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가사 잣대 '제각각', 등급 스플릿 넘어 '상호배격' 수준 [ESG 그린워싱 주의보]⑧동일 기업 놓고 투자배제 vs ESG 우수 '극명한 등급차'...신뢰 저하 '불가피'
양정우 기자공개 2021-07-01 13:10:55
[편집자주]
'ESG(환경·사회·지배구조)'가 국내외 자본시장을 좌지우지하고 있다. 자금 조달의 주체인 기업은 ESG 등급에 사활을 걸고, 투자를 주도하는 운용사는 ESG 요소를 감안해 타깃을 조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 거대한 물결이 워낙 빠른 속도로 이는 탓에 '위장 ESG'라는 빈틈도 생기고 있다. 더벨이 국내 ESG 시장에서 불거지는 그린워싱(green washing) 우려를 짚어본다.
이 기사는 2021년 06월 29일 07:42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정보의 존재감이 커진 만큼 신뢰도도 향상되고 있을까. 국내 주류 ESG 평가사 사이에도 동일 기업에 대한 평가가 천양지차인 탓에 ESG등급의 신뢰가 저하되고 있다.물론 기업의 부채상환능력을 책정하는 신용평가업계에도 사별 등급 격차를 뜻하는 스플릿(split)이 발생한다. 하지만 정도 차이가 한두 노치(notch) 정도여서 신용도 책정의 논리인 평가방법론 자체에 대한 의구심은 거의 없다. 하지만 ESG등급의 경우 기관끼리 상호 간 등급을 배격하는 정도여서 평가 방법에 대한 회의감이 적지 않다.
◇한국금융지주·셀트리온·한국콜마 등 ESG 평가 '극과 극'
국내 ESG 평가사 가운데 주류 기관으로 분류되는 건 한국기업지배구조원과 대신경제연구소, 서스틴베스트 등이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의 경우 공공기관인 한국거래소와 사단법인인 금융투자협회 등이 사원 기관으로 자리잡은 법인이다.
매년 단행하는 ESG 평가등급을 직접 공개하고 있는 건 한국기업지배구조원과 서스틴베스트 등이다. 이들 두 기관만 놓고 봐도 동일 기업에 대한 ESG등급이 크게 엇갈린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S, A+, A, B+, B, C, D 등)과 서스틴베스트(AA, A, BB, B, C, D, E 등)는 각각 7개 단계로 이뤄진 등급 체계를 갖고 있다.
서스틴베스트가 아예 투자 배제 등급(D 이하)으로 분류하는 기업 가운데 한국기업지배구조원에서 우수 등급(B 이상)을 부여한 기업이 적지 않다. 한국금융지주(서스틴베스트 D, 한국기업지배구조원 B), 한국콜마(D, B+), 셀트리온(D, B+), 삼양홀딩스(D, B+) 등이 대표적이다.
역으로 서스틴베스트는 최고 등급인 'AA'를 부여했으나 한국기업지배구조원에서는 평가를 절하한 기업도 줄을 잇는다. 한전기술(AA, B+), DB하이텍(AA, B+), BGF(AA, B+), 신세계I&C(AA, B+), 한솔테크닉스(AA, B+) 등이다. 신용등급 스플릿 정도로 여길 수준을 넘어 두 기관의 ESG 논리가 동시에 존립할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자산관리(WM)업계 관계자는 "E, S, G 등 각 영역의 세부 평가에서도 평가사 간 엇갈리는 수치가 적지 않다"며 "예를 들어 탄소 배출 등 직관적으로도 정량 점수가 엿보이는 환경 파트마저 등급 차이가 나는 건 객관성이 떨어진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라고 말했다.
물론 ESG 정보는 재무제표처럼 정부가 객관성과 의무를 강제하는 공시사항이 아니다. 평가기관에 따라 활용하는 정보와 가중치가 다르기에 서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는 게 제각각인 ESG등급을 옹호하는 측의 반론이다.
하지만 평가사로서 특정 기업에 부여하는 등급은 공신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무의미한 기호에 불과하다는 진단도 나온다. 단순히 투자자가 취사선택하는 주식 리포트가 엇갈리는 이슈 정도로 치부할 수 없다는 지적에 무게가 실린다.
◇ESG평가, 적합성 이은 적시성 이슈…생태계 한축, 신뢰 고수 필요
ESG등급의 적시성 이슈는 시장에서 평가업계를 바라보는 또 다른 부정적 시각이다. ESG 평가사마다 등급 격차가 심한 게 적합성 이슈라면 적시성은 과연 ESG 리스크를 제때 반영할 수 있는지 여부다.
오랜 시간 이론과 실증 데이터가 축적된 신용평가 시스템에서는 매년 신용등급을 새롭게 평정하는 정기 평가뿐 아니라 돌발 이벤트에 대한 대응책이 마련돼 있다. 신용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이슈가 발생하면 즉각 보고서를 공시하고 중대 사안의 경우 등급 워치리스트(watch list)에 올린다. 그럼에도 늦장 조정이라는 지적에 늘상 시달린다.
물론 아직까지 ESG 평가는 정부의 라이선스 업무가 아니라 평가사의 수익 사업에 불과하다. ESG등급 평가 체계에 시장 안정성이라는 의무까지 부여된 건 아니다. 그러나 ESG 생태계에서 평가업이 한 축을 차지하는 터라 신뢰 저하가 지속되면 ESG 시장에 악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운용업계 관계자는 "ESG 평가사는 대부분 연간 내지 반기를 기준으로 등급 책정에 나서고 있다"며 "특정 이벤트 발생시 고객을 상대로 세부 분석보다 단순 리뷰 정도를 전달하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이어 "돌발 이슈를 투자 포트폴리오에 즉각 반영할 만한 수준 높은 신호를 주는 평가사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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