다는 점은 ESG 경영을 가속화시키는 지렛대가 됐다. SK그룹은 ESG가 글로벌 화두가 되기 전부터 재무적 가치 못지않게 사회적 가치를 중시하는 이른 바 '더블보텀라인(Double Bottom Line)'을 이야기 했다. ESG 경영은 더블보텀라인이 이야기하는 사회적 가치의 확장판 내지는 연장선 상에 위치한다.
최 회장이 강조하는 '파이낸셜 스토리'도 같은 맥락이다. 파이낸셜 스토리는 매출과 영업이익 등 기존의 재무성과 뿐만 아니라 시장이 매력적으로 느낄 수 있는 목표와 구체적 실행계획을 담은 성장 스토리를 통해 고객, 투자자, 시장 등 이해관계자들의 신뢰와 공감을 이끌어내겠다는 전략을 뜻한다. 파이낸셜 스토리를 쓰는데 ESG가 핵심이 될 수 있다는 게 최 회장의 생각이다.
SK그룹의 ESG 경영은 이미 외부 평가기관에서도 좋은 성적표를 받고 있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KCGS)의 2020년 ESG 평가에서 SK그룹 계열사 3곳이 통합등급 'A'를 획득했다. ㈜SK, SK텔레콤, SK네트웍스 등이다. 유가증권시장 상장사 가운데 통합등급 A를 받은 곳은 16곳에 불과했는데 그 가운데 3개 기업이 SK 계열사였다.
윤진수 KCGS 본부장은 "SK그룹은 오너인 최태원 회장이 ESG 관련 관심이 많다보니 전사적으로 ESG 경영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는 건 분명해보인다"면서 "특히 사회적 가치를 경제적 가치로 측정해 환원하는 작업을 재계 처음으로 시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고 말했다.
재계에서 최 회장이 갖는 위상도 ESG 경영이 기업 전반으로 확산되는데 일조하고 있다. 최 회장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대한상의 회장 하마평이 돌았고 최근 4대그룹 총수 가운데 처음으로 대한상의 회장을 맡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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