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생존의 무기 '컬래버']수소경제는 어제의 라이벌도 협력자로 만든다①현대차, 포스코와 맞손…포스코가 먼저 '러브콜', 이니셔티브 '야심'
박상희 기자공개 2021-04-07 11:21:25
[편집자주]
수직 계열화는 국내 기업들의 성공 방정식이었다. 시대가 변했다. ESG 열풍 속에 친환경 그린 모빌리티와 수소 경제로 산업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계열사를 통해 모든 과정을 자체적으로 해결하는 수직 계열화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더 이상 유효한 경영 전략이 아닐 수도 있다. 과거의 라이벌과도 적극적으로 손을 잡고 협업을 요구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기업의 새로운 생존 무기가 된 '컬래버' 현황을 짚어본다.
이 기사는 2021년 04월 01일 15:17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현대차가 계열사 현대제철을 두고 경쟁사인 포스코와 손을 잡는다? 예전 같았으면 수직 계열화 체계가 공고한 현대차그룹에서 상상도 못할 일이다. 수소 경제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등장이 국내 기업 간 경쟁 구도를 협업 관계로 바꿔놓고 있다."현대차그룹과 포스코의 '수소 사업 협력에 관한 업무협약' 체결 소식을 접한 이후 재계 관계자가 한 말이다. 수소 협업은 포스코에서 먼저 현대차 측에 제안한 것으로 전해진다. 포스코는 왜 현대차에 러브콜을 보낸 것일까. 현대차는 현대제철을 두고 왜 포스코와 맞손을 잡았을까.
◇포스코, 2050년 수소 500만톤 '장기 로드맵'…그레이·블루·그린수소 모두 생산 목표
2월 16일 열린 협약식에서 최정우 포스코그룹 회장은 "포스코그룹이 수소를 생산, 공급하고 현대차그룹이 이를 활용하는 관점에서 다양한 협력 기회를 찾아 수소 경제 이니셔티브를 확보하겠다"고 말했다.
최 회장은 지난해 12월 사실상 연임을 확정한 이후 단행한 인사에서 CEO 직속 조직으로 수소사업부를 신설하는 등 수소경제를 선도하겠다는 야심을 내보였다. 포스코는 2025년까지 부생수소 생산 능력을 7만톤으로 늘리고, 2030년까지 ‘블루수소'를 50만톤까지 생산한다는 계획이다. 동시에 ‘그린수소'는 2040년까지 200만톤 생산체제를 구축하는 등 2050년까지 수소 500만톤 생산체제를 완성할 방침이다.
수소경제 생태계는 생산-보관·운송-활용의 3단계에서 산업이 형성, 발전한다. 포스코는 수소경제 생태계에서 그린 수소를 생산하는 기술과 함께 이를 대량 비축하고 운송하는 기술을 발전시키겠다는 복안이다. 수소는 수송용, 산업용, 건물용, 산업 연료 등으로 쓰이는데 이같은 활용 부분은 현대차와 협력하겠다는 것이다.
포스코그룹은 현재 7000톤의 부생수소 생산 역량을 갖추고 있다. 생산한 수소는 포스코그룹 내에서 자체적으로 소비하고 있다. 아직 수소를 외부에 판매해 발생하는 매출은 없다. 향후 포스코에서 생산하는 수소 양이 폭발적으로 늘어날 경우 수요처를 고려해야 한다. 잠재 고객 확보 측면에서 현대차에 손을 내민 것으로 풀이된다.
포스코 관계자는 "현대자동차그룹은 국내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수소경제 전환을 선도하는 글로벌 수소사업 리더"라면서 "현대차그룹과 수소 사업 협력을 만들어간다는 점은 포스코가 수소 사업의 비전 선포에 그치지 않고, 구체적인 사업의 실행을 통해 변화를 적극적으로 만들어가고자 하는 의지를 내보인 것"이라고 말했다.
포스코는 현대차에 협력을 제안하면서 '당근'도 제시했다. 포스코는 포항 및 광양제철소에서 운영 중인 차량 약 1500대를 단계적으로 현대차의 무공해 수소전기차로 전환하기로 했다. 현대차는 중후장대한 철강 물류의 특성을 고려해 수소 상용 트럭 등을 개발하고, 포스코는 제철소에서 생산되는 부생수소를 수소트럭의 에너지원으로 사용한다는 방침이다.
◇"수소경제 생태계 구축이 최우선 과제…현대제철·포스코, 수소 분야선 경쟁자 아냐"
현대차그룹에도 수소를 생산하는 계열사가 있다. 바로 현대차그룹이 포스코에 의존하던 차 강판 수요를 조절하기 위해 수직계열화 차원에서 설립한 현대제철이다. 철강 수직계열화는 고(故)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오랫동안 염원해 온 것으로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이 이를 완성했다. 이를 감안하면 수소사업에서도 현대제철에 힘을 실어줘 계열사를 키우는 게 '윈윈'이 될 수 있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차 강판 비즈니스와 다르게 수소사업에 한정해서는 현대제철과 포스코가 '경쟁사' 구도라고 볼 수 없다"면서 "수소 경제가 이제 막 태동하는 단계인 점을 고려해 현대차그룹과 포스코그룹이 힘을 합쳐 수소 경제 규모를 키우자는게 이번 수소 사업 협력의 배경"이라고 말했다.
현대차는 수소차 분야에서 글로벌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 현대차의 수소사업은 수소차, 수소충전소, 연료전지 보급 등 수요 측면에 맞춰졌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급성장할 수소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선 안정적인 수소 공급 인프라가 구축되어야 한다. 수소 수요를 계열사인 현대제철에만 의존할 수 없는 상황이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국내에서 생산하는 수소 가운데 70% 가량은 생산하는 기업에서 자가소비 하고 있고, 실제 시장에 유통되는 양은 30% 수준인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현대차가 포스코와 협업키로 한 것은 향후 수소 사용량이 크게 증가할 것에 대비해 수소 대량 공급 인프라 구축 차원으로 풀이된다"고 말했다.
현재 현대제철의 부생수소 생산능력은 연간 3500톤 가량이다. 현대제철 역시 포스코와 마찬가지로 생산한 부생수소를 자체적으로 소비하고 있다. 현대제철은 향후 부생수소 생산능력을 2025년까지 3만7200톤까지 늘릴 계획이다. 내부적으로는 최대 4만톤까지 생산도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현대제철이 생산능력을 크게 늘리려고 하는 수소는 그레이수소의 일종인 부생수소다. 현대제철은 아직까지 블루수소나 그린수소에 대한 비전은 구체화 한 적이 없다. 반면 포스코는 장기적으로 블루수소와 그린수소 생산에 대한 장기 로드맵을 구체화 했다.
그린수소는 재생에너지를 활용해 수소를 만드는 것으로,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가장 이상적인 방식의 수소로 분류된다. 블루수소는 석탄, 가스 등 화석연료를 기반으로 추출한 그레이수소에서 탄소저감장치를 이용해 탄소 배출량을 줄인 수소다.
업계 관계자는 “수소경제라는 말이 등장하면서 여러 기업에서 수소 사업을 키우려고 하고 있는데 포스코가 자금력이나 기술력을 감안할 때 가장 든든한 파트너가 될 수 있을 것으로 현대차가 판단한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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