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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LF 판결문 뜯어보기]CEO 징계 취소 마땅하나…개선 필요성 동시 지적④상품선정·판매·점검 등 다방면 문제점도 거론

김현정 기자공개 2021-09-06 07:17:50

[편집자주]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의 DLF 1심 승소 파장이 상당하다. 비슷한 당국 징계를 기다리고 있던 금융사와 CEO가 다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재판부가 내놓은 판결문을 보면 당사자들이 마냥 손뼉칠 상황은 아닌 듯하다. 74페이지에 이르는 손 회장 관련 판결문에는 금융권에 경종을 울리는 메시지가 다수 담겨 있었다. 더벨은 판결문을 입수해 행간에 들어있는 의미와 되새겨야 할 점은 무엇인지 등을 짚어본다.

이 기사는 2021년 09월 03일 10:21 더벨 유료페이지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행정법원은 손태승 회장에 대한 금융당국의 징계 취소는 마땅하다고 봤으나 은행 시스템 측면에서 당국 지적은 틀리지 않다고 봤다. 판결문을 통해 우리은행의 내부통제 기준의 내용상 미흡과 운영상 허점을 낱낱이 짚었기 때문이다. 내부통제 기준의 '마련 의무'는 대체로 수행한 것으로 인정했지만 허울뿐인 내부통제 운영 사례를 조목조목 열거했다.

다만 우리은행은 판결문에 적시된 사안들이 '과거'에 이뤄진 일인만큼 내부통제와 관련해 지적된 미비점을 이미 상당부분 개선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제는 다른 은행들이 따라야 할만큼 내부통제 시스템 강화를 이룬 상태란 후문이다. 어찌보면 당국이 초강수를 둔 덕에 단기간에 이룰 수 있었던 변화로 볼 여지도 있다.

◇내부통제 운영 미비 사례 나열

재판부 판결문의 주된 흐름은 금감원의 처분 사유들이 내부통제기준 ‘마련’ 불이행에 해당하는지를 가리는 과정이었다. 앞서 금감원은 손 회장에게 중징계를 내리면서 처분 사유로 △상품선정절차 생략 기준 미비 △판매 후 위험관리, 소비자보호 업무 관련 기준 미비 △상품선정위원회 운영 관련 기준 미비 △적합성보고 시스템 관련 기준 미비 △내부통제기준 준수 여부 점검 체계 미비 등 5가지를 들었다.

재판부는 이 가운데 ‘△상품선정위원회 운영 관련 기준 미비’ 정도가 기준 자체의 흠결로 판단할 수 있고 나머지는 내용상의 미흡, 운영상의 문제점으로 분류했다. 다만 상품선정위원회 운영 기준이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은 것이 인정됨에도 중징계를 가할 수준은 아니라는 점에서 취소 판결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또한 기준 마련의 문제인지, 운영상 문제인지를 분류하는 과정 속에서 우리은행의 여러 내부통제 사례들을 있는 그대로 거론했다. 사례 나열을 통해 금융기관에 진지한 성찰을 촉구하기 위한 의도로 읽힌다.

재판부는 제언을 통해 “재판부는 이 사건을 심리하면서 확인한 문제점들을 가급적 낱낱이 판결문에 적시했다”며 “(…)이는 금융소비자들의 소송과정에서도 반영될 필요가 있는 문제점들이고, 또한 금융기관과 감독기관 모두의 진지한 성찰이 있어야 할 대목”이라고 말했다.


재판부가 열거한 우리은행의 내부통제 운영 미흡 사례는 다음과 같다. 우리은행은 펀드를 팔기 전 내부적으로 상품선정위원회나 공정가액평가실무협의회 등 심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기준을 만들어놓았다. 하지만 2017년 8월17일 이후 신규 출시한 DLF 상품 360개 중 357개(99.2%)는 심의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

기존 출시상품과 동일한 자산을 기초로 한 유사한 구조라는 게 이유였다. DLF는 리스크가 높은 원금비보존형 파생상품펀드로서 리스크관리 지침 상 상품선정위원회 및 공평협 심의 대상이지만 우리은행은 DLF를 면제 대상으로 분류해 심의를 생략했다.

상품선정심의위원회도 유명무실하게 운영됐다. 위원을 임의로 교체해 투표 결과를 조작했고 불출석 위원에 대해 찬성 의견을 적시했다. 평가표를 위조한 사례도 있었고 무엇보다 위원들은 위원회의 의사결정이 왜곡된 사실을 전혀 확인할 수 없었다.

위원회 구성에도 문제가 있었음이 드러났다. 상품선정 위원회 위원장은 상품개발 추진부서인 WM추진부장이고 그 위원 9명 중 3명이 WM추진부 소속 직원들이었다. 상품선정위원회는 WM추진부의 의사를 견제하기보다는 그 의사에 지배될 취약성을 갖고 있다는 게 재판부 설명이다.

재판부는 “결국 상품선정위원회는 WM추진부의 과도한 영업이익 추구를 견제하는 내부통제시스템으로 전혀 기능하지 못했다”며 “이는 단순히 상품출시 담당 직원 개인의 일탈 문제가 아니라 위원회라는 형식과 달리 의사결정기구로서 기능할 기본적인 전제조건조차 마련하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판매 과정에서의 내부통제 운영 미비 사례들도 눈에 띈다. DLF는 1등급 상품임에도 WM추진부는 내부 직원들에게 상품판매 유리한 결과만을 강조해 영업점 직원들로 하여금 DLF가 안정적인 상품인 것으로 오인토록 했다. 실질이 공모펀드이지만 외관상 사모펀드처럼 운영돼 원금손실 조건의 통지 절차를 지키지 못했다.

◇자정노력 절실 '비온 뒤 땅 굳는다'

다만 뼈아픈 DLF 사태 후 우리은행은 자정노력으로 재판부가 지적한 사안들을 현재 많은 부분 개선한 상태로 확인된다. DLF 사태가 터진 후 최근까지 2년여 동안 금융감독원의 지적을 바탕으로 상품선정·판매·사후관리 등에 전방위적 소비자 보호 장치를 마련하는 데 힘썼다.

사실 판결문에 드러난 사례들은 2017~2019년 사이 일어난 일들에 국한된다. 우리은행은 DLF 사태 후 소비자보호와 관련한 모든 제도와 시스템에 대해 '제로베이스 혁신'을 실시해왔다. 힘든 시기를 겪은 만큼 소비자보호 체계 구축에 모든 조직이 가세해 전방위적 노력을 기울였다.

먼저 가장 앞단인 상품선정 소관부서의 검토 때부터 리스크관리 조직과 사전협의를 거치도록 했다. 수익률 등에 욕심이 날 수 있는 부분을 리스크관리 조직이 견제하는 구조로 짰다. 현재 소속변호사의 법률 검토와 리스크매니저의 리스크 검토를 1차적으로 완료한 사모펀드와 고난도 금융투자상품을 리스크관리그룹 산하 리스크총괄부가 재차 검토하는 시스템으로 운영 중이다.

우리은행은 상품 선정·도입 핵심조직으로 자산관리상품위원회을 두고 있는데 리스크관리그룹장(최고리스크관리책임자·CRO)과 금융소비자보호그룹장(금융소비자보호총괄책임자·CCO)이 위원들을 견제토록 했다.

은행장 전결과 이사회 승인까지 얻어야 하는 고난도 금융투자상품을 제외하면 일반적인 사모펀드는 자산관리상품위원회 승인까지 얻으면 판매가 가능하다. 다만 위원회 위원들이 모두 찬성표를 던져도 CRO와 CCO가 반대표를 행사한다면 상품 출시가 불가능하도록 운영하고 있다.

판매 단계에서도 투자자 보호 장치가 강화됐다. 먼저 특정 운용사와 고위험펀드에 대한 고객 투자한도에 제한을 뒀다. 고객의 자산현황이나 손실감내능력을 고려하지 않고 무분별하게 투자를 권유할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다.

가입 이후 불완전판매가 확인될 경우 철회를 보장하는 고객철회제도도 운영 중이다. 이외에 △설명의무(녹취제도)·숙려제도 강화 △허위·과장광고 금지 △해피콜 시스템 개편 △고객 가입양식 개선 △자체 미스터리쇼핑 강화 등을 진행하고 있다.

이제 다른 은행의 '롤모델'이 됐다고 볼 수도 있는 셈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당국이 CEO 징계란 초강수를 두면서 자정 노력을 안 하려야 안 할 수 없었다고 본다"며 "재판부가 판결문에서 지적한 사안들은 이미 상당부분 개선이 이뤄진 상태이고 다른 은행들 역시 비슷한 과정을 거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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