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열분리 이슈 점검]군불만 지핀 20년, SK그룹 계열분리 안하나 못하나②사실상 독립한 최창원 부회장...최신원 회장은 독립 요원
조은아 기자공개 2021-06-29 13:19:51
[편집자주]
계열분리는 그룹 분화의 중요한 변곡점이다. 단순 계열분리를 넘어 그 이후를 어떻게 준비하느냐가 흥망성쇠를 가를 수 있다. 대를 이어가고 경영에 참가하는 사람들이 늘어날수록 계열분리 문제가 필연적으로 제기될 수밖에 없다. 계열분리 이슈와 맞닿아 있는 그룹들의 시나리오와 함께 지배구조, 사업구조, 신사업, 리더십 등 미래 경쟁력을 더벨이 점검한다.
이 기사는 2021년 06월 24일 11:06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SK그룹은 가장 오랫동안 ‘계열분리 이슈’를 안고 있는 그룹이다. 계열분리설이 처음 나온 게 2000년대 초반으로 벌써 20년 가까이 흘렀다. 2004년에는 최신원 SK네트웍스 대표이사 회장이 직접 “SK그룹 분가를 형제들과 논의하겠다”고 밝히면서 군불을 지폈다. 그러나 20년 가까이 흐른 지금도 SK그룹의 계열분리는 요원한 것처럼 보인다. SK그룹은 계열분리를 못하는 걸까. 안하는 걸까.◇최창원 부회장, 마음만 먹으면 완전한 독립
SK그룹에서 20년 가까이 분가설이 나오는 이유는 사촌들의 공동경영이 장기간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GS그룹이나 두산그룹처럼 ‘돌아가면서 회장을 맡겠다’는 합의가 이뤄진 것도 아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그룹을 이끌고 최신원 회장 등이 일부 계열사를 이끄는 '애매한' 동거가 오랜 기간 지속되고 있다.
특히 최신원 회장이 그동안 계열분리 가능성을 꾸준히 언급한 점도 영향을 미쳤다. 최신원 회장은 2017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계열분리 가능성을 부인했지만 계열분리에 뜻을 갖고 있던 건 확실해 보인다. 이전까지는 계열분리 시점을 언론에 정확하게 밝힌 적은 없어도 완전히 부인하지는 않아왔다.
최신원 회장은 SK그룹 최종건 창업주의 차남으로 지난 2000년 형인 고 최윤원 SK케미칼 회장의 별세 이후 사실상 SK그룹 최씨 집안의 장손 역할을 해왔다. 그러면서 부친인 최종건 창업주의 사업을 이어가야 한다는 뜻을 분명히 해오기도 했다.
SK그룹은 선대 최종현 회장이 유언 없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뜨면서 경영권을 둘러싼 분쟁에 휩싸일 수 있는 상황에 놓였다. 그러나 형제 및 사촌들의 양보와 타협으로 주변의 우려와 달리 분쟁이나 잡음 없이 순조롭게 경영권 승계가 이뤄졌다. 이 과정에서 최신원 회장도 큰 역할을 했다.
다만 당시에도 SK그룹이 온전히 최태원 회장 몫은 아니라는 점은 분명히 했다. 최신원 회장은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형제들 4명이 나눠서 경영을 하는 건 확실하다”며 “역할 분담이 조만간 정리될 것”이라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실제 최신원 회장의 동생인 최창원 SK디스커버리 부회장의 경우 이제 확실하게 역할이 정리된 모양새다. 그는 SK디스커버리를 지주회사로 두고 SK그룹 안에 독립된 소그룹을 형성하면서 사실상의 독립경영 체제를 완성했다. 최태원 회장이 SK이노베이션과 SK텔레콤 등을 주력으로 한다면 최창원 부회장은 SK케미칼, SK바이오사이언스, SK가스를 중심으로 독자 세력을 구축했다. SK바이오팜은 신약 개발, SK바이오사이언스는 백신 개발을 전담하고 있어 사업도 겹치지 않는다.
물론 공정거래법상 계열분리를 이루기 위해서는 ‘지분율’과 ‘지배력’ 요건을 충족해야 하는 과제가 남아있다. 최태원 회장이 SK디스커버리 지분 0.11%를 보유하고 있는데 이를 해소해야 한다. 그러나 시가총액 10억원 안팎으로 미미한 수준이기 때문에 둘의 합의만 이뤄지면 어렵지 않게 매각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최창원 부회장이 계열분리에 나서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굳이 할 필요가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사업이 중첩되지도 않고, 지배력 측면에서도 완전한 독립이 언제든 가능한 상황인데 굳이 재계 서열 3위 SK그룹이라는 안락한 우산에서 서둘러 나갈 이유가 없다.
다만 재계는 SK디스커버리와 SK그룹 계열사와 수천억원 수준의 내부거래가 이뤄지고 있는 만큼 중장기적으로는 계열분리를 추진할 것으로 보고 있다. SK그룹 계열사로 남게 되면 각종 규제에서 자유롭지 못한 만큼 이를 해소하기 위한 대안으로 계열분리가 활용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최신원 회장, '합의'에 의존한 불안한 독립경영
최신원 회장의 경우 동생과 다르다. 안하는 것도 맞지만 못하는 쪽에 가깝다. 우선 현실적으로 계열분리를 위해서는 지분을 확보해야 하는데 만만치 않은 작업이 될 것으로 보인다.
최신원 회장의 SK네트웍스 지분율은 0.83%에 그친다. 계열분리를 위해선 SK㈜가 보유하고 있는 SK네트웍스 지분 39.1%를 최신원 회장이 확보해야 하는데 지분가치가 23일 시가총액 기준 5600억원에 이른다. 사실상 개인이 조달하기에 불가능에 가깝다. 현재로선 최 회장이 배임 및 횡령 혐의로 구속돼 장기간 법적 공방을 펼칠 것으로 전망돼 운신의 폭도 좁다.
안하는 것도 맞다. 최신원 회장은 이미 SK네트웍스를 독립적으로 경영하고 있다. 최태원 회장이 SK네트웍스 지분을 보유하고 있지 않고 최태원 회장의 동생인 최재원 SK그룹 수석부회장도 올해 1월 SK네트웍스 주식을 모두 처분했다. SK네트웍스는 최신원 회장이 대표이사로 취임한 뒤 ‘환골탈태’에 가까운 변화를 이뤘는데 이 과정에서도 최태원 회장의 영향력은 거의 없었다.
한때 최재원 수석부회장이 SK네트웍스 이사회 의장까지 지내는 등 SK네트웍스가 최태원-최재원 몫이 될 가능성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현재는 완전히 최신원 회장의 회사로 여겨지는 분위기다.
현재 지분 외에 다른 연결고리를 찾자면 조대식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이 기타비상무이사로 참여하고 있고 최재원 수석부회장이 미등기 임원(비상근)으로 적을 두고 있는 정도다.
다만 장기적으로는 결국 계열분리를 염두에 둘 수밖에 없어 보인다. 현재의 독립경영은 ‘합의’에 따라 이뤄진 것으로 법적 효력은 전혀 없다. SK㈜가 SK네트웍스 지분을 40% 가까이 보유하고 있는 만큼 언제든 최대주주로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구조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최태원 회장이 그룹의 맏형이자 장손인 최신원 회장에게 경영권을 잠시 '빌려준' 것으로도 볼 수 있는 셈이다. 실제 무리하게 계열분리를 추진하지 않는 이유 가운데 하나로 ‘양쪽의 사이가 나쁘지 않다’는 점도 꼽히는데 바꿔 말하면 ‘사이’에 의존할 만큼 느슨한 독립경영이 이뤄지고 있다는 의미다.
물론 지금 당장은 양쪽이 SK네트웍스를 놓고 경영권 분쟁을 벌일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대를 내려가도 현재의 경영체제가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불안감이 상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최신원 회장이 결국 계열분리를 추진할 것이라는 관측도 여기에서 비롯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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